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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人문학] (1) 트럼프 인터내셔널 스코틀랜드
<헤럴드스포츠>는 세계 각국의 명문 골프장이나 화제가 되는 코스, 그리고 그곳과 관련된 사람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풀어내는 ‘골프장 인(人)문학’ 코너를 매주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파스칼(프랑스 과학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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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골프계의 거물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허세 그리고 애버딘셔의 화려한 듄즈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46년 6월14일생으로 올해 69세.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사내다. 아버지에 이어 부동산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트럼프가 ‘대통령 게임’이란 도박을 하고 있다. 트럼프 타워 등 그가 가진 부(富)의 상당수는 건물이며 그중 일부가 17개의 고급 골프장이다.

부동산과 골프장 재벌인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 자산은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넘는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의 재산은 그보다 작은 29억달러(3조 4000억 원)다. 공언하는 100억 달러 중에는 ‘트럼프’라는 브랜드 가치를 33억 달러 가까이 책정하는 등 허수가 있는 까닭이란다. 한국에도 트럼프 타워가 있을 정도니 이름 값하는 글로벌 부자인 건 맞지만 아무튼 허세도 상당하다(부자 중에 자신이 가진 돈을 더 키우는 이는 극히 드물다).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는 브루클린과 퀸스의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젊은 도널드는 아버지를 능가하겠다고 결심한 뒤 결국 맨해튼을 차지했다. 36세인 1982년 뉴욕에 트럼프 타워를 세웠고,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카지노로 떼돈을 벌었다. 이후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한 결과, 현재 부동산 및 호텔, 골프장 리조트를 넘어 셔틀에어라인이라는 항공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가 소유한 17개의 골프리조트 중에 대부분은 ‘트럼프’라는 명칭이 붙는다. 그중에는 미국 PGA투어 정규대회인 캐딜락챔피언십이 매년 개최되는 마이애미의 도럴리조트를 포함해 뉴욕의 웨스트체스터, 배드미니스터 등 유명 코스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 12년에는 뉴욕시 입찰을 통해 버려진 땅인 페리포인트 지구를 사들여 골프장을 짓고 있는데 트럼프는 이곳에서 ‘메이저 대회를 열겠다’며 호언장담한다.

힘 빠진 동네의 중늙은이가 허세를 부린다면 한번 웃어넘겨도 되지만, 영향력 있는 거물이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 허세를 부리면 참 난감하다. 트럼프로서는 결과야 어찌되건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홍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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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코스 입구는 중앙에 네모 시계탑과 숲 담장 사이에 새긴 로고가 전부였다.


트럼프의 과장 화법

골프전문 월간지 <골프다이제스트>의 시니컬한 인터뷰로 유명한 존 바튼 기자가 지난 해 여름 도널드 트럼프를 심층 인터뷰했다. 글 속에 허세와 우격다짐에 과장을 섞거나 익명의 인물을 편의에 따라 끌어다 넣는 트럼프의 화법이 잘 나타나 있다. 인터뷰 내용 중에 골프 철학과 그가 공들였던 스코틀랜드 애버딘 코스와 관련된 부분만 발췌 인용한다.

-(존 바튼) 골프를 접하게 된 계기를 간단히 말해줄 수 있나?
(트럼프)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 경영대학원을 다녔는데 골프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골프를 해본 적이 없었다. 늘 야구와 미식축구, 뭐 그런 것들만 했지. 그래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콥스크릭이라는 곳에 가봤다. 퍼블릭인데다 거칠고 티박스에는 잔디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도 좋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도 좋았다. 그곳에는 이른바 ‘타짜’들이 득실댔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타짜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친구들과 플레이를 했고, 다음에는 타짜들과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많이 배웠다. 골프를 배웠고, 도박을 배웠고, 모든 것을 배웠다.”

- 최저타 기록은 몇 타인가?
“60대의 스코어는 수없이 기록했지만 팜비치에 있는 홈 코스에서 아마추어 부문 코스레코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곳은 코스레이팅이 155인 세계적인 수준의 코스다. 블루 티에서 기록한 66타가 내 최저타인데 그 정도면 상당히 잘한 것이다.”

- 골프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팜비치에서 시작했다. 일이 복잡하게 얽혔는데 법정 소송에서 이겨서 600에이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멋진 골프코스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장의 침체기일 때 웨스트체스터로 가서 은행 저당 물건을 사들였다. 215에이커였다. 그곳에도 코스를 만들었다. 두 곳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 다음부터는 이미 있는 코스를 사서 다시 짓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수익이 더 좋았다. 코스 품질이 뛰어난 곳만 헐값에 구입했다. 원래 가격이 1달러면 (경기 침체로 인해) 나는 10~15센트에 구입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에게서 코스를 사들였는데, 짓는 데 에이커당 5,800달러가 들어간 곳이었으나 정작 나는 300달러에 샀다.”

-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을 상징하나?
“품질과 럭셔리를 상징한다. 내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턴베리 골프장은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건 자만이 아니다. 이건 비즈니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나는 실제로 스코틀랜드에서 매우 유력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이름을 거론하면 곤란할 테니 그들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대단히 중요하고 매우 유력한 정계 인물들을 만나서 트럼프 턴베리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좋다고 했다.”

- 영국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말하자면 ‘추한 미국인이 쳐들어온다’는 식인데?
“여론조사 결과 93퍼센트가 찬성했다는 걸 사람들이 모른다. 우리 프로젝트가 애버딘에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왔다. 애버딘에는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내 골프코스 덕분에 모두가 좋아졌다. 그곳 사람들은 나를 정말 좋아한다. 골프장을 만들어줘서 좋아하는 것이다. 애버딘 경제가 나 때문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 때문에 호텔 객실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그 지역은 번창한다. 거참, 애버딘 사람들 93퍼센트가 나를 좋아한다니까.”

-그 여론조사의 출처는 어디인가?
“그 조사 결과가 한 신문에 실렸다. 우리는 애버딘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2010년 B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미국의 억만장자’에서도 여러 번에 걸친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93퍼센트 찬성률’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방송국 PD는 여론조사의 출처를 알아내지 못했고, 트럼프의 대변인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가 말한 애버딘 신문사의 공보담당자 조차도 그 여론조사의 기록을 찾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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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하게 조성한 게스트하우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트럼프 브랜드가 새겨진 헬기도 정원 옆에 있었다.


카트 길도 잔디인 코스

인터뷰에서 언급하듯 2008년 이후 트럼프는 미국의 골프 경기가 하강세로 돌아선 틈을 이용해 골프장 헐값 매입에 집중했다. 파산했거나 고전 중인 골프장을 매입해 고급스러운 리모델링을 거쳐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란초 팔로버디스의 오션트레일스(현 트럼프내셔널GC 로스앤젤레스), 뉴저지 주 남서쪽의 파인힐(현 트럼프내셔널GC 필라델피아),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마이애미의 도럴골프리조트&스파 등이 그런 사례다.

그는 동시에 트럼프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해외 골프장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모색했다. 2012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 조성한 트럼프인터내셔널스코틀랜드는 세계 최대 모래언덕 사구(砂丘) 즉 듄즈 코스다. 트럼프는 이후 아일랜드에서 둔베그와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한 스코틀랜드의 턴베리를 사들여 거기에도 ‘트럼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지난해 7월에 위스키브랜드 발렌타인이 후원하는 스코티시오픈 취재차 스코틀랜드의 북해에 면한 도시 애버딘에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마침 멀지 않은 애버딘셔를 찾아 코스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애버딘에는 스코티시오픈이 열린 로열애버딘이나 크루덴베이가 세계 100대 코스에 오른 전통 코스지만, 이 지역에서는 개장 2년밖에 안 된 트럼프 코스의 명성(어찌보면 악명으로)이 유명했다.

2006년 트럼프가 1,100만 달러에 거대한 모래사구를 사들이면서 코스 조성을 시작했다. 당시 트럼프는 특유의 허세 섞인 말투로 “이 곳에 세계 최고의 골프코스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땅은 개발이 엄격히 제한된 환경보존지역이었다. 당초 현지 의회의 개발위원회는 트럼프의 개발사업 승인 요청을 부결 처리했지만 스코틀랜드 정부가 지역경제 부양 효과를 내세우며 개입했고, 트럼프는 결국 2개의 골프코스, 클럽하우스, 450실 규모의 호텔, 950세대의 임대주택, 500세대의 주택 건설을 포함한 골프리조트 개발 계획을 내면서 건설 승인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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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코스는 모든 카트길에 잔디가 고르게 심어져 있었다.


코스 설계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에서도 인정하는 유럽의 저명한 설계가인 프레드 호트리가 맡았고, 최대 7,400야드를 상회하는 엄청난 길이의 코스 전장을 갖췄으며, 방대한 규모의 드라이빙레인지, 3,000㎡ 넓이의 연습용 퍼팅그린, 코스 내에 숨어있듯 조성된 보행로와 구내 도로망, 대규모 갤러리와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 등 대형 이벤트 개최에 필수적인 인프라를 갖췄다. 이 골프코스에 대한 트럼프의 포부는 크다. 그의 목표는 여기서 브리티시오픈이나 라이더컵을 개최하는 것이다.

골프장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는 돈이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 동양의 골프 여행자의 초라한 행색을 위아래로 훑으면서 ‘비싼 곳’, ‘가장 고급스러운 골프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린피가 195파운드이니 한화 30만 원에 해당한다. 애버딘에서 저렴하지만 전통 있는 퍼블릭 코스인 킹스링크스가 16파운드인 데 비하면 10배가 넘는다.

코스는 진입로부터 남달랐다. 4면 기둥으로 우아한 장식이 달린 시계 기둥 하나가 우뚝 서 있고 벽에는 ‘트럼프인터내셔널 스코틀랜드’가 멋진 글씨로 길게 새겨져 있었다. 500m 정도 들어가니 ‘트럼프’ 이름이 새겨진 헬기가 서 있으며 화강암 벽돌이 웅장한 영빈관이 나타났다. 내장객이 오면 우선 이곳에서 8등신 미녀들이 시원한 주스를 준비해 손님을 맞는다. 다시 차를 타고 해안가로 나가자 임시 클럽하우스가 나오고 코스가 펼쳐졌다.

1번 홀로 나가자 마자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페어웨이와 러프, 벙커, 그린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각 요소들이 뚜렷하게 끝 손질(매니큐어)되어 있었다. 모든 벙커는 수직의 벽을 가진 폿(Pot)벙커로 조성되어 있는데 턱에는 벌써부터 이끼가 끼고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카트길이었다. 홀을 마치고 다음 홀로 가는데 모든 게 푸른 잔디였다. ‘설마 인조잔디겠지’ 생각하며 잔디 잎을 뜯어보았더니 천연 잔디였다. 다음 홀까지 푹신한 푸른 카페트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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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홀은 그린 뒤로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는 북해 바다였다.


147야드로 짧은 파3 3번 홀에서는 그린 옆으로 바닷가 백사장이 열려 있었다. 이 코스를 위해 백사장과 북해 바다가 놓인 듯했다. 후반에는 백사장을 오른편에 두고 좌우로 듄즈 언덕길 사이로 북으로 향하는 파4 14번 홀과 무려 651야드나 되는 긴 전장에 18개의 벙커들이 놓인 파5 18번 홀이 장관이었다.

이 코스는 골프의 본령인 파앤슈어(Far & Sure)가 확실했다. 멀리 쳐야 하고 똑바른 방향으로 볼을 보내야만 했다. 페어웨이를 놓치면 볼을 잃어버려야 했다. 그날 잃어버린 볼이 거의 한 더즌은 될 것 같다. 무성하게 자란 러프의 긴 페스큐들과 대비가 되어서인지 페어웨이는 더 부드러웠다. 잘 맞은 볼은 엄청나게 굴렀다. 개장한 지 2년을 넘겼을까 했지만 마치 100년의 오랜 세월 풍화가 만든 링크스의 느낌이 났다.

코스 상태는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카트길까지 잔디로 되어 있는 것은 허세와 과장기 높은 트럼프를 보는 듯했다. 서비스도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코스를 만들기 위해 카트길까지 잔디로 초록 카페트를 깔아서 대체 얼마나 많은 골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카트길을 따라 맨땅 한 점없이 심어진 잔디는 처음엔 놀랐고 경이로웠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트럼프가 더 큰 베팅을 하기 위해 깔아놓은 허세이자 판돈인 것 같았다. [헤럴드스포츠=남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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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최대의 모래사구에 조성된 트럼프인터내셔널스코틀랜드는 최고의 풍경과 코스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남자가 도박에 열중하는 이유는 승부를 겨루는 놀이가 남자의 능력을 드러내고 강한 모습을 과시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 와다 히데키 <요약의 기술> 저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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