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P컵 인터뷰] ‘미LPGA프로에서 서울대 박사로’ 자원봉사자 양영아
“예전 미LPGA 스테이트팜 대회에서는 10년이 넘도록 1년에 한 번 자원봉사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미국에는 이런 발룬티어가 참 많죠. 한국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이런 큰 대회를 계기로 한국 골프문화도 보다 성숙했으면 하네요.”

이쯤이면 멋지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주니어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모교인 테네시주립대학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미LPGA 멤버로 활약했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스포츠문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서울대 박사과정(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을 밟고 있다. 개인레슨과 학업으로 바쁘지만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참여할까 고민하다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골프는 말할 나위가 없고, 영어도 능숙하니 미디어센터에서 통번역 업무를 돕고 있다. 한참 어린 ‘토종’ 자원봉사들에게 근무체크를 받으면서,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주어진 일을 소화한다. 물질적인 혜택은 자원봉사 유니폼과 중식뿐. 그래도 즐겁다.

이미지중앙

2015 프레지던츠컵 미디어센터에서 포즈를 취한 양영아 프로. 미LPGA 투어생활을 접고, 지금은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송도=채승훈 기자


양영아(37) 프로.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 초창기멤버와 함께 다년간 미LPGA에서 톱랭커로 활약, 골프팬들의 뇌리에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의 현재 모습이다.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리는데 제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눈에 띄지도 않을 미미한 일이지만 제게는 더 없이 좋은 경험이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국내 골프대회 사상 가장 큰 규모의 텐트(가건물)로 지어진 미디어센터(300석)의 맨끝 한 귀퉁이가 양영아 프로의 자리다. 통번역을 담당하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양영아 프로의 존재가 알려지면 ‘골프 전문성’ 때문에 부름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버바 왓슨 등 몇몇 미국팀 선수들과는 미국 주니어(AJGA) 시절 대회장에서 자주 마주쳤던 인연이 있기도 하다.

“왓슨이 주니어 때는 성적이 썩 좋지 않았어요. 원래 어렸을 때는 거리보다 꼼꼼한 스타일이 더 성적을 내잖아요. 프로에서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주니어 선수들도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이런 사례를 주목했으면 합니다.”

“이곳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 정말 와 보고 싶었어요. 저도 코스설계에 관심이 많은데, 선수시절 볼구질이 니클라우스와 같은 페이드였거든요. 참고로 한국에서는 코스설계하려면 토목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은 일단 포기한 상태예요.”

이미지중앙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는 양영아 자원봉사자.


어떤 분야건 고수는 확언을 잘 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었던 프로골퍼에, 지금은 개인레슨과 함께 공부에 전념하고 있지만 양영아는 “아직도 자신과 골프를 위해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작년에 박사과정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정말 긴장했어요. 골프는 딱 성적이 나오니 긴장감이 크지 않았는데, 면접이 포함된 입시는 남이 날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이니 마음이 두근두근하더라고요. 어렵게 들어간 만큼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데, 솔직히 어려서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동생과 매니지먼트 사업을 같이 할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그것도 신중히 생각해보려고요. 은퇴한 다른 프로들처럼 레슨만 집중할 수도 있지만 아직 어떤 길을 가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양영아 프로의 동생 양영의 씨(35)는 2005년부터 미국에서 한국선수들의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선수들의 최종목표는 미국인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그들의 미국진출과 현지생활을 돕는 일이다. 수십 명의 선수가 거쳐갔고, 지금도 박세리, 김세영, 이지영 프로가 속해 있다. 언니는 한국에서, 동생은 미국에서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양영아 프로는 고등학교 때 태평양을 건넌 후 미국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최근 3년여 동안은 거꾸로 한국에 적응 중이다. 대구의 의사집안에서 1남5녀 중 차녀로 태어나, 골프 ‘덕’에 현재 다섯딸 중 유일하게 올드미스로 남아 있기도 하다. 사람일은 알 수 없다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이번 프레지던츠컵의 자원봉사자 1,000명 중 한 명이 된 진정성과 성실함이라면 앞으로도 제법 괜찮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송도=헤럴드스포츠 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