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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몸으로 일궈낸 세인트루이스의 지구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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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한 세인트루이스 (사진=OSEN)


에이스 아담 웨인라이트는 4월 말 아킬레스건 파열로 일찌감치 전력에서 이탈했다. 4번 타자 맷 아담스 역시 부상으로 석 달 이상을 부상자 명단에서 보내야 했다. 맷 할러데이는 두 차례나 부상자 명단에 다녀오며 전체 일정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상 악령은 시즌 막판까지 세인트루이스를 괴롭혔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어깨 통증으로 시즌 아웃된 데 이어, 야디에르 몰리나도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 막판 지구 우승 경쟁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세인트루이스의 올 시즌은 베스트 전력을 꾸린 경기가 손에 꼽힐 정도로 부상 소식에 신음해야 했던 한 해였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되레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를 지배했다. 4월 18일(이하 한국시간) 지구 단독 선두로 올라선 이후 단 한 차례도 순위표의 맨 윗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1일 더블헤더 2차전에서 피츠버그를 11-1로 꺾고 3년 연속 지구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00승 59패. 올 시즌 100승 고지를 밟은 팀은 세인트루이스가 유일하다. 카디널스를 제외한 29개 팀 중 올 시즌 남은 일정에서 100승을 올릴 수 있는 팀은 없다. 2005년 이후 10년 만에 100승 달성에 성공했으며, 134년에 달하는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9번째 100승 시즌을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2011년의 필라델피아 이후 4년 만에 100승 고지를 밟은 첫 번째 팀이 됐다. 결코 완벽하지 않았던 세인트루이스의 올 시즌은 결과만큼은 완벽했던 시간이었다.

잇몸으로 버텨냈다. 선발 마운드는 로테이션에 포함된 5명의 투수가 모두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면서 웨인라이트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냈다. 올해 36세 시즌을 맞이한 존 래키는 13승을 따냄과 동시에 팀 내에서 유일하게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마이클 와카는 팀 내 최다승인 17승을 따내며 웨인라이트의 뒤를 이을 에이스 투수임을 입증했다. 시즌 중반 로테이션에 합류한 하이메 가르시아도 부상만 없다면 위력적인 구위를 과시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평균자책점은 2.99로 메이저리그 전체 단독 1위다.

타선에서 나타난 잇몸들은 보다 신선했다. 그리칙은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에서 나온 최고의 히트 상품. 시즌 초반 헤이워드의 부진과 존 제이, 할러데이의 부상 등으로 기회를 잡은 그리칙은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지난 8월 중순 부상으로 이탈하기도 했으나 시즌 .276의 타율과 17홈런 47타점은 당초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이다. 특히 할러데이의 부상으로 팀 타선이 고비를 맞이하는 형국에서 보여준 활약은 올 시즌의 세인트루이스 우승에 있어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순간이다.

지난 7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스티븐 피스코티도 단단히 한 몫 했다. 특히 그리칙이 빠져나간 공백을 피스코티가 완벽히 메워낸 점은 세인트루이스가 자랑하는 화수분 야구의 진면목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이너 시절보다 타격 성적이 더 좋아진 피스코티는 62경기에 나서 .310의 타율과 7홈런 39타점을 기록 중으로, 수비에서도 외야의 양 코너뿐만 아니라 1루 수비도 가능해 매서니 감독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해주고 있다. 올 시즌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0.8이상의 OPS를 기록한 선수가 맷 카펜터 한 명 뿐이었다는 점에서 그리칙과 피스코티의 활약은 세인트루이스에겐 가뭄의 단비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정규 시즌이 WS 우승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세인트루이스의 가을 야구에 대한 고민 역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과연 정규 시즌 내내 이어 온 잇몸들의 활약이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칙과 피스코티, 토미 팸과 같은 젊은 선수들이 큰 경기의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웨인라이트의 공백도 포스트시즌에서 보다 두드러질 공산이 크다. 단기전에선 상대에게 압박감을 줄 수 있는 에이스의 존재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인트루이스의 선발진이 견고한 것은 사실이나 커쇼나 그레인키, 아리에타처럼 상대에게 확실한 임팩트로 다가설 수 있는 선발 투수는 찾아보기 힘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시즌 막판 들려온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의 부상 소식도 세인트루이스의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으며, 와카와 랜스 린의 9월 부진도 불편한 구석이다. 웨인라이트가 이날 더블헤더 1차전에서 복귀전을 치렀으나, 그의 보직은 선발이 아닌 불펜에 한정될 전망이다.

몰리나의 몸 상태는 세인트루이스의 가을 야구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다. 손가락 부상으로 이미 정규시즌 아웃이 확정된 가운데, 포스트시즌 출전 역시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설사 출전이 가능하다 해도 손가락 인대가 찢어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는 몰리나가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85승 47패(.644), 그렇지 못한 경기에서는 15승 12패(.555)로, 그의 출전 여부에 따른 승률 차이가 대단히 컸다. 세인트루이스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평가받는 야전 사령관의 부상은 투수진은 물론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분명 세인트루이스는 정규시즌을 지배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정규시즌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 이전까지 2000년대 들어 100승 이상을 거두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팀은 총 14차례 있었다. 이 중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은 2009년의 양키스가 유일하다. 가장 최근의 2011년 필라델피아 포함 무려 8번의 경우에서 디비전 시리즈의 벽조차 넘지 못하고 허무한 패배를 기록한 바 있다. 최근 5년간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 역시 단 한 번뿐으로, 나머지 네 차례 중 세 차례는 디비전 시리즈 탈락이었다.

포스트시즌이 정규시즌과는 전혀 다른 무대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세인트루이스에겐 정규시즌의 영광은 잊고 그들만의 가을 좀비 DNA를 다시 발동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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