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Notimeover의 편파야구, 거침없는 다이노스] 어색한 라인업이 만들어낸 뜻깊은 대승
30일 경기결과: NC 다이노스 17-5 두산 베어스

고요하던 선발라인업에 불어온 변화

박민우-김종호-나성범-테임즈-이호준-이종욱-손시헌-지석훈-김태군.

너무나 뻔한 라인업. 공룡가족은 물론 다른 팀 팬도 줄줄 외우는 타순이다. 가끔 순서만 바뀔 뿐이라 굳이 경기 전에 라인업을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들의 끈끈함(?)은 KBO리그 최초 ‘베스트9 규정타석’이라는 대기록이 증명한다. 이는 역사상 MLB에서 6개팀, NPB 1팀만 작성한 진기록이다. ‘주전 라인업이 확고해야 어느 팀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김경문 감독의 지론과 장기부상 없이 공수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해준 베스트9의 노력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요즘 들어 ‘베스트9’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경기 후반에 등장하던 선수들이 선발로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조영훈-모창민-김성욱-최재원 같은 준주전급은 물론 '고양다이노스 베스트9' 김준완과 박정준도 한차례 이상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닌 계획된 변화다. 김경문 감독은 29일 넥센전을 앞두고 “주전이 많이 뛰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희생하는 선수도 있다. 기다리고, 더그아웃에서 소리 내주고, 참아주고 도와주는 선수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비주전 선수들의 노고를 칭찬했다. 그리고 남은 경기에 이들을 적극 기용할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지중앙

조영훈은 이 홈런으로 5년간 이어오던 '6홈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


이들은 보장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9일 경기부터 주전 못지않은 활약으로 역전승을 이끌었다. 3-0으로 끌려가던 경기초반 분위기를 바꾼 건 ‘포스트 이종욱’ 김준완이었다. 2회말 2사에서 ‘슈퍼맨 캐치’로 박동원의 뜬공을 잡아내며 분위기를 돌려놨다. 이어진 3회초 무사 1,2루에선 중전안타로 무사 만루를 만들며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모창민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쫓아가는 점수를, 조영훈이 우월투런포로 달아나는 점수를 올리며 작은 불씨를 대형 화재로 바꿔버렸다. 이후 더 이상의 역전은 없었고 이날 승리로 목동구장 8전 전승이라는 잔혹한(?) 기록을 만들었다.

‘중요한 1승’을 만든 어색한 라인업

30일 두산전은 서로에게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다. 두 팀은 호적수다. 지난해엔 상대전적 8승 8패 동률을 이뤘고, 올 시즌도 7승 8패로 팽팽했다. 가을이야기에서 만날 가능성 있는 상대와 갖는 마지막 맞대결. 승패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또한 상대 선발은 NC를 상대로 호투를 펼쳤던 스와잭(2경기 1승 평균자책점 3.29). 한번쯤은 악몽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9월 들어 부진한 모습(4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7.84)를 보여주던 우리 선발 손민한도 가을이야기를 앞두고 반전이 필요했다.

두산도 3위 수성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했다. 지난해 3,4위의 차이는 누가 먼저 홈경기를 치르느냐뿐이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해부터 신설된 와일드카드 제도로 인해 4위는 원투펀치를 다 쓰고 나서야 준 플레이오프에 임할 수 있다. 물론 와일드카드의 최초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경기의 선발 라인업은 어색했다. 김준완(중견수)-모창민(3루수)-박민우(2루수)-테임즈(지명타자)-나성범(우익수)-조영훈(1루수)-손시헌(유격수)-김성욱(좌익수)-김태군(포수).베스트9에서 김종호-이종욱-이호준-지석훈이 빠졌고 김성욱-김준완-조영훈-모창민이 빈자리를 채웠다. 1번 타자 김준완, 3번 타자 박민우라는 낯선 조합도 등장했다.

어색한 라인업이 중요한 경기를 지배했다. 공수의 중요한 순간마다 ‘기회가 고픈 이’들이 활약을 펼쳤다. 먼저 빛난 건 조영훈과 김준완. 조영훈은 방망이로, 김준완은 글러브로 자기재능을 뽐냈다.

4-0으로 앞선 3회초 1사 1,3루에서 조영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는 선발투수가 2회 헤드샷으로 퇴장당하며 마운드 운영이 꼬여버린 상황. 하지만 두산은 최근 5경기에서 경기당 8.2점으로 매서운 타격을 선보이고 있었기에 얼른 승기를 잡아야만 했다. 조영훈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현호의 4구째 높은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그대로 우측담장을 넘겨버렸다. 4-0에서 7-0으로 달아나는 쐐기 석점포. 연이틀 터트린 쐐기홈런이라 조영훈에겐 더욱 의미 있었다. 7회말엔 정수빈의 날카로운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막아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추격의 불씨를 꺼트렸다.

이미지중앙

이날 경기 '숨은 MVP'를 줄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은 단연 김준완이다. [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김준완은 넓은 수비범위로 두산의 추격을 조기차단 했다. 두 선두타자의 안타성 타구를 여유롭게 막아냈다. 2회말 선두타자 김현수가 때린 공이 외야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워닝트랙 가까이 가는 깊은 타구였지만 김준완은 이를 기다리며 잡아냈다. 빠른 스타트와 발 그리고 타격과 동시에 낙구위치를 파악한 수비센스가 돋보이는 장면. 5회말 선두타자 오재원의 안타성 타구도 여유롭게 잡아냈다. 이 역시 빠른 스타트와 과감한 대시가 주효했다. 게다가 정상적인 포구가 힘든 무릎위치에서 공을 잡아냈다. 수비력만큼은 이종욱에 버금갈만한 모습이었다.

8회초는 ‘기회가 고픈 이’들을 위한 무대였다. 선두타자 김성욱이 2루수 왼쪽 내야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김준완과 노진혁이 볼넷을 골라내며 기회를 키웠다. 모창민-조영훈-박정준-최재원은 4안타 4타점을 터트리며 상대 마운드를 초토화했다. 그동안 두산은 투수 4명이 마운드에 올라왔고, 8실점 했으며 수비로만 30여분을 보냈다.

이미지중앙

기회가 정말 고팠을 '프로 13년차' 박정준도 오늘 경기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대타기회를 잘 살렸다. [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결국 공룡군단은 17-5라는 값진 대승을 거뒀다. 상대전적 동률을 맞췄으며 손민한은 5⅓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시즌 11승째를 따냈다. 박민우도 3타수 2안타로 3번 타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겼다. 테임즈도 도루 1개를 추가하며 40-40 클럽 가입에 도루 1개만을 남겨뒀다. 스와잭에게 의도치 않은 악몽(?)을 심어줬고, 두산에겐 뼈아픈 대패를 선사했다.

무엇보다도 기회를 잘 살린 ‘기회가 고픈 이’들의 활약이 기쁘다. 공룡군단은 1군 진입한지 고작 3년째 되는 팀이다. 눈앞에 놓은 승리보다는 더욱 완성된 팀을 추구하는 것이 알맞은 팀이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를 좁히고, 높은 수준의 주전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경문 감독은 그러한 모습을 바랐고 선수들은 이를 완벽히 수행했다. 아쉽게도(?) 다음 시즌부턴 뻔한 라인업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Notimeover: 야구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며 전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는 혈기왕성한 야구쟁이. 사연 많은 선수들이 그려내는 패기 넘치는 야구에 반해 갈매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룡군단에 몸과 마음을 옮겼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