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경기, 15타수에서 안타 1개를 얻기 위해 두산이 치러야 했던 희생은 엄청났다. 두산은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홍성흔을 영입하며 원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에 보상선수로 김승회를 내줬다. 또한 신생팀 특별지명 탓에 NC 다이노스에게 고창성을 내줘야 했다. 만약 민병헌을 무리해서 등록하지 않았다면 20인 보호선수 명단에 민병헌을 넣지 않아도 됐다. 민병헌은 군 전역선수기 때문에 자동보호 대상자였다. 결국 민병헌 등록만 아니었다면 당시 '리그 최강의 5선발'이라 평가받던 투수와 '필승계투요원' 중 한 명을 묶을 자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롯데의 유망주 고원준 등록 논란으로 롯데가 시끄럽다.
2013년 말에 입대한 투수 고원준과 진명호가 22일 전역했다. 고원준은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롯데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롯데 최고의 투수 유망주로 부상했다. 진명호 역시 큰 키(191cm)에서 나오는 빠른공으로 '긁지 않은 복권'과 같은 기대를 받았었다. 이 둘 모두 '좋은 컨디션'이라면 언제든지 1군에 보탬이 될 선수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롯데가 치열한 5위 싸움을 하고 있으니 그 필요성이야 오죽하랴.
23일(오늘), 롯데 이종운 감독의 말을 인용한 기사들이 나오면서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얻었다. 이 감독은 "일단 고원준을 상동구장에 합류시킨 뒤 상황이 괜찮으면 다음 주에라도 1군에 등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팬들은 난리가 났다. 각종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이종운 감독과 프런트를 성토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고원준을 등록시키려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팩스를 구단 사무실에 보낸 팬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롯데가 고원준을 등록시킴으로서 발생할 득과 실을 따져보자.
오늘만 보는 야구
22일까지 롯데는 136경기를 치렀다.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와 함께 최다경기 1위다. 바꿔 말하면 롯데에게 남은 8경기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수다. 적은 경기, 그만큼 총력전이 가능하다. 롯데는 이번 주 3경기, 다음 주 5경기를 앞두고 있다.
롯데 이종운 감독(가운데)이 경기 종료 후 브룩스 레일리(왼쪽)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고원준이 1군에서도 고스란히 성적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예측을 위해서 평균에 의지해야 한다. 이번 시즌 KBO리그 선발투수는 평균 5.16이닝을 던졌다. 2년의 공백을 깬 고원준이 '평균만큼만 던진다면' 이번 시즌 5.16이닝에 나설 수 있다. 불펜으로 나서도 이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힘들다. 롯데가 만약 5강에 간다면 고원준의 쓰임새는 약간 커질 수 있다.
내일이 없는 야구
하지만 그 5이닝 남짓을 위해 롯데가 맞아야 하는 부메랑은 생각보다 강하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FA다.
롯데는 9월 초 엄청난 상승세로 5강 싸움에 불을 지폈다. 묘하게도 모기업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야구단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 직후 시작된 상승세였다. 신 회장의 발언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롯데가 이번 겨울,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에 대해 FA시장 큰 손으로 나서지 않겠나"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롯데가 고원준을 1군에 등록한 뒤 FA시장에 나선다면, 2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된 '21번째 선수'를 FA 선수 원 소속팀에 내줘야 한다.
얼마 전 롯데 퓨처스팀이 위치한 상동에서 만난 모 코치는 "이번 시즌 퓨처스 팀에서 쓸 만한 유망주가 많이 발굴됐다. 투수와 야수들 모두 향후 몇 년 안에 1군에서 보탬이 될 만한 재원"이라며 기대를 밝혔다. 실제로 김원중, 안태경, 조현우 등 신진투수들이 1군에 등록된 적 있으며 이 중 몇몇은 가능성을 보였다. 김대륙, 김재유 등 야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FA가 아니더라도 부메랑은 여전히 롯데에게 날을 세운다. 시즌 뒤 2차 드래프트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2차 드래프트는 FA 보상선수와 달리 보호선수가 40인으로 조금 더 여유 있다. 물론 1군 즉시 전력감과 미래 유망주들을 모두 묶자면 40인도 부족하다.
즉, 롯데는 고원준이 던질 5이닝 남짓과 간만에 찾아온 유망주 중 한 명을 맞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2012년 두산의 경우처럼 쓰임새가 큰 선수들을 잃기 십상이다.
시즌 초중반 시행착오를 겪었던 이종운 감독은 '내일이 없는 야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이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을 순리대로 가동하는 등 개선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고원준 등록을 고민하는 건 올 시즌 보여준 여러 실수 중 가장 '내일이 없는' 모습이다.
다행인 건 프런트라는 견제 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올 시즌 프런트가 현장에 개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고원준 등록문제 같은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단순히 올 시즌 뿐만 아니라 미래 팀 운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라며 '프런트와 교감 없는 등록'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요약하자면, 시즌 내내 현장을 믿고 맡겼던 프런트도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동안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래를 두고 손놓고 있는다면 방관이 된다. 프런트가 개입한다면, 들끓는 팬심은 그들의 증거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
민병헌의 6경기 15타수 1안타와 고원준의 5이닝 남짓은 여러 모로 닮아있다. 만일 그렇다면, 롯데가 치러야 할 대가 역시 두산의 그것과 닮았을 터. 감독은 눈앞의 1승과 팀의 미래를 동시에 봐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어렵다고들 토로한다. 둘 중 하나라도 놓칠 경우 직무유기다. 롯데 이종운 감독은 '내일이 없는 야구'도, '내 일이 없는 야구'도 신중해져야 한다.
*좌측담장 : 결정적 순간. '바깥쪽' 공을 받아쳐 사직구장의 '좌측담장'을 '쭉쭉 넘어갈' 때의 짜릿함을 맛본 뒤, 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에 빠진 젊은 기자.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야구가 좋고, 그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목표 아래 매일 저녁 6시 반 야구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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