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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timeover의 편파야구, 거침없는 다이노스] 믿음을 갖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 해커와 손시헌 그리고 테임즈
21일 경기결과: NC 다이노스 6-3 삼성 라이온즈

야구란 기다리는 스포츠다.
야구란 아홉 번의 공수 교대 사이를,
자신의 타격순서가 오기까지를,
투수가 공을 던지기까지의 인터벌을,
심지어 수비수가 자신에게 공이 오기까지를,
집중력을 잃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흔히 스포츠의 세계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야구에 적용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기다린다는 것이 된다.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 기회(機會)가 오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 문예상 ‘고바야시 히데오 상’의 수상자인 다카하시 히데미네가 쓴 야구 소설 『끝나야 끝난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부는 최상위지만 야구는 최하위인 가이세이고 야구부가 고시엔(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작가는 야구를 기다리는 스포츠로 정의했다. 21일 공룡가족이라면 이 정의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날 훌륭한 예를 봤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빚어낸 수훈선수, 해커와 손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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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다림이 없었다면 '에이스' 해커도 없었다. [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해커와 손시헌은 공룡가족에게 한 번 쯤 ‘애증의 선수’ 소리를 들었던 선수들이다. 극심한 슬럼프로 팬들을 애달프게 했었기 때문. 한국 생활 3년차에 접어드는 해커는 기다림이 낳은 ‘에이스’다. 2013년 단 4승에 불과했고, 2014년엔 8승까지 쾌속 질주한 이후 17경기 무승 8패라는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평균자책점이나 이닝 수를 봤을 땐 분명 ‘에이스’였다. 하지만 승리라는 결과물이 없어 ‘승운도 갖춘 투수를 데려와야 하나’라는 고민을 낳게 했다.

손시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FA 이적과 동시에 내야와 하위타선의 중심을 잡아준 손시헌은 올 시즌 역대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개막 9경기 무안타에 시달린 것. 지난해 마지막 4경기를 포함해 48타석 무안타로 이 부문 기록을 갈아치웠다. 4월 22일 LG전이 되어서야 1할에 올라섰고 전반기 종료직전에 간신히 2할을 넘겼다. 홈런(6개)과 타점(27개)은 전과 비슷한 페이스였지만, 타율은 전반기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51명 중 최하위였다.

‘애증의 선수’들은 ‘애정의 선수’로 변신했다. 해커는 찰리의 빈자리를 200% 메우며 NC는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거듭났다. 손시헌도 7월 타율 0.298, 8월 타율 0.304로 타격감을 되찾았다. 특히 8월엔 14타점을 쓸어 담으며 새로운 해결사로 급부상했다.

21일 삼성전은 두 선수가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사실 이날 경기를 앞둔 ‘에이스’ 해커의 어깨엔 많은 짐이 있었다. 김종호, 이호준이 부상으로 선발출장 할 수 없었고 테임즈와 김경문 감독의 이상기류로 인해 팀 분위기도 밝지 않았다. 또한 포스트시즌을 대비해서라도 삼성과의 천적관계를 정규시즌 내로 끊어야만 했다. 상대 선발도 토종 에이스 윤성환이었기에 치열한 투수전이 예상됐다.

해커는 부담감을 실력으로 이겨냈다. 빼어나다 못해 어마어마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마운드를 지켰다. 7이닝 중 6이닝에 주자를 내보냈지만 딱 1점만 허용했다. 1실점도 실책성 플레이에 의해 나왔다. 이날 해커의 공은 평소보다 더욱 정확하고 꿈틀거렸다. 속구와 커터는 스트라이크 존 좌우를 정확히 찔러댔다. 장기인 너클커브는 화려하게 춤추며 번트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선취점을 내준 삼성은 차근차근 쫓아가려는 듯 2,3회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 작전을 냈다. 하지만 해커는 번트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지영과 박해민에게 2개의 번트파울을 이끌어내 작전을 봉쇄한 뒤 유격수 뜬공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위기 상황에서의 침착함도 돋보였다. 4회 1사 1루에서 김상수에게 뜬공을 이끌어냈지만, 이종욱이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며 2루타가 되어버렸다(사실 넘어지지 않았더라도 아웃여부는 불투명했다). 심적으로 흔들릴만한 상황. 해커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타 채태인과 김재현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1점만 내줬다. 5회, 7회 득점권 위기에서 박한이를 상대로 보여준 인터벌 다툼도 일품이었다. 시간을 오래끌어 주심에게 경고를 받았지만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노련함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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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다림이 없었다면 손시헌에겐 '48타수 무안타'라는 오명만이 남았을 것이다. [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또 다른 ‘애정의 선수’ 손시헌은 타석에서 해커를 도왔다. 2회초 선두타자로 들어선 손시헌은 벼락같은 좌월 솔로포로 선취점을 뽑아냈다. 특히 윤성환의 주무기인 커브를 통타한 것이라 더욱 의미 있었다. 안정감을 찾기 시작한 윤성환을 또다시 뒤흔든 것도 손시헌이었다. 이번에도 좌측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 데뷔 이래 첫 연타석 홈런이었다. 과연 시즌 초 1할대에서 허덕이던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9회말 5-2로 앞선 2사 2루에서도 우중간을 가르는 큼지막한 2루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 내내 실책 없이 안정된 수비를 펼친 건 덤.

이들의 활약은 결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해커는 7이닝 8피안타 1실점 7탈삼진으로 시즌 15승째를 수확했다. 유희관과 함께 리그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섰고, 평균자책점을 2.74에서 2.67로 떨어트리며 1위 양현종과의 차이를 좁혔다. 손시헌도 3경기 무안타 뒤 시즌 첫 4안타 경기를 펼치며 타격감을 되찾았다. 5타수 4안타(2홈런) 3타점. 웬만한 4번 타자 기록이다.

만약 이들에게 믿음과 기다림이 아닌 재촉과 지적을 했다면, 그들은 애증의 선수에서 애정의 선수가 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의 승리는 가져가는 건 물론 NC가 상위권에 있을 수 있었을까?

김경문 감독과 테임즈에게도 믿음과 기다림을

우천취소로 경기가 없었던 20일. 공룡가족들은 두 눈이 확 뜨이는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김경문 감독이 테임즈를 강하게 나무라는 어조의 기사가 등장했기 때문. 내용은 이러하다. 19일 한화전을 앞둔 김경문 감독은 테임즈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지만, 이호준이 타격훈련 중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김경문 감독은 테임즈에게 출전 의사를 물었고 그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첫 타석에 나선 테임즈가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한 뒤 불만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김경문 감독은 팀플레이를 해치는 테임즈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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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즈와 김경문 감독의 관계도 믿고 기다려보자. 어느쪽이든 판단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


20일 경기를 앞두고 “NC는 용병을 위한 팀이 아니다. 용병이 없어도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 NC는 선수 한 명을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니다. 감독 입장에선 우리 선수들, 팀이 더 중요하다. 용병에게 끌려 다니지 않겠다”며 강경한 어조로 테임즈를 나무랐다. 20일은 물론 21일 경기에도 선발에 넣지 않았다. 그것도 1위 삼성을 상대로.

기사가 나간 직후 NC 다이노스 다톡(자유게시판)과 팬 커뮤니티는 수많은 글로 뜨거웠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테임즈가 초심을 잃었다. 김경문 감독이 팀을 위해 조치를 잘 취했다’라는 내용과 ‘테임즈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하는 처지에 있는 선수다. 개인 기록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팀에서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라는 의견이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둘의 사이는 좋았다. 테임즈는 5월 26일 사이클링 홈런(미국에서도 더블 A에서 한번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과 7월 9일 사이클링 히트를 코앞에 두고 마지막 타석에 나서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이 교체했기 때문. 기록 욕심에 의한 타격 밸런스 붕괴를 예방하고, 조평호와 조영훈의 출장경험을 쌓아주기 위함이었다. 단독결정은 아니었다. 교체직전 테임즈에게 의사를 물었고 테임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수의 감정을 배려하는 김경문 감독, 팀을 위해 개인 기록을 포기한 테임즈 모두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는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7월 16일 테임즈가 개인적으로 주최한 보육원 후원행사에 김경문 감독이 깜짝 등장한 것. “오늘 게임 비겨서 죄송하다. 테임즈가 못 쳐서 그랬다”라는 농담을 던진 뒤 하이파이브를 나눌 정도로 친한 모습이었다. 속사정은 타인이 알 수 없지만 겉모습으로는 불협화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 논란에 대해선 어느 쪽도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각각의 위치와 상황에 따른 입장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자세한 사정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고 그들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룡가족들더러 손 놓고 지켜보란 뜻은 아니다. 다만 확대해석 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닌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향으로 바라봐줬으면 싶다. 우리가 김경문 감독을, 그리고 테임즈를 믿는 만큼 확실한 결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Notimeover: 야구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며 전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는 혈기왕성한 야구쟁이. 사연 많은 선수들이 그려내는 패기 넘치는 야구에 반해 갈매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룡군단에 몸과 마음을 옮겼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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