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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 이성민이 지켜낸 알렉스 퍼거슨 경의 승리
# "인생에는 그것(SNS) 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게 낫다. 그것은 시간낭비다.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in your life without that. Get yourself down to the library and read a book. Seriously. It is a waste of tim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알렉스 퍼거슨 경이 SNS로 소동을 일으킨 팀 간판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에게 남긴 글귀다. 이는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 2015년 6월 19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 내야수 파블로 산도발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빠졌다. 전날 경기 도중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한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이에 산도발은 "나도 인간이라 실수했다. 동료, 팀, 메이저리그와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팬들께 죄송하다"며 사과를 전했다. 산도발은 구단 자체의 한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투수 이성민이 화두에 올랐다. 이성민은 지난 2일 수원 kt 전에서 또 한 번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롯데는 이번 시즌 14번의 블론세이브로 리그 1위다. 그 중 이성민이 기록한 건 무려 6개. 김성배, 심수창(이상 2개) 등에 비해 세 배 많은 수치로 팀 내 1위다.

하지만 팬들이 이성민에게 언성을 높이는 건 단지 블론세이브 탓이 아니다. 이성민의 SNS 이용 때문이다. 다음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캡쳐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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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의 SNS 이용을 캡쳐한 팬의 사진. 출처=엠엘비파크


이성민이 SNS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누군가를 '팔로우'했다는 내용이다. 선수 개인의 SNS 이용이 팬들의 분노를 자아낸 건 이때가 경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캡쳐된 건 오후 7시 6분. 사진 속 내용이 14분 전임을 나타내는 걸로 미뤄 짐작하자면, 이성민의 SNS 접속시간은 대략 6시 50분쯤이었을 것이다. kt의 2회말 공격이 한창이던 때다.

KBO리그 규약 제 26조 2항에는 '경기시작 후 벤치 및 그라운드에서 감독, 코치, 선수, 구단 직원 및 관계자의 무전기, 휴대전화, 노트북, 전자기기 등 정보기기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경기에 관한 정보전달을 막기 위해서다. 이러한 용도가 아니더라도 전자기기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성민을 향한 팬들의 실망
물론 불펜투수는 경기 초반 구단 버스나 라커룸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벤치 및 그라운드'라는 단서 조항과 상관없다는 변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출장하지 않았다 해서 경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2일 롯데 선발이었던 이재곤은 자신의 시즌 첫 등판에서 1이닝만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간 바 있다. 그 뒤 간만에 갖는 시즌 두 번째 등판이었다. 불펜투수가 언제 투입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더 큰 집중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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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SNS 사용으로 논란이 된 롯데 이성민. 사진=롯데 자이언츠

그럼에도 이성민은 2일 경기에서 1.1이닝 5피안타(1피홈런) 1볼넷 3자책점으로 무너졌다. 한창 부진했던 7월에도 보기 드문 최악의 투구였다. 자연히 경기 중 SNS 이용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집중하지 않은 호투는 없다. 100승 이상 기록하며 KBO리그를 대표했던 우투수 A는 "투수라면 매 순간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등판하지 않았을 때라도 경기에 집중해야 상대 타자에 대한 정보나 경기 흐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학습이고 그것이 성장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성민에게 필요한 '학습과 성장'을 위한 동력은 집중이다. 이성민은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SNS는 사생활이다. 경기 후 SNS 사용에 대해 팬들의 비난이 많지만, 선수 개인의 몫이다. 실제로 이성민은 끝내기를 허용하는 등 부진했던 경기 종료 직후 SNS 사용이 팬들에게 들통난 것만 수차례다. 그럼에도 이처럼 비판여론이 거세지 않았다. 경기 후기 때문이다. 경기 중 이용은 아예 다른 영역이다. 이성민이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던 그 순간, 몇몇 불펜투수를 제외한 롯데 선수단 전원은 그라운드에서 팀 승리를 위해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제도는 제자리
롯데 팬들에게 이번 사건은 낯설지 않다. 지난 시즌 루이스 히메네스가 경기 도중 SNS 이용으로 팬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SNS 운영과 관련한 특별한 내규는 없다. 다만 넓게 해석하면 '공인으로서 품위 유지에 소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SNS 이용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손아섭, 황재균 등 롯데 대표 선수들은 SNS를 '팬과의 소통'으로 이용해 사랑받고 있다.

타 구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자의 취재 결과 대다수의 KBO리그 구단이 SNS 사용에 특정한 내규를 두지 않고 있다. 다만 몇몇 팀은 고참 선에서 'SNS 사용을 자제하라'는 암묵적 통제가 있을 뿐이다.

물론 SNS를 통한 순기능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SNS 이용 자체가 마냥 시간 낭비라는 데 퍼거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이번 이성민과 같은 사건이 거듭 반복된다면 퍼거슨 경의 발언이 또 하나의 승리를 추가하는 꼴이 될 것이다.

롯데는 4일, 구단 차원 징계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대가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사안은 단순히 선수단 책임, 구단 내규로 돌릴 것이 아니다. KBO 차원에서 경기 중 집중하지 않아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이성민이 2일 지켜낸 건 팀 승리가 아닌 퍼거슨 경의 명언이었다. [헤럴드스포츠=최익래 기자 @irchoi_17]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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