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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timeover의 편파야구, 거침없는 다이노스] 더 이상 망연자실한 표정은 그만! 이재학의 미래를 위하여
3일 경기결과: NC 다이노스 6-7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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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이 NC 토종에이스인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재학은 NC의 보물이다. ‘토종선발투수 기근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스이자 NC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한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첫 시즌부터 에이스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15승 2패 평균자책점 1.55로 퓨처스리그를 평정했다. NC가 처음 1군에 모습을 드러낸 2013년엔 NC 역사에 여러 페이지를 장식했다. 개막 8연패에 허덕이던 팀에 희망을 보여준 창단 첫 승, 팀 역사상 첫 완투·완봉승이 이재학의 손끝에서 나왔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왕의 감격도 누렸다(평균자책점 2.88 10승 5패 1세이브) .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지난해에도 외국인 투수들과 듬직한 선발로테이션을 이루며 2년 연속 두 자리 수 승리를 따냈다(평균자책점 4.21 10승 9패). 나성범과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수확하며 병역특혜도 받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창단 첫 가을이야기의 서두를 장식하기도 했다. 기대와 달리 결과는 뼈아팠지만 미래를 위한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좋은 성적과 꾸준함을 보여줄수록, 이재학의 어깨는 점차 무거워졌다. 신생팀 혜택이 사라진 2015년이기에 더욱 그랬다. 팀은 2년 동안 5선발에 이어 4선발까지 찾아야만 했다. 원종현이 갑작스런 부상으로 이탈하며 유력한 선발후보인 이민호가 불펜으로 돌아갔다. 이재학에 대한 기대치는 ‘잘 던져줬음 좋겠다’에서 ‘잘 던져야만 한다’로 상향됐다. 이재학도 책임감을 느끼며 착실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속구-체인지업의 단조로운 투피치에서 벗어나 슬라이더라는 신무기를 장착했다. 목표도 10승만을 노리던 이전과 달리 15승-180이닝으로 크게 잡았다.

과도한 책임감은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됐다. 장점이던 제구력은 온데간데없었다.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기가 많았고, 4월엔 4사구가 삼진보다 많을 정도였다. 슬라이더도 채 무르익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의 배려로 불펜으로 옮긴 뒤 첫 승을 올렸지만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늘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시즌 초반 이재학이 선발예고 된 날에만 비가 내렸다(선발투수는 등판 일에 맞춰 몸을 만들기에 잦은 등판 변경은 컨디션 유지에 독이 된다). 개막 12일째가 되어서야 첫 선을 보였다. 거기에 4번째 선발등판에선 중지에 물집이 생기며 빨리 마운드를 내려왔다.

보물이기에 더욱 아꼈다. 찰리까지 부진하며 선발로테이션이 무너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문 감독은 이재학을 C팀(2군)으로 보내며 부활의 시간을 줬다. 이재학은 귀한 시간을 금쪽 같이 살렸다. 지연규 투수코치와 자신이 좋았던 시절 영상을 보며 문제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가 일찍 열리며 릴리스포인트가 전보다 높아졌던 것이 제구력 불안의 원인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정신 상태도 가다듬었다.

기다림은 성과를 보는 듯 했다. 복귀전인 6월 9일 SK에서 6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수확한 것. 특히 골칫거리였던 사사구가 하나도 없었음에 모두가 주목했다. 이재학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자신감과 환희가 보였다. 칭찬에 인색한 김경문 감독도 “승패를 떠나 사구가 한 개도 없었다는 게 정말 좋았다”라며 기뻐했다.

아직 완벽한 부활이 아니었다. 롤러코스터 피칭이 이어졌다. 14일 두산전 3이닝 3실점 패전투수 - 14일 한화전 5⅓이닝 무실점 9탈삼진 승리투수 - 27일 LG전 5이닝 4실점. 이전보단 나아졌지만, 이재학에 걸린 기대치엔 비해 흡족치 않은 성적이었다. 오랜만에 폈던 웃음꽃도 서서히 사라졌다.

3일 기자는 올 시즌 최다 탈삼진을 거뒀던 한화와의 두 번째 만남을 통해 그가 다시 자신감을 찾길 바랐다. 시작도 좋았다. 테임즈가 1회부터 큼지막한 투런포로 화력지원하고, 이종욱도 뛰어난 타구 판단으로 송주호의 2루타성 타구를 잘 막아냈다.

그런데 정근우의 센스 넘치는 기습번트가 이재학을 크게 뒤흔들었다. 2회 무사 1루에서 정근우가 갑작스런 기습번트를 댔다. 타구세기나 방향을 봤을 때 침착하게만 하면 정근우를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재학은 ‘침착’하지 못했다. 공을 쥐기도 전에 고개를 들어버렸다. 공도 이재학을 외면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실책을 범하며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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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의 '멘붕표정'은 더이상 마운드에서 보고 싶지 않다.


기자는 위기보다 이재학의 망연자실한 표정에 대해 아쉬웠다. 실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투수는, 특히 ‘에이스’는 감정을 숨겨야한다. 투수의 ‘불안함’이 곧 타자의 ‘자신감’이 되기 때문이다(감정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손민한처럼 너털웃음을 짓는 게 낫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1차전에서도 그랬다. 떨리는 포스트시즌 첫 선발 첫 번째 공이 좌중간 2루타로 연결되며 불안하게 시작했다. 이후 제구가 흔들리며 난타 당하기 시작했다. 한 타자 타자를 상대할수록 ‘멘붕’이 얼굴에 짙게 드러났다.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도 ‘에이스의 멘붕’ 표정을 따라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재학은 차분하고 섬세한 선수다. 매사에 신중하고 그라운드는 물론 밖에서도 흥분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지금까진 그런 성격이 장점으로 통했다. 하지만 에이스의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자 장점은 단점으로 바뀌었다. 더 잘 던지려다 투구 폼이 바뀌어 제구력을 잃었고, 제구력을 잃자 성적이 곤두박질 쳤고 자신감을 잃었다. 다행히 ‘육체적인 해결책’은 찾아내 성과를 거뒀지만 ‘정신적인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담금질이 필요할 때다. ‘에이스’는 팀에서 제일 더 어렵고 중요한 경기를 책임지는 선수다. 이미 NC 토종 에이스의 길을 걷고 있는 이재학은 그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코치나 심리상담사가 매번 마운드에 올라와 그의 멘탈을 잡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막말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전을 통해 강인하고 독해져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백전노장 손민한, 박명환이 충분히 잘 도와주리라 생각한다.

다른 팀에도 좋은 예가 있다. 현재 KBO를 평정하는 ‘토종에이스’ 양현종(KIA)과 MLB 문턱까지 밟았던 윤석민(KIA)이다. 2009~2010년 28승을 쓸어 담으며 토종에이스가 된 양현종은 부상과 부진으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흔들리면서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맡으려하고 자기가 내보낸 주자를 불펜에게 떠넘기기 싫어했다. 결국 3년 만에 두 자리 수 승리를 따냈고, 지금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KBO를 상징하는 에이스가 되었다.

현역 투수 한 시즌 최다패(18패) 기록을 가진 윤석민(KIA)도 좋은 예다. 그는 이재학과 비슷한 나이에 에이스가 됐고 예민한 성격도 비슷하다. 대신 윤석민은 팀의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했다. 풀타임 선발 투수로 처음 맞이한 2007년. 평균자책점 3.78로 수준급 피칭을 선보였지만 허약한 타선 지원으로 현역 투수 한 시즌 최다패에 해당하는 18패(7승)를 당했다. 이듬해 14승 5패를 거두며 에이스 호칭을 얻었지만 여전히 대접받는 에이스는 아니었다. 이어진 2년 동안 팀 사정에 따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신세가 됐다. 선발로 나가면 에이스라는 책임감을, 마무리로 나가면 팀 승리를 지켜야한다는 부담감을 늘 지니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을 잘 보냈고 2011년엔 17승 5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비록 타의(?)이긴 했지만 수많은 어려움과 정면승부하며 에이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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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든 이기든 언제나 마운드에서 이런 환한 표정을 지어주길 바란다.


올 시즌 이재학이 보여준 모습엔 아쉬움이 많다. 몇 경기 안에 좋아질 것이란 기대도 크지 않다. 하지만 기자는 더 길게 보고 싶다. 이재학은 젊디젊은 25살 투수다. 지금까지 NC에서 승승장구만 해왔고, 한 번쯤 고비가 올 때도 됐다. 더 큰 투수가 되기 위해 당장의 성적보다 정신적인 약점을 극복하는 데 더욱 집중하길 바란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당당히 던진거라면 결과가 안 좋아도 상관없다. 미국의 전설적인 에이스 크리스티 매튜슨이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라는 명언도 남기지 않았는가? 다음 경기에선 당당한 피칭을 보여주는, 핀치상황에서도 대범한 표정을 짓는 이재학을 보고 싶다.

Notimeover: 야구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며 전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는 혈기왕성한 야구쟁이. 사연 많은 선수들이 그려내는 패기 넘치는 야구에 반해 갈매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룡군단에 몸과 마음을 옮겼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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