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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을 극복한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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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을 극복하고 첫 우승에 성공한 박성현. <사진 제공=KLPGA>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제29회 한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는 골프 경기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경기 중반까지 4타차 선두를 달리던 박성현은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져 팬들의 안쓰러움을 샀다. 첫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결정적인 순간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이란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도중에 경기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 속으로 경기 결과를 예측하고 미리 축배를 들어 올리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플레이하게 된다. 넋이 나가면서 붕 떠버리는 것이다. 목표 지점으로 공을 보내는 데 집중되었던 근육과 신경망들이 한 순간에 방향감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박성현은 10,11번홀 연속 버디 후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졌다. 13번홀에서 보기를 범한 박성현은 14번홀(파5)에서 다른 사람이 됐다. 자신있게 휘두르던 스윙이 흔들렸고 갤러리의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트리플 보기를 범했다. 10번홀에서 10m가 넘는 장거리 버디를 잡은 퍼팅 실력이 사라져 1.5m 거리의 더블보기 퍼트마저 넣지 못했다. 이후 16,17번홀에서 1.5m 이내의 파 퍼트를 모두 놓치며 연속 보기를 범했다. 12~17번홀, 5개 홀에서 무려 6타를 잃은 것이다.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져 우승을 날린 선수는 부지기수다. 프랑스의 장 방드 벨드는 커누스티에서 열린 199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17번홀까지 3타차 선두를 달리다 18번홀에서 볼을 그린 앞 개천에 빠뜨리며 트리플 보기를 범해 연장전을 허용했고 결국 폴 로리에게 우승컵을 헌납했다. 최나연도 2008년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4홀을 남겨두고 4타차 선두를 달리다 허망하게 점수를 잃고 연장전에서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다행인 것은 박성현이 2주 전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이정민에게 연장전 패배를 당하면서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점이다. 박성현은 16,17번홀 연속 보기 후 모든 걸 내려놨다. 마음을 비우자 샷을 회복했고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티샷과 세컨드샷, 그리고 12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며 역전패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3라운드를 마친 후 경쟁자 이정민은 “우승에는 운(運)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우승 경쟁을 펼친 이정민이 16, 18번홀에서 보기를, 양수진이 17번홀 보기, 18번홀 더블보기를 범해 박성현의 우승을 도왔다.

승부의 세계는 잔인하다. 골프선수들은 누구나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걸로 끝은 아니다. 이를 극복해야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으며 수많은 선수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이런 피말리는 고통은 미래에 찾아올 우승 기회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런 성장통을 통해 수많은 위대한 선수가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박성현의 앞 날에 거침없는 행보가 예상된다. [청라(인천)=헤럴드스포츠 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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