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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챔피언 홍창수의 일갈, “한국 복싱, ‘솔직히’ 참 안타깝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제6회 한일 프로복싱 정기전’(BOXING ROOKIE COMPETITION 2015)이 열렸다. 한일 복싱 신예들이 맞붙은 이 대회는 2011년 열린 ‘한일 복싱 루키대항전’이 모태다. 올해도 2015 KBF(한국권투연맹) 신인왕전에서 탄생한 ‘슈퍼루키’들이 총출동해 일본 선수들과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를 벌였다.

23일 결과는 한국의 첫 패배였다. 향후 한국복싱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대거 나섰지만 일본 선수들과의 다섯 차례 대결에서 2승3패로 졌다. 이전 5회 대회까지 한국은 일본에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4승1무). 장정구(52), 유명우(51) 등 왕년의 세계챔피언들이 한자리에 모여 후배들을 응원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경기가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오하시 히데유키 일본 권투협회 회장이 단장을 맡았다.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꾸준히 한일 정기전이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오하시 회장의 공이 크다. 오하시 회장은 80년대 후반, 두 차례 장정구(52)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했던 상대다. 특히 1988년 도쿄에서 열린 15차 방어전에서 장정구에게 일곱 번이나 다운을 당하고도 끈질기게 달라붙던 오하시 회장의 모습은 아직도 복싱 팬들에게 생생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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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한일 프로복싱 정기전'을 맞아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전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홍창수(41)가 침체된 한국 복싱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진=권력봉 기자

일본팀에는 또 하나 반가운 얼굴, 바로 홍창수 전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41 일본명 도쿠야마 마사모리)이 임원으로 참여했다. 조총련계 재일동포 홍창수는 북한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다. 2000년 8월 WBC 슈퍼플라이급 6차 방어전에 나선 조인주(46)를 꺾고 챔피언벨트를 찼다. 약 1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홍창수는 오하시 회장의 권유로 이번 대회 일본팀 멘토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했다.

23일 정기전이 끝난 직후 만난 홍창수는 ‘일본의 첫 승리인데, (멘토로 참여한)당신 덕분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걸로 해달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얼굴로 한국 복싱의 현주소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진지한 얼굴로 한참 망설이다)솔직히 말하면, 한국 복싱 레벨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 오늘 여기 장정구 씨도 오셨지만, 옛날에 한국은 정말 강했다. (오늘 시합을 보면서)가슴 한편이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일본 복싱은 한국과 달리 점차 인기가 올라가는 추세다. 세계챔피언도 열 명쯤 있고… 오히려 (한때 인기였던)프라이드, K-1이 죽고 복싱은 살아남았다. 강한 챔피언들이 많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줬다. 물론 예전만은 못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사정이)괜찮다. 한국도 먼저 언론이 많이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보도해줘야 국민들도 주목하게 된다. 그래야 복싱을 하고 싶은 사람도 늘어날 것이고,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온다. 인기가 있어야 스폰서도 후원을 한다. 서로서로 상승효과를 내면서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국 복싱이 산다.”

한국 복싱에 애정을 갖고 있는 전 세계챔피언의 뼈있는 조언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정구 등 몇몇 국내 복싱인들은 ‘(홍창수가)정확하게 본 것’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홍창수는 200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에서 6개월 간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 당시 조인주 전 챔피언과의 재회도 화제였다.

북한에서 인민체육인으로 선정돼 훈장까지 받았던 그가 선수생활 은퇴 후 돌연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홍창수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 부분은 개인사정으로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저 “식당 일이 바빠 잠깐 씩 밖에 오지 못하지만, 한국이 좋아 시간 있을 때 자주 찾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홍창수는 현재 오사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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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수는 "앞으로도 이런 복싱이벤트가 활성화되고 자꾸 언론에 노출돼야 한국 복싱이 산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권력봉 기자

이번 대회를 개최한 버팔로프로모션의 대표인 지인진 전 WBC 페더급 세계챔피언(42)과 돈독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홍창수는 “비록 복싱계를 떠났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후배들을 지도하는 데 힘쓸 것”이라며 “이런 이벤트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300명 이상의 관중이 찾았다. 복싱 팬들은 오랜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복싱대회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주말 오후 스포츠채널에 복싱대회가 생중계되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 복싱의 현실에 한숨지은 사람도 많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이 복싱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모을 불씨 정도는 됐을지 몰라도, 그 불씨가 큰 불길로 번지기에 한국 복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홍창수의 말이 가슴에 남는 이유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nahyein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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