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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5일] 은행원 겸 역도선수 아야코 모리 ‘우리가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2015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14일 20시 현재 메달집계 선두는 40개의 금메달 포함 총 93개의 메달을 획득한 러시아다. 그 뒤를 34개의 우크라이나, 30개의 이란이 뒤쫓고 있다(합계순).

이날까지 결정된 359개의 메달 주인공 중 4분의1 이상이 러시아 선수들이다. 러시아 시각장애인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그만큼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저변이 두터움을 방증한다.

개최국이지만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은 이번 대회 전체 참가국 중 세 번째로 많은 62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임을 감안, 부랴부랴 팀을 꾸린 종목이 많다. 역도 종목의 경우, 대회 한 달 전에야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실제 훈련기간은 2주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벌써 금메달 4개 포함 17개의 메달을 따낸 우리 선수단이 대단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 가장 많은 선수단을 보낸 참가국은 어디일까. 87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러시아보다 많은 선수단을 파견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89명)이다. 장애인복지에 있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나라답다. 하지만 이번 대회 일본의 성적은 선수단 규모만큼은 못한 게 사실이다. 금4 은9 동4, 메달 개수는 한국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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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일본역도팀 히로유키 후지타 코치, 통역 황구현 씨, 아야코 모리, 모리사키 유리에 코치.

일본에서 장애인체육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지난 11일 여자 역도경기가 열린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일본 유일의 여자 역도 국가대표, 아야코 모리(40)를 만났다.

최경량급 48kg급에 출전한 모리는 등장부터 놀라웠다. 40세라고는 믿기 어려운 앳된 외모가 그랬고(꼭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경량급이라고 해도 그녀의 체구는 같은 체급의 선수에 비해 유독 가냘팠다. 모리는 매 차시기 경기대에 들어설 때마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잘 부탁드립니다)’, 나갈 때는 ‘오츠카레 사마데시타(お疲れさまでした-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심판과 관중을 향해 인사했다. 18명의 선수들 중 그녀만 그랬다.

모리는 왼쪽 눈에 선천성 시각장애를 입고 태어났다. 오른쪽 눈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점점 보이지 않게 됐다. 전맹이 된 건 20대 초반이다. 어릴 적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이 ‘공부하는 것보다’ 좋았다는 그녀는 원래 텐핀볼링 선수였다. 역도는 2011년 직장 동료의 소개로 시작했다. 트레이닝을 통해 힘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되고, 기록이 늘어가니 재밌었다. 특히 역도를 통해 정신적인 부분에서 한 단계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단다.

모리는 영국 글로벌 금융기업인 바클레이즈의 일본지사 인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본의 장애인취업률은 2014년 기준 45.9%에 달하며,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일본 후생노동성 자료). 반면 같은 해 37%(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취업률을 보였던 한국은 장애인취업자 수가 감소 추세에 있다. 취업자 중 태반은 비정규직이고, 월수입 200만 원 이상인 장애인은 전체 취업자 중 1.75%에 불과하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늦은 밤까지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사실 일본도 (장애인이 운동에 전념하기란)힘들어요. 한국처럼 생계유지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어도 스포츠를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일을 해야 하죠. 특히 역도는 사정이 어렵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별로 없거든요. 수영 같은 운동은 어릴 때 접하기가 쉬운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는 때는 보통 성인이 된 이후죠. 어린 유망주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더 갖춰져야 합니다. 한국 대표팀이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어요. 한국 스포츠인들은 굉장히 열성적이죠. 이웃나라인 만큼 서로 교류를 통해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힘든 건 일본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물었다.

“스포츠에는 드라마가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을 시작하는 계기는 각자 다르겠죠. 저처럼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한 단계씩 이루면서 새로운 드라마가 나타나요. 그리고 그 드라마가, 계속 운동을 하게 만드는 거죠. 어떤 드라마인지는 몰라요. 그걸 알면 재미도 없을 걸요. 자꾸만 생각지도 못했던 게 나오니까 가슴이 뛰는 거죠. 한국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처한 환경이 어렵다고 했나요? 물론 개선되어야할 부분이 많겠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체육관에서 왜 그들이 땀을 흘리는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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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아야코 모리의 스쿼트 경기 모습. 경기대에 들어설 때마다 심판과 관중에게 인사를 빼먹지 않던 모리다.

모리는 이번 대회에서 벤치프레스 35kg, 합계 195kg(스쿼트 65kg-데드리프트 95kg 포함)의 기록으로 1그룹 4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 여자 역도는 출전 선수 부족으로 인해 근접 체급끼리 4그룹으로 묶어(48~52kg→1그룹, 56~60kg→2그룹, 67.5~75kg→3그룹, 90kg→4그룹) 경기를 치렀다.

“세계대회는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경기대에 올라가보니, 조명이 저를 비추는 게 느껴지는데 게다가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짜릿하더군요. 3차시기 모두 성공하지 못해 아쉽지만 2.5kg 개인기록이 늘었다는 데 만족합니다. 끝까지 경기에 참가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번 대회 역도 경기가 열린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은 평소 공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장점을 살려 조명, 음향효과 등을 이용, 경기 내내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해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일본 역도팀 히로유키 후지타 코치도 “경기대에 선 모리의 몸이 무대 조명을 받아 빛나는 모습이 너무 찬란하고 감동적이었다. 그걸 본인도 느낀 것 같다.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회장 무대조명이 아주 잘 세팅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로 모리는 ‘다음 대회 역도 동메달’을 꼽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에 4등 했으니까요.” 스포츠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드라마를 기대하는 그녀의 표정이 더없이 순수했다. 얼굴이 동안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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