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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5일] ‘타인의 눈이 되는 문지기’ 시각장애인 축구(B1) 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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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축구 전맹 부문(B1) 한국 대표팀의 골키퍼 서보성(왼쪽)과 황태구(오른쪽).


2015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시각장애축구 전맹부(B1) 경기가 열리는 송파여성축구장은 본래 조용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 오롯이 공에 달려있는 방울(청각)과 공에 대한 감각(촉각)으로 공을 차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적을 깨고 한 줄기의 고함을 지르는 이가 있다.

“경호 옆으로! 좁혀!”
고함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축구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골키퍼’다. 이 종목에서 비장애인인 골키퍼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눈이 되어 준다. 이들은 감독, 가이드(혹은 코치)와 함께 특정 위치에서 선수들을 지시한다. 경기장을 3등분했을 때, 수비지역에는 골키퍼, 하프라인지역에는 감독, 공격지역에서는 골대 뒤의 가이드가 위치한다.

이들은 비장애인으로는 유일하게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는 ‘그라운드의 리더’다. 골키퍼는 크게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공을 막는 골키퍼 본연의 역할뿐 아니라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그라운드 밖의 감독과 코치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알려준다.

이번 대회 한국 대표 팀 골키퍼는 서보성과 황태구다. 이들은 각각 1992년생, 93년생으로 현재 경주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다. 둘 다 학교 선배의 권유로 골키퍼를 시작했다. 서보성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며 승낙했던 그때를 회상했다.

두 선수는 시각장애축구의 매력에 대해 “시각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라고 답했다. 이어 “그들의 공을 막았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특별한 애로사항도 있다. 서보성은 “비장애인 경기 골키퍼를 할 때보다 답답하다. 눈앞에 공이 있어도 잡지 못한다. 정해진 라인(세로 2m, 가로 5.16m의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만 공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태구는 “비장애인 골키퍼는 선수들의 눈이나 행동을 보고 공의 예상 궤도를 판단하는데, 시각장애 선수들은 그럴 수 없다. 또 공이 빗맞은 경우가 많아 공의 방향을 예측할 수도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시각장애축구 B1 경기 중에는 선수들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지나치게 포지션을 벗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그라운드 안에 있는 골키퍼가 이들의 간격을 잘 유지시켜야 한다. 서보성은 “경기 전 약속을 한다. 상대마다 라인간 거리도 다르다”고 했다. 황태구는 ”지시를 하다 보면 목이 자주 쉰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12일 중국전이 끝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그라운드 안에서 같이 호흡할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 있는 감독과 코치의 지시도 선수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에 가장 가까운 코치다. 서보성은 “공도 막고 동시에 이들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이 분산된다. 한 번은 지시하다가 공 막는 것을 잊어버려 실점을 하기도 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기 전 마음가짐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많이 떨린다. 경기가 시작해도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매 경기마다 자기 최면을 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국가대표라는 자부심 때문”에 모든 것을 견딘다며 왼팔에 있는 태극마크를 바라봤다.

골키퍼는 시각장애인 축구선수들의 가이드이자 파트너다. 이들이 옆에서 본 시각장애인들은 앞만 보이지 않을 뿐 비장애인과 똑같았다. 서보성은 “감각이 너무 발달해 있어 놀랐다. 시끄러운 바람소리와 폭포소리를 정확히 구분할 정도다. 기억력도 좋다”고 했다. 이들은 시각장애인과 소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들의 처우 개선에 생각이 많았다. 두 선수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시각장애인 스포츠의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서보성은 “그들의 스포츠를 알리고 싶다. 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부흥시키는 일을 찾고 싶다”고 했다. 황태구 역시 “시각장애인들 위해 발로 뛸 것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 그라운드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조율하는 것처럼 장차 시각장애인의 미래 기반을 다질 이들의 앞날이 더 기대된다.

한편 이날 1조 예선 경기에서 한국은 상대인 그루지야가 퇴장과 경고누적으로 선수가 부족해 기권승을 거뒀다. 비록 기권승이지만 처음 승기를 잡은 한국은 15일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예선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앞선 경기에서는 중국이 영국과 0-0으로 비겼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

■14일 시각장애축구(B1) 예선 경기결과
1조
영국 0-0 중국
한국(기권승) 5-0 그루지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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