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골프와 성(性)] 3월의 광란과 정관 수술
필자는 지난 달(3월) 수술 연수를 위해 미국 뉴욕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숙소에서 TV를 트니 온통 미국 대학 농구 NCAA 이야기였다. 미국 병원의 수술장에 들어갔을 때도 의료진들이 온통 농구 이야기를 하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미국 대학 농구의 결승 토너먼트가 열리는데,미국인들은 이를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 동안 미국에서 정관 수술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아니,농구와 정관 수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일까?

이미지중앙
정관 수술은 남성의 피임을 위한 수술이다.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묶게 된다. 다만 정액의 액체 성분은 계속 만들어지므로 실제 사정액의 양에는 큰 변화가 없다. ‘씨 없는 수박’처럼 정액은 계속 나오되 그 안에 정자만 사라지는 것이다.

정관 수술은 국소 마취로 외래에서도 간단하게 시행될 수 있는 수술이다. 게다가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향후의 피임과 성생활을 위한 수술에 가깝다. 그러므로 본인이 수술 시기를 선택해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미국 남성들은 굳이 많은 시기 중에 3월 대학 농구 시즌에 수술을 받으려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농구를 보기 위해서’이다.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남편들도 아내와 가족들의 눈치 때문에 집에서 마음 편하게 오래 스포츠 중계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정관 수술을 받게 되면 며칠 간은 활동하지 않고 푹 쉬는 것이 좋다. 정관 수술이 피임이 목적이다 보니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해서, 아내들도 정관 수술 이후만큼은 남편이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쉬는 것을 허용해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1년 내내 수많은 스포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국에서 왜 유독 대학 농구 시즌에만 정관 수술이 성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학 농구 시즌에는 낮부터 심야까지 계속해서 경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월드컵 때 하루 종일 이 경기 저 경기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4월의 마스터즈 골프 시즌에도 비슷한 이유로 정관 수술이 증가하지만, 정작 미국 최대의 축제인 슈퍼볼 시즌에는 정관 수술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슈퍼볼이 단판 승부이기도 하고, 또 슈퍼볼은 온 가족과 함께 하는 일종의 축제 성격이 짙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결혼한 남편들이 가족의 눈치를 무시하고 마음 편하게 스포츠 중계를 보기는 힘든 것 같다. 이번 주만큼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게 어떨까? 이준석(비뇨기과 전문의)

*'글쓰는 의사'로 알려진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자,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다수의 스포츠 관련 단행본을 저술했는데 이중 《킥 더 무비》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