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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태극마크 5개의 높이뛰기 사진 한 장
#‘포스베리’라는 이름은 육상 높이뛰기보다는 자기 계발이나 경영, 경제 등의 영역에서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차별화, 통찰력,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인류가 눈앞의 장애물을 넘을 때는 항상 정면으로 달려 든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딕 포스베리는 21살의 대학생일 때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자신이 창안한 배면뛰기 기술(몸을 돌려 등으로 바를 넘는 방식)으로 금메달을 땄다. 위대한 포스베리 플롭(BACK FLOP)의 탄생이었다(사실 시작은 1963년이란다). 모든 새로운 시도가 그렇듯 포스베리 플롭은 처음엔 웃음거리였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기술이 되었다. 아래 사진이 보여주듯 높이뛰기 동작은 이후 기록 향상은 물론 예술성까지 높아졌다. 1992년 미국올림픽위원회(USOC)가 포스베리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면서 “무엇을 이루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참 운치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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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세가 포스베리가 창조한 배면뛰기다. 사진은 크로아티아에서 크로캅(파이터)만큼이나 국민적 영웅으로 통한 높이뛰기 선수 블랑카 블라시치. 수려한 외모에 매번 특이한 춤으로 관중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이뛰기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이는 하비에르 소토마요르(48 쿠바)일 것이다. 그가 1993년 넘은 2m45는 22년째 인류가 중력과의 싸움에서 기록한 최고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 높이뛰기 선수도 약물 복용의 오명을 피해가지 못했다. 1999년에는 코카인 복용으로 팬암대회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출전정지 후 다시 재기했지만 2001년에는 도핑 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이 나오자 은퇴해 버렸다. 육상 세계기록 중 대다수가 스포츠를 통한 동서경쟁이 치열했던 냉전시대에, 약물의 힘에 의해 작성됐다는 의혹에서 소토마요르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육상 세계선수권(2011년 대구)을 개최하고도 노메달의 수모를 당한 한국에서는 관심이 없지만 근년 들어 높이뛰기는 세계 육상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심(24) 때문이다. 2013년 9월 2m43의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했는데, 이는 소토마요르의 세계기록과 불과 2cm 차에 불과하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2m35의 대회 신기록으로 가볍게 우승한 바심은 나이도 어린 까닭에 조만간 세계기록을 깰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의 동생 무아머 아이사 바심(21)도 인천에서 동메달(2m25)을 따는 등 성장세가 빨라 세계 높이뛰기계가 흥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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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멕시코 올림픽 높이뛰기에서 '포스베리 백 플롭'을 선보이고 있는 딕 포스베리.



#한국 높이뛰기도 한때 아시아 정상을 호령했다. 이진택(대구교대 교수)은 약관 20세이던 1992년 2m28㎝를 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한 후 한국기록을 7차례나 갈아치웠고, 아시안게임(2연패)과 유니버시아드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에서도 결선에 진출했고, 육상 세계선수권에서도 한국의 트랙과 필드 최고성적인 6위(1999년 세비야)를 기록했다. 물론 그의 한국기록 2m34(1997년)는 18년째 요지부동이다. 남자뿐 아니다 시계추를 조금만 더 과거로 돌리면 김희선(52 뉴질랜드 거주)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다. 한국기록을 6번이나 경신했고, 전국체전은 무려 14연패를 달성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86 서울대회 동메달, 90 베이징대회 은메달 등 정상권으로 활약했다. 압권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기록을 세우며 결선에 진출한 것이다(8위). 1990년 그가 세운 1m93은 2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세계 정상은 아니지만 한국 높이뛰기도 저력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세계적으로 높이뛰기 기록이 치솟을 때 한국도 기대주가 불쑥불쑥 나타났다. 소토마요르의 전성기 때 이진택이 아시아 지역 맹주로 이름을 날렸고, 김희선도 동서 냉전으로 기록경쟁이 치열할 때 한국 여자 높이뛰기를 높이 끌어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카타르발(發) 바심 돌풍이 거센 요즘 한국 남자 높이뛰기도 걸출한 두 신예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대표로 합숙훈련 중인 윤승현(21 한체대)과 우상혁(19 서천군청)이다. 윤승현은 지난해 4월 2m26으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웠고, 우상혁은 2013년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 우승(2m20), 2014년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 동메달(2m24 개인최고)로 모두 역대 한국 최고성적을 냈다. 두 선수 모두 이진택과 비슷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 유망주로 높이뛰기를 선정했다.

#얼마 전 의미 있는 사진 한 장을 받았다. 한국 높이뛰기의 과거와 미래를 압축해 놓은 듯했다. 이진택 교수가 동계훈련 중인 윤상현과 우상혁을 찾아 격려했다. 일단 3명이 모였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표팀 코치 도호영은 과거 이진택의 전성기를 함께 한 지도자다. 그리고 그는 김희선의 남편이다. 1988년 남녀 국가대표 커플인 도호영과 김희선의 결혼은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이진택 교수의 아내 김미옥 씨(대구 성동초 교사)도 함께 했다. 김미옥 씨도 여자 높이뛰기 국가대표 출신이다(높이뛰기 커플 2호).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높이뛰기를 주도한 전,현직 국가대표 5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뉴질랜드에 거주 중인 김희선 씨가 가세했다면 역사에 남을 사진 한 장이 될 뻔했다.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인천)에서 노골드에 그친 한국육상의 참담한 현실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기자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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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우상혁 선수, 도호영 코치, 김미옥 씨(전 국가대표), 윤승현 선수, 이진택 교수. 사진에는 없지만 이진택-김미옥 부부의 두 아들 민우(10), 오른쪽이 둘째 민훈(8) 군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한국 최고의 높이뛰기 유전자를 받은 둘은 현재 높이뛰기에 입문할지 고민하고 있다. 사진=이진택 교수 제공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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