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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깃발은 계속 휘날려야 해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유나이티드>

뮌헨 항공 참사란?

예전에 수원 서포터들이 제주도로 원정을 가면서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행기 원정을 바라보면 한 사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1958년의 뮌헨 항공 참사입니다. 이 사건은 지금의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모체인 유러피언 컵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경기를 마치고 급유를 위해 독일 뮌헨 공항에 착륙했던 맨유 선수들. 그러나 급유를 마치고 이륙하던 비행기가 눈에 덮인 활주로에서 속력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추락하여 주전 선수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축구가 각 나라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일어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바로 <유나이티드-뮌헨 항공 참사(United-Munich Air Disast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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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나이티드의 포스터.

버스비(Sir Matt Busby)의 아이들

이 영화에서 우리는 1950년대 축구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초현대식 건물과 화려한 전광판, 광고판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저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칙칙한 산업도시 맨체스터. 그 공장 지대 한 가운데 있는 칙칙한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 경기장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2대 8 가르마를 하고, 광고와 엠블럼도 없이 그저 붉은색 유니폼만 입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당대에 굉장한 열풍을 불러 일으켰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 매트 버스비가 있었습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버스비는 굉장히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축구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에야 10대 소년들이 실력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버스비 감독은 비교적 어린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여 잉글랜드 축구 리그를 휩쓸고 다녔지요. 그리고 그들은 우승팀 자격으로 유러피언컵에 도전합니다.

각 나라 축구 리그의 상위권 팀들이 참가하여 왕중왕을 가리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지금은 챔피언스리그의 위상이 워낙 높아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 위상이 잉글랜드 국내 리그보다 낮았습니다. 하긴 잉글랜드는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의 최강국이 종주국인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FIFA에 늦게 가입한데다 종주국의 특권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라는, 영국을 구성하는 4개 지역의 출전권을 제각각 인정받았던 시대입니다. 당연히 세계 축구의 중심은 잉글랜드 축구 리그라고 믿었고, 그렇기에 유러피언컵 진출은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 상대들과 싸워야 하는 귀찮은 일로 생각되었나 봅니다.

이 영화에서 버스비 감독도 그런 상황 속에 어려워합니다. 버스비는 당시 잉글랜드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유러피언 컵 우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요. 그래서 유고슬라비아 원정 경기 이후 국내 리그 경기의 일정을 연기시켜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유러피언컵을 깔보던 잉글랜드 축구 리그 측에서는 그 요청을 거절합니다. 주중의 유고 원정 경기 이후, 주말 경기에 무조건 복귀하라고 하지요. 빠듯한 일정 속에 고민하던 버스비 감독은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합니다.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당연한 요즘이지만, 당시만 해도 항공 교통의 안전성이 잘 확립되어 있지 않았지요.

그리고 뮌헨 공항에서 마침내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륙 시도를 3번이나 할 정도로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지요. 불안해하던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은 비행기 뒷자리가 안전하다며 뒤쪽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사고 직후 비행기는 두 동강나고, 뒤쪽 부분은 폭발합니다. 훗날 위대한 선수가 되는 보비 찰튼(Robert Charlton)은 당시만 해도 후보 선수 신세이던 풋내기였습니다. 보비 찰튼은 비행기 앞쪽에 앉아 있었고 간신히 죽음을 모면합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한동안 축구선수를 그만둡니다.

대부분의 선수를 잃은 맨유 구단은 구단의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맨유의 코치진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생존자들과 새로 뽑은 선수들을 바탕으로 다시 경기에 나선 맨유. 그들은 3개월 만에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구어냅니다. FA컵 경기에 나서는 맨유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에는 불사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다 타버린 재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불사조 말이지요.

영화를 통해 보는 1950년대 축구계의 모습

영화에는 경기장에 입장할 때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선수가 나옵니다. 사실 경기장 내 금연은 그 역사가 비교적 짧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의 하이라이트를 보다 보면, 벤치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관찰됩니다. 지금이야 난리가 나겠지만 흡연에 관대하던 과거에는 흔한 장면이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TV가 아닌, 영화로 된 뉴스를 보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지금 같으면 스포츠 뉴스에나 나올 축구 소식이 마치 예전의 ‘대한 뉴스’처럼 극장에서 상영되고, 사람들은 스크린에 맨유 선수들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칩니다. 참 정겨워 보이더군요.

나이트클럽에 간 맨유 선수들은 자신들이 축구선수라는 사실을 숨깁니다. 요즘에는 축구선수가 일반 근로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익을 올립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월급이 오히려 적었다고 하네요. 영국의 축구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Simon Kupfer)가 쓴 『사커노믹스(Soccernomics)』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의 톱클래스 선수들이 아디다스 같은 거대 기업으로부터 받는 협찬은 고작 유니폼과 신발 정도였다고요. 사실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명시한 보스만 판결(Bosman case) 이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몸값이 지금처럼 천정부지로 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파라치는 옛날에도 극성이었나 봅니다. 사고 후 실의에 빠진 보비 찰튼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는 모습까지 찍어서 신문에 내보낼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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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남동쪽 코너에 위치한 뮌헨 참사 추모 시계. 1958년 2월 6일에서 멈춰 있다.

역사를 잊지 않는 축구 종주국의 문화

축구 클럽이 스스로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영화 <유나이티드>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 가면 50년 전의 뮌헨 참사를 추모하는 여러 기념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고 당시의 시각에 멈추어 있는 시계는 아주 유명합니다. 축구장 모양의 기념판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추모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이 영화까지 만들어졌고요.

관중을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 구단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바로 클럽 자신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축구 클럽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 진정으로 팀을 위해 열성을 다했던 팬과 서포터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잊지 않고, 그것을 모두가 기억할 때, 클럽의 역사가 쌓이고 가치가 올라갑니다.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사람들의 추억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것이 퇴적되어 생긴 클럽의 역사.

<유나이티드>는 오늘날 최고의 리그, 최고의 팀으로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이 한 순간에 쌓인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K리그에게도 과제를 주고 있습니다. 클럽이 스스로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릴 때 그 클럽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평범한 사실 말이지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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