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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 (7) 골프로 늙어가는 법 - 구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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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 어려울 듯 싶다. 요즘 같은 황금 만능주의 시대에는 경제적 요건이 가장 중요할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봐 왔다. 명예나 권력도 그렇다. 뾰족한 정답이 없는 가운데 그나마 ‘자기가 하고픈 일을 오랫동안 즐기면서 사는 것’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골프도 그렇다. 잘 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이가 들고 신체능력이 떨어지면 비거리가 줄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골프의 이치다. 자연도 상대하지만 세월과도 싸우는 것이다. 참 사람 사는 이치와 흡사하다. 그리고 그렇다면 골프도 행복처럼 스스로 최대한 즐기는 것이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서두를 무겁게 시작한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원로 기업인 구자인 회장의 골프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참 행복한 인생, 부러운 골퍼라고 할 수 있다.

이 분은 올해 우리 나이로 76세다. 예전 같으면 ‘옹’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는 나이지만 외모나 현재의 삶, 그리고 골프를 보면 ‘옹’은 커녕 팔팔한 중년으로 봐도 좋을 정도다.

감사하게도 괜찮은 골프 교습가로 소문이 나다 보니 필자에게는 가끔 레슨을 겸한 라운드를 한 번 하자는 문의가 들어온다. 4년 전 그러니까 구자인 회장이 72세 때 연락이 왔다. 그때 처음 ‘구자인 골프’를 접했다. 안성에 위치한 마에스트로 컨트리클럽이었는데 솔직히 차를 타고 골프장으로 가면서 ‘오늘은 쇼트 아이언을 참 많이 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과 골프를 하면 레이디 티 바로 뒤에 위치한 시니어 티나, 잘해야 화이트 티에서 치니 프로에게는 줄곧 짧은 세컨드 샷이 걸리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첫 인상은 7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 젊어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화이트 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쪽으로 향하다 더 앞으로 가자고 하면 시니어 티로 가면 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요?”

“예?”

“백 티로 가야지요.”

필자와는 반대로 이미 절반 정도 백티로 향하던 구자인 회장이 나무라듯이 이렇게 말했다.

“프로하고 치는데 여기서 쳐야죠.”

이렇게 놀라면서 시작해 공을 치는데 이 노익장이 계속 파로 갔다. 무려 7번홀까지 그렇게 파행진을 펼쳤다. 백 티에서 치는데 거리도 좋았고, 아이언샷이나 쇼트게임도 훌륭했다. 샷 하나하나 마다 관록이 배어 나왔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
마에스트로 골프장의 8번홀(파4)은 상당히 어렵다. 왼쪽이 OB지역이고, 오른쪽에는 큼직한 연못이 버티고 있다. 티샷이 캐리로 210야드는 날아가야 페어웨이를 지킬 수 있다. 백 티에서 보면 페어웨이가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아마추어들에게 이런 홀은 참 어렵다.

그렇다면 프로들은 이런 홀을 어떻게 공략할까? 자신이 가장 잘 치는 구질을 택한다. 페이드 구질인 경우 왼쪽 OB지역을 겨냥하고, 드로우가 좋다면 오른쪽 연못을 보고 친다. 필자는 전자다. 살짝 OB 지역을 겨냥한 후 티샷을 날려 페어웨이에 볼을 안착시켰다.

역시 구력이 있어서일까? 필자의 플레이를 유심히 본 구 회장은 “아! 프로들은 이렇게 치는군요. 난 여기만 오면 머리가 아팠는데”라며 필자의 코스공략을 그대로 따라 했다. 즉 OB지역을 겨냥하고 티샷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볼은 되레 드로우가 걸리며 OB 구역으로 날아갔다. 원하는 대로 페이드가 안 걸린 것이다. 두 번째 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잠깐 레슨 포인트 하나. 프로들은 드라이브 샷을 연습할 때 무조건 똑바로 멀리 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10개를 치면 5개는 바로 보내고, 2개는 페이드, 2개는 드로우, 그리고 1개 정도는 낮은 탄도의 볼을 구사한다. 여러 가지 기술을 걸어보는 것이다. 이게 아마추어와 가장 큰 차이다. 아마추어는 제법 고수라고 해도 프로처럼 티샷을 자신이 원하는 구질로 날려 보내기가 쉽지 않다. 아마추어 최상급자, 싱글도 완벽한 싱글이 돼야 비슷한 흉내가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8번 홀에서 ‘양파(쿼드러플 보기)’를 범하고도 구 회장은 최종 76타를 적어냈다. 보기도 4개가 있었지만 버디를 4개나 잡은 것이다.

정말이지 필자는 놀랐다. 조금 과장하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지구상의 70세 이상 골퍼 중 가장 잘 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필자가 함께 쳐 본 사람으로 그 대상을 제한하면 100% 맞는 명제가 된다. 심지어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구자인 회장의 골프는 아마추어로는 약점이 거의 없었다. 특히 비거리는 나이를 고려하면 경이적이었다. 거리가 나가지 않으면 OB 2개를 내고 어떻게 76타를 치겠는가? 어떻게 18홀에서 버디를 4개나 잡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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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함께 나이를 먹는 법. 골퍼들이라면, 그리고 행복을 원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구자인 회장의 골프를 참고해서 말이다. 삽화=김봉민 일러스트레이터


1초20의 시간

18번홀의 티박스에 와서 필자가 물었다.

“회장님은 스윙할 때 어떤 생각을 갖고 볼을 치십니까?”

진주 출신으로 살짝 경상도 억양이 섞인 그 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함께 라운드를 하면 좀 친해진 까닭에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준으로 존칭도 없어졌다.

“임 프로님, 나는 필드에 오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쳐요. 손목, 어깨, 몸에 힘을 빼고 그냥 클럽의 헤드 무게로 탁 쳐 삐리지.”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손바닥을 딱 치고 말았다. 그리고 답했다.

“그게 정답입니다. 그게 골프입니다. 골프 스윙은 아마든 프로든 1초20, 1초25면 다 끝납니다. 1초20 사이에 무슨 엄청난 생각을 하겠습니까? 생각을 한다고 해도 이루어지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많은 아마추어들이 연습장에서는 편하게 스윙을 하는데, 필드에만 나오면 오만 생각을 다합니다. 그래서 공이 안 맞지요. 그러니 회장님 말이 맞습니다. 프로도 그렇게 합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프로는 아니지만 인생과 골프의 경륜이 스윙을 프로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라운드 후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면서 필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를 전했다.

“저는 회장님이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회사 잘 되고, 자제분들 잘 키워놨고, 건강하고, 또 골프까지 이렇게 잘 치니 말입니다.”

“허허, 그런가? 그런데 역설적이게 나도 골프에서 힘든 게 하나 있어.”

“그렇습니까? 이 연세에 이 정도면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데요.”

“바로 그게 문제야. 친구들하고 칠 때가 아주 괴로워. 다들 실버 티나 잘해야 화이트 티에서 치자고 하니까 말이야.”

“하하,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OB 두 방을 제외하면 꼭 에이지슈트를 한 셈입니다. 축하합니다.”

“에이지슈트 축하? 허허 일주일에 한두 번은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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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스포츠의 김봉민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려준 필자의 80세 가상 이미지^^. 구자인 회장처럼 유쾌한 에이지슈터가 되고 싶다.


에이지슈터가 되는 평범한 비밀
이쯤이면 이 에이지슈터의 비결을 밝힐 때다. 이게 참 중요하다. 필자의 질문에 구자인 회장은 자신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듣고 보니 그게 답이었다.

평택에 공장이 있는 까닭에 근처로 이사를 간 구 회장은 근처 골프연습장을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그냥 매일 가는 것을 넘어 회비를 조금 더 주고, 아예 연습장 키를 받았다. 새벽 4시에 주인보다 자신이 먼저 연습장으로 가 문을 열고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골프장의 문을 따고 들어가 등을 켜고, 타석에서 홀로 볼을 친다. 이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365일을 그렇게 한다.

시간은 2시간이다. 그러면 6시가 조금 넘어 연습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서 샤워하고, 주스 한 잔을 마시고 회사로 향한다. 7시 40~50분이면 도착이다. 이미 회사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겼기에 중요한 사항을 체크만 하면 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 9시면 일이 끝난다. 그러면 그 때부터 라운드 파트너를 찾는다. 며칠 뒤나 몇 주 뒤 함께 골프를 칠 상대를 탐색하는 것이다.

구 회장에겐 3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골프를 칠 사람들의 연락처를 담은 수첩이 있다. ‘누구 하고 골프를 치나?’ 골프도 즐겁고, 마음이 쏠리는 골프 파트너를 고르는 즐거움에 산다고 한다. 물론 성공한 기업인으로 법인 회원권이 있으니 전화를 해 초청하면 모든 비용은 구 회장이 부담한다. 작은 액수의 내기도 한다.

왜 그 유명한 ‘2만 시간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공부도, 사업도, 골프도 그렇다. 노력하는 이를 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하루에 2시간씩 매일 연습을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어떤 스윙이론도 필요 없다. 76세인데 캐리로 쉽게 250야드를 넘기는 비거리도 이런 연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백 티에서 다 투온을 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사실 비거리도 근력이 없어서 공이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습볼 많이 때리면 거리는 는다.

구자인 회장 편의 레슨은 바로 이것이다. ‘제발 연습 좀 하자’이다. 공이 잘 맞지 않는다고 짜증을 낼 필요가 없다. 그 이전에 자신이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새벽 4시에 골프장에 가 2시간 동안 연습을 하면 불과 수개월 만에 실력이 엄청나게 늘 것이다. 아니 하루 1시간만 그렇게 해도 누구나 다 골프를 잘 칠 수 있다. 부디 연습에는 충실하지 않으면서 이론만 머리로 잔뜩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골프가 피곤해 진다.

독자들에게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과연 나도 저 나이에 저런 공을 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 필자도 이때 결심했다. 72세에 OB 2개를 내고 76타를 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60이 넘으면 아무리 바빠도 하루 2시간 이상은 골프연습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필자도 절로 에이지슈터가 되지 않겠는가? 구자인 회장의 골프를 보면서 임진한이 느낀 교훈이다. 이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한다. 에이지슈터, 참 멋지지 않은가?

구자인 회장과는 이후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낸다. 삶 자체가 긍정적이고, 골프사랑이 대단하기에 대화를 나눌 때마다 필자가 배우는 게 많다. 여전히 하루 2시간 연습을 한다. 인품 훌륭하고, 매너 좋고 하니 구 회장과 한번 라운드를 하고 싶어 하는 싱글 핸디캐퍼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심지어 필자에게도 구자인 회장과 한번 골프를 치고 싶다고 끼워달라고 하는 분도 있다. 존경을 받는 것이다. 당연히 골프 파트너를 고르는 즐거움도 여전히 누리고 계신다.

구자인 회장은 필자에게 80이 넘으면 다시 에이지슈트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직 4년이 남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심심치 않게,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쉽게 에이지슈트를 하는 것으로 안다. 몇 년 뒤 나이보다 훨씬 적은 스코어를 적어내는 80대 에이지슈트를 보게 될 것 같다.

참고로 에이지슈트는 남자의 경우 6,000야드 이상, 여자는 5,400야드 이상의 전장을 갖춘 코스(18홀 기준)를 기준으로 한다. 에이지슈트 중 나이보다 스코어가 더 적은 세계기록은 2007년 미국에서 93세의 에드 에바스티 씨가 기록한 72타(-21타)다. 최고령 기록은 103세-103타( 1972년 아더 톰슨)다. 어쩌면 구자인 회장은 이미 비공식 한국기록은 갖고 있고, 연세가 더 드시면서 세계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골프로 늙어가는 것에 정답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구자인 골프’는 필자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구자인 회장은 자신이 즐기는 골프로 인해 생뚱맞게 이슈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사진이나 회사명 등 개인정보를 칼럼에 포함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단 필자와의 친분을 고려해 이름 석 자는 밝혀도 좋다고 했습니다. 독자 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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