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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공부벌레들의 아시안게임 도전기

지난 8월 대한수영연맹에서 발표한 아시안게임 출전 명단에 서울대 재학생 두 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바로 양준혁(20)과 정정수(19 이상 서울대 체육교육과)다. 금메달 후보도 아닌 평범한 선수인 까닭에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이들의 스토리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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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재학생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수영에 출전하는 정정수(왼쪽)와 양준혁.

양준혁은 남자 자유형 계영 400m와 800m, 정정수는 계영 800m에 출전한다. 지난 7월 열린 MBC배 수영대회 겸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두 선수는 자유형 200m에서 각각 전체 3위(1분50초59)와 4위(1분51초07)를 기록하면서 계영 800m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뒤이어 양준혁은 자유형 100m에서도 50초77의 기록으로 3위에 올라 계영 400m 출전권을 확보했다.

보통 엘리트 선수들은 공부보다는 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이 두 선수처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운동선수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없는 서울대에서 이 둘은 어떻게 태극마크까지 달 수 있었을까?

운동과 공부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
운동선수들의 학업량 부족은 사실 고질적인 우리네 병폐다. 그래서 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운동선수들의 사회적응이 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선수 본인이나 지도자의 잘못만도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운동도 빠르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부할 시간까지 끌어 쓰는 것이 묵인됐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진국에 비해 체격조건과 인프라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외국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운동 몰입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운포자'(운동을 포기한 자)를 바탕으로 세계 10대 스포츠강국 한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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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안경을 쓴 인상이 운동선수라기보다는 모범생에 가까워 보인다.

대학생과 수영선수, 두 가지 인생을 사는 법

양준혁과 정정수는 공부할 시간이 없는 환경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보기 드문 운동선수였다. 정정수는 “고교시절 훈련시간에는 수영을 하고, 숙소로 오면 공부를 했다. 지루한 일상이었다”고 학창시절을 회고했다.

정정수처럼 일찌감치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대표급 선수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는 까닭에 쉬는 시간에는 철저히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둘은 훈련이 끝나면 다시 책상에 앉아 '국영수'와 씨름을 했다.

서울대 입학 후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생활은 계속됐다. 양준혁은 “다들 우수한 학생들이라 공부만 해도 따라가는 것이 힘들죠. 수영을 병행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하다”고 대학생활을 설명했다.

아침 7시에 기상해서 학교를 가고, 오전9시부터 오후 3시나 5시까지 수업을 몰아서 듣는다. 짧은 공강시간에는 운동을 할 수 없기에 이 시간을 활용해 숙제나 부족한 공부를 한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훈련이다. 관악구의 서울대에서 수영장이 있는 송파구의 서울체고까지는 거리가 있기에 이동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그래도 하루 4~6시간씩은 물 속에서 보낸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웨이트트레이닝까지 해야한다. 모든 훈련을 마치면 밤 10시.

이들의 대학생활은 이렇게 단순하다. 그러니 또래 대학생들처럼 연애나, 동아리활동 등 다른 쪽에 신경을 돌릴 겨를이 없다.

듣기만 해도 고된 일과인데 “그래도 즐겁다”고 한다. 정정수는 “가끔이지만 평범한 대학생처럼 동기들이랑 술도 마시고, MT도 가봤다”고 말했다. 운동선수, 그리고 국가대표에 앞서 평범한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둘은 인터뷰 중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렇게 주문했다. “2학기에는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이 잇달아 열리는 까닭에 물리적으로 수업듣기가 쉽지 않다. 어렵겠지만 계영 메달과 학업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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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국체전에 출전한 정정수.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늘 바쁘다.

포부

두 선수 모두 메이저 국제 대회를 뛴 경험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렵게 그 기회를 잡은 만큼 각오도 남달랐다(정정수는 2013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바 있고, 양준혁은 메이저 국제 대회 경험이 없다).

양준혁은 “일단 지금은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이어 전국체전에서 주종목인 100m와200m에서 49초 대((200m는 1분49초)로 들어오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정정수 또한 “인천 아시안게임에 힘들게 출전하게 된 만큼 최선을 다해 팀에 누가 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메달 색깔은 박태환이 결정하는가?
많은 이들이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계영에 대해 이야기 할 때“한국은 박태환 덕” 이라고들 한다. 박태환이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중심 멤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박태환 이전부터 이 종목은 한국, 중국, 일본의 3파전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이다.

이번에도 한중일 3국은 박태환, 쑨양, 하기노고스케라는 특급스타들을 필두로 계영 멤버를 꾸린다. 비록 박태환이 자유형 200m에서 올 시즌 아시아 최고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지만, 쑨양이나 하기노와의 기록 차이가 1초도 채 되지 않는다. 스타들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은 세 명의 계영 주자가 메달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다.

전망은 매우 밝다. 계영 400m와 800m에서 모두 한국신기록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현 한국기록은 3분19초02와 7분23초61). 멤버들의 개인기록만 계산해도 쉽게 경신이 가능해 보인다. 스타트 신호를 듣고 출발하는 개인 종목보다 이어 달리는 계영의 기록이 더 좋기에 큰 이변이 없는 한 400m에서 4초, 800m에서는 8초 이상 줄일 전망이다.

문제는 역시 중국과 일본이다. 위 두 종목에서 모두 아시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장거리 강국인 일본과의 한 판 승부가 필연적이다. 2010 광저우 대회 계영 800m 경기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13초가 넘는 큰 차이로 3위를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긴 바 있다.

난관은 있지만 충분히 좋은 결과를 넘볼 수 있다. 남자 자유형 계영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서울대 재학생 메달리스트’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GNS 김민성 기자 keepstrugglin@gmail.com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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