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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 골프칼럼] (16) 한국오픈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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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취소를 알리고 있는 제63회 코오롱 한국오픈의 홈페이지.


대한골프협회(KGA)가 지난 15일에 우리나라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오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취소 사유로 코로나 사태에 따른 선수와 관중의 안전 때문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데 한국프로골프협회(KLPGA)의 무관중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지금, 이를 1958년부터 62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개최했던 최고 전통의 대회를 취소하는 합당한 사유로 받아들이는 골프팬은 많지 않은 듯싶다.

먼저, 대회 취소를 KPGA의 탓으로 오해하고 비판하는 팬들이 있어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오픈은 KPGA의 대회 리스트에 들어있지만 KGA가 주관하는 대회다. 대회의 개최와 취소의 책임은 전적으로 KGA에게 있고, KPGA와는 무관하다.

대한골프협회의 당초 대회 일정을 보면 6월 18일~21일에 한국여자오픈이 열리고, 바로 다음 주인 25일~28일에 한국오픈이 열리도록 계획돼 있었다. 한국오픈의 전격 취소로 이제 한국여자오픈만 예정대로 열리고 남자선수의 대회인 한국오픈은 연기도 아니고 취소가 된 것이다.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 대해 이렇게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오픈은 스폰서인 코오롱이 대회코스 우정힐스골프클럽을 제공하고, 상금 12억 원을 기부하여 타이틀 스폰서가 됐다. 그래서 공식 명칭이 ‘코오롱 한국오픈’ 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대회를 주관하는 참된 주인은 대한골프협회라는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코오롱이 대회 취소를 원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대한골프협회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취소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폰서가 없으면 대타를 구해 오던지, 아니면 회장단이 기업을 돌며 모금을 해서라도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이 점은 KGA의 허광수 회장이 재계에 영향력이 있는 거물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아주 작은 상금을 걸고라도 한국오픈을 개최해야 한다. 이는 선수와 팬, 그리고 한국골프를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이다. 예컨대 한국여자오픈의 총상금인 10억 원에 비해 1/10인 1억 원을 걸더라도 대회를 여는 것이 마땅하다. 내셔널 타이틀 대회는 상금도 상금이지만 돈을 뛰어넘는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선수들에게 상금 대신 명예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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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픈이 열려온 우정힐스 18번 홀의 모습. 2020년 한국여자오픈은 있는데, 한국오픈이 없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연간 4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대한골프협회가 고작 1억원의 상금을 준비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국 최고의 남자선수들은 그렇게 작은 상금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금보다 중요한 명예가 있기에 선수들은 호응할 것이라고 믿는다. 선수들도 좋은 플레이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개인후원 등에서 이득이 생긴다. 적은 상금으로 우리나라 골프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회가 될 수 있지만, 역으로 가장 명예로운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더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도 있다.

최근 필자가 만난 A선수는 “우리가 상금만을 위해서 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만 있으면 충분하고, 무엇보다 팬들이 우리를 잊지 않도록 목숨 걸고 플레이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울먹하는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가득 배어 있었다. 대한골프협회에 적을 두고 있는 필자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았다.

스폰서가 있는 한국여자오픈이 열리는 까닭에 질병으로 인한 '안전'은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스폰서가 없으니 대회를 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참에 대한골프협회가 스폰서로부터 독립해 내셔널 타이틀의 주관자와 주최자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어렵지만 그것이 대한골프협회가 나아가야 할 명확한 방향이고 금년의 한국오픈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USGA는 US오픈을 개최함으로써 매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폰서는 주인공이 아니고, 대회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파트너일 뿐이다. USGA가 할 수 있으면 KGA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스폰서가 없어도,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최고 권위의 대회만큼은 반드시 개최한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이고, 자부심이다.' 이런 자세는 어려움 극복이라는 스포츠정신과 닿아있다.

지금 출전을 원하는 선수들은 물론, 남자골프를 아끼는 골프팬들이 대한골프협회를 항해 외치고 있다. ‘한국오픈을 살려내라.’

박노승: 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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