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린에서 멋진 퍼트를 성공시키고 나면 모자를 벗어 겸손함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에서 이겼을 때의 겸양이라니! 그래서인지 우즈가 롱 퍼트를 성공한 직후 역동적으로 어퍼컷을 먹이거나 승리를 만끽하는 세레모니가 신선한 충격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 골퍼들 역시 인간이다. 대회마다 그리고 한 샷 한 샷에 억대의 상금이 결판난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손 움직임에서 승부가 갈리는 만큼 긴장감도 높다. 그만큼 가끔씩, 아주 순간적이지만 젠틀함의 옆구리를 터져 나오는 프로골퍼의 울화와 분노가 분출된다. 웃기기도 하고 황당스럽기도 한 골퍼들의 엽기 사고 베스트 일곱 가지를 모아보았다.
호세 마리아 올라자발.
* 열혈 주먹 호세 마리아 올라자발 - 올라자발은 정열의 나라 스페인 출신의 여러 골퍼와는 달리 평소에는 다소곳하고 얌전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한 바다 물결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소용돌이가 있고, 어떤 때는 풍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1999년 US오픈에서 올라자발은 우승 예상 후보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첫날 라운드에서 75타를 치고 만다. 클럽하우스를 나설 때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다. 올라자발은 분노와 좌절감을 숙소 벽에다 표출시켰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오른손 뼈가 부러져서 다음날 시합을 포기해야만 했다. 부목을 대고 골프장에 도착해 몇 번 연습 스윙을 했으나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후회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 플레이에 실망해서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 저속한 손짓의 도티 페퍼 - 2년에 한 번씩 미국과 유럽 여자프로들이 대륙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루는 솔하임컵의 1998년 대회 때였다. 미국팀 고참 도티 페퍼는 열렬하게 유럽팀을 응원하는 갤러리를 향해 욕하는 듯한 저속한 손짓을 했다. 그 행동이 얼마나 모욕적이었는지 평소 냉정했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마저도 페퍼의 얼굴을 그린 샌드백을 준비해 동료 선수들과 함께 발로 걷어찰 정도였다. 유럽팀 코치였던 피아 닐슨은 “페퍼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선수다. 승부욕이 강하지만 나 같으면 그런 행동을 엄두도 못내겠다”고 비꼬았다. 좌우지간 그 대회에서 미국팀은 16대 12로 유럽팀을 눌렀다. 자신의 순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선수는 오랜 시합이나 여럿이 힘을 내야 하는 팀 매치에서는 꼭 패한다.
세르히오 가르시아.
* 신발에 화풀이 한 세르히오 가르시아 - 스페인의 핸섬가이인 가르시아는 1999년 월드매치플레이에서 샷을 하다 미끄러져 넘어지자 자신의 불같은 성질을 갤러리에게 들키고 만다. 넘어진 게 골프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냉큼 벗어서 광고판에 던져버렸다. 갤러리가 친절하게도 그걸 주워가져다 주자 이번에는 발로 차버렸다. 날아간 신발은 하마터면 경기 진행을 도와주는 진행요원이 맞을 뻔 했다. 그때 얼마나 열이 뻗쳤던지 그날 라운드를 지고서 가르시아는 뻔뻔하게 변명했다. “난 가끔 이런 일을 저지를 때가 있다. 매일 그러지는 않는다.”
* 클럽을 통째로 부러뜨린 해니 오토 - 2001년 남아공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80타를 친 해니 오토는 주차장에서 그가 가진 모든 클럽을 부러뜨리고 근처에 있는 호수에 던져 버렸다. 그같은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오토는 한동안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부랴부랴 새 클럽을 장만한 오토는 다음 주에 개최된 남아공오픈 첫날 라운드에서 6개의 버디, 한 개의 이글, 한 개의 보기를 기록하면서 65타를 쳤고 공동 5위로 대회를 마쳤다. 클럽 세트를 고이 간직했음은 물론이다.
시니어투어에서 활동하는 존 댈리.
* 항상 예측 불가능한 존 댈리 - 1991년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로 떠오른 댈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중의 한 명이다. ‘풍운아’ 혹은 ‘필드의 무법자’라는 별명의 그는 4번 결혼했고,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으며,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 2003년 한국에서 열린 코오롱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뒤에 이듬해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 하기로 했다가 이유 없이 출전하지 않았다. 바로 직전 대회인 도이체방크챔피언십에 출전해 3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부러뜨리는 돌출행동을 한 뒤로 대회를 나오지 않았다. 지난 2015년 PGA챔피언십이 열린 휘슬링스트레이츠의 파3인 7번 홀에서 10타를 친 후 6번 아이언을 미시건호에 내던졌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정신줄을 놨을 정도였다. 나중에 “그 홀에서 티샷에 사용한 아이언은 4번이었는데 6번을 잘못 던졌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얼마나 정신줄을 놨으면 자신이 뭘 쳤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생각해보시라.
* 카메라를 싫어하는 콜린 몽고메리- 메이저 우승이 없는 유럽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콜린 몽고메리는 코스에서 화도 자주 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2003년 디오픈에서 사진 기자와 삿대질 한 사건이다. 몽고메리는 한 홀에서 더블 보기를 하자 <데일리 미러>지의 사진 기자에게 “빌어먹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기자는 “열명 정도의 사진 기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는데도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항변했다. 몽고메리는 말같지도 않은 항변을 하면서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집중하려면 꼭 셔터를 눌러 댔다. 그들이 프로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콜린 몽고메리.
* 벼락같은 성깔 머리 토미 볼트- 이름에 ‘벼락’이라는 뜻의 ‘선더(Thunder)’를 가진 토미 볼트가 아무래도 괴팍한 골퍼의 제왕 자리에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는 1958년 US오픈에서 우승을 거둔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풍모는 전설 속에서만 떠돌 뿐이다. 완벽주의자였던 볼트는 퍼팅 스트로크를 실수하면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와 좌절을 이기지 못해 클럽을 내던지곤 했다. 그 때문에 벌금을 물어야 했던 횟수도 부지기수다.
1960년 US오픈에서의 일이다. 그는 18번 티샷에서 볼을 두 번 연속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한 그는 드라이버를 물에 내던져버렸다. 이를 본 한 소년이 호수에 뛰어들어 드라이버를 건져 그대로 도망쳤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볼트는 주변에 몰려든 갤러리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수에 물고기가 있어서… 드라이버로 찔러서 잡으려고…”라고 얼버무렸다.
코미디언 밥 호프가 전하는 페블비치에서 라운드하던 때의 일화다. 볼트는 16번 홀 세컨드샷 지점에서 캐디에게 거리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135야드요.”
“그럼 7번 아이언 줘.”
“3번 우드나 3번 아이언으로 치셔야 하는데요.”
캐디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지금 남아 있는 클럽은 그거 두 개밖엔 없어요.”
그렇게 정신못차렸던 볼트가 마음을 다스리게 된 계기는 어린 아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골프를 가르친 다음 만족한 얼굴로 물었다.
“자, 이제 내가 너에게 뭘 가르쳤는지 말해 봐라.”
볼트 주니어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캐디백에서 9번 아이언을 꺼내들더니 하늘 높이 던졌다. 그 뒤로 볼트는 신경안정제를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고 한다. 볼트가 워낙 자주 클럽을 내던지다 보니 미국PGA에서는 1957년에 장비를 던질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토미 볼트 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이 발효된 다음 날 볼트는 퍼터를 하늘로 내던졌다. ‘자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규칙에 따라 벌금을 납부한 첫 번째 사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정신머리는 없었지만, 위트를 이해할 정도는 됐다.
sport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