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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국민도 못믿는 ‘130만t 깜깜이 방류’...한일관계 또 시험대
기시다 “오염수 방류 변경없어”
‘후쿠시마 수산물’ 일본서도 불안
한국에 수입금지해제 요구할 듯
지난 9일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탈핵 행동의 날’ 집회에서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환경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핵 진흥 정책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며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 12년이 지났다. 일본은 올해 상반기 내 130만t의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겠다는 발표를 이행하기 위해 막바지 단계를 밟고 있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다량의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기 때문에 세대를 걸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성 물질을 희석했을 때 인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지수다. 일본의 ‘안전하다’는 주장에도 인접국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당장은 우리 수산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시작하면 세계무역기구(WTO) 승소로 유지돼온 우리나라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요구해오는 것이 다음 수순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오염수가 태평양 연안을 돌아 제주 앞바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이른 시기에 우리 식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국내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원이 중단되면서 원자로를 식혀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춰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사고 수습을 위해 고장 난 냉각장치를 대신해 뿌린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 빗물은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오염수로 누출됐다.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정화한 뒤 탱크에 저장해왔는데, 하루에 140t씩 쌓인 오염수 저장 탱크가 부족해지자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13일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올해 봄부터 여름 중에 예정된 오염수 방류에는 변경이 없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 원전 방류 시설을 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으로, 이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검사하고 국제원자력위원회(IAEA)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다.

일본은 총 64개 방사성 핵종 중 삼중수소와 탄소-14를 제외한 62개를 다핵종제거설비(ALPS) 처리를 통해 기준 내 수준으로 낮춰 1㎞ 해저터널로 내보내겠다는 계획이다. 시기는 늦어도 6월이 유력하다. 해류의 영향으로 오염수가 제주 해역에 유입되는 시기는 방출 후 4~5년이 걸린다는 분석이 있다.

과학자들은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ALPS로 정화해도 발암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3H)는 제거되지 않는다. 반감기도 12.3년이기 때문에 수조 내에서 더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ALPS로 정화한 오염수가 완전히 정화됐는지도 문제다. 정화 전 오염수에는 세슘134, 세슘137, 스트론튬90, 아이오딘129 등 삼중수소보다 독성이 강한 방사성 핵종이 들어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인류가 130만t이라는 많은 양의 오염수를 처리해본 적이 없다”며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뿐만 아니라 일본이 정화했다고 하는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이 거의 그대로 있다는데 왜 정화됐다고 믿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평양도서국포럼(PIF) 과학자 패널 소속 과학자들은 지난 1월 도쿄전력이 제공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년3개월간 오염수 저장 탱크의 4분의 1, 64개 방사성 핵종 중 9개만 샘플링을 진행했고, 고준위 방사성 슬러지(침전물)에 대한 조사도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도쿄전력은 측정대상 핵종을 64개에서 30개로 축소·재선정했고, 일본 원자력 규제위원회(NRA)는 이러한 계획을 승인했다.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은 12년이 지난 현재 일본 내에서도 여전하다. 지난 8일 NHK 보도에 따르면 수산물 원산지에 ‘후쿠시마산’이 표기되면 가격을 내려도 판매가 어려워 인근 항구로 옮겨 조업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후쿠시마 농수산물에 ‘방사능’, ‘방사선’ 등이 함께 언급된 게시물은 지난해 4000건으로, 방사능 공포가 여전하다. 자국 내 여론도 이러한데, 직접 영향을 미치는 태평양도서국을 비롯해 영향권에 드는 국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여론은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2013년 9월 후쿠시마를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내린 수입금지 조치를 일본 정부가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은 2015년 세계무역기구에 한국을 제소했고 1심은 일본의 승소를 판정했지만 2019년 2심에서 한국이 승소하면서 수입 제한 조치가 유지돼왔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올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위한 투명한 과정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5월 G7 정상회의에 초청될 경우 한국이 이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피고기업의 기금 참여와 사죄가 빠진 강제징용 해법안에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여론이 확산되면 정부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오염수가 과학적·객관적으로 안전하며, 국제법·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처분될 수 있도록 검증하겠다는 정부의 대응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하되 일본에 정확한 데이터 제공과 신뢰 담보를 꾸준히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응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태평양을 환유해 한반도로 오는 만큼 한일 양자 간 이슈로 다루기보다 글로벌 환경 이슈로 IAEA나 국제환경기구(UNEP)를 통해 검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일본에 압박을 가해 한일 간 문제를 푸는 것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제 발로 가서 직접 떠온 물을 검사해 들여다볼 때까지 안전을 믿을 수 없다”며 “우리는 끝까지 일본에 안전 자료를 요구하고 과학적으로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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