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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소비자’ 넘어, ‘투자자’로서의 유권자

유권자들의 투표는 갤럭시나 아이폰을 구매하는 것과 비슷할까, 삼성전자와 애플의 주식을 사는 것과 더 유사할까. 투표는 소비와 투자 중 어떤 행위와 더 가까울까. 유권자는 소비자인가 투자자인가.

경제학자 고든 털록은 1976년 ‘투표를 하는 동기’라는 책에서 “유권자와 소비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사람이다. 스미스 씨는 물건도 사고 투표도 한다. 슈퍼마켓에서나 기표소에서나 그는 같은 인물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정치전문가 사샤 아이센버그의 저서 ‘빅토리랩’에 따르면 이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 개인의 합리적 행동’ 모델을 정치에도 적용한 설명이다.

그러나 콜롬비아 대학 정치학 교수 도널드 그린은 ‘합리적 선택이론의 병리학’이라는 책에서 정치학을 지배하는 합리적 선택이론이 그 어떤 현실 세계 연구를 통해서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일련의 추정을 기초로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치학 교수인 폴 라자스펠드도 투표가 합리적 선택으로서의 소비와 유사하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는 “많은 유권자에 있어 정치적인 선호란 음악이나 문학, 오락 활동, 의복, 윤리, 말, 사회적 행위처럼 문화적 취향과 더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치적 선호와 문화적 취향은 모두 확신보다는 믿음, 결과에 대한 신중한 예측보다는 소원에 대한 기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소비 행위 자체도 ‘합리적 선택 모델’보다는 ‘베블렌효과’ ‘과시효과’ ‘또래 압력’ 등 문화적·심리적 기제에 근거해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본다면 유권자의 투표 역시 확장된 의미의 소비자의 선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다. 투표는 이미 완성된 제품이나, 범위와 방식이 상호계약된 서비스의 구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권자의 한 표는 어느 한 분야나 기능으로 특정되지 않는, 포괄적인 ‘미래의 기대수익’에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갤럭시나 아이폰을 사는 소비자보다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주식을 사는 투자자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양당제, 혹은 전통적 좌우경쟁 국가의 정치 시장은 두 거대기업이 양분한 시장하고 비슷하고, 유권자들은 ‘1인 1주식’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두 기업의 주식 중 어느 것이 내게 더 많은 미래 수익을 가져다줄지를 결정해야 되는 투자자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제1, 2 정당은 시장을 양분하는 기업이고, 대통령 후보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늘, 신뢰할 만한 정보뿐 아니라 많은 유언비어와 음모론이 난무하며, 사실 뿐 아니라 허위·조작 정보가 때로는 가격과 시장을 움직인다는 사정도 정치 시장을 상품·서비스 시장이 아닌 투자 시장과 더 가깝다고 보게 하는 이유다.

여야 유력 후보와 주자를 두고 각종 의혹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소비자보다는 투자자로서 유권자의 결정이 어느 때보다 투표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자의 윤리가 ‘착한 기업’과 ‘착한 상품’ ‘착한 가격’에 있다고 한다면, 투자자의 유일한 윤리는 ‘미래의 기대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현명한 유권자로서의 판단은 ‘가치 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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