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전라좌수영이 보여준 국가안보의 자세

일본 유학 시절,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에도(江戶)시대 문서들을 읽다가 조선 수군에 관한 흥미로운 구절들을 접한 적이 있었다. 1700년대 작성문서들에서 도쿠가와 시대 사무라이 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세력이 조선 수군에게 연전연패했던 이유를 따졌다. 그들은 당시 조선 수군이 중앙정부하에 통일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나 도요토미 세력은 그러지 않아 집중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다시 정독하면서 이 문제를 생각해봤다. 흥미로운 점은 1592년 왜적 침입 때, 조선 수군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전승을 거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상좌수영과 우수영은 궤멸적 타격을 당했다. 육상 방어를 담당해야 할 제승방략 체제도 무력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전라좌수영만이 예외적으로 연전연승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난중일기’ 전반부 기록, 즉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된 1591년부터 임진왜란 발발 직전인 1592년 4월 초까지의 기록에 그 해답이 나타나 있다.

이 기간 이순신 좌수사는 집요할 정도로 좌수영 관내 5개 포구와 5개 마을의 방어 태세 강화를 독려했다. 각 포구 관할 함선들의 태세를 점검하고 성의 수축 태세도 확인하면서 불비한 점에 대해 관련자들을 벌하고, 대비 태세가 양호한 부하 지휘관들에겐 격려를 했다. 또 이순신 좌수사는 이 기간 거북선을 창안해 건조했고 천자, 지자, 현자포 등 함포를 무장으로 탑재했다. 거북선은 갑판과 상부의 지휘관이 노출됐던 기존 판옥선에 비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형태의 함선이었다. 일본 측 기록에 ‘앞이 보이지 않는 배’라는 뜻의 ‘맹선(盲船)’이라고 기록된 파격적인 이 함선이 장차 전장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순신은 그 건조에 과감히 착수했던 것이다. 동시에 이순신 좌수사는 좌의정 유성룡, 관찰사 이광 등과 서책 등을 교류하며 국내외 정세에 관한 최신 정보를 갖고자 했다. 왜란 발생 이후 장홍유나 진린 등 명나라 지원군 사령관들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했던 점도 이순신 리더십의 특징적 장면이다. 결국 임진왜란을 맞아 여타 부대들이 패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전라좌수영만이 빛나는 전승 성과를 거둔 것은 전쟁 이전에 이순신 좌수사가 기울인 노력에 의해 이미 결정됐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

지난 1월 북한이 제8차 노동당 당대회 이후 열병식을 거행했다. 핵전력 강화 방침도 표명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공개했다. 중국은 3번째 항모의 건조계획을 공표했다. 최근엔 법령 개정을 통해 자국 해양경비대가 외국 선박에 대해 무기 사용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부여했다. 이에 미국은 쿼드(Quad) 참가국들과 공동의 해양안보 태세를 강화하면서 제1함대를 아시아 지역에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동아시아 안보 정세, 특히 해양안보 정세가 긴박감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경항공모함 건조를 포함한 국방 중기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안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함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이 그러했듯 거함거포를 갖는 것만으로 해양안보 태세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더 필요한 것은 전라좌수영이 그러했듯 국가안보 담당 부처들이 본연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

오늘밤이라도 결전에 임할 수 있다는 결연한 태세 유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비대칭 전력의 과감한 증강, 국가지도층 간 부단한 정보 판단과 전략 논의, 유사시 결정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동맹 및 우방국들과 긴밀한 연대 강화 등이 불확실한 안보 정세를 극복하는 비결일 것이다. 16세기 전라좌수영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21세기 국가안보 담당자들에게 기대하고 싶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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