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비건 평양협상 직후 유엔식량계획 책임자와 회동 -독자제재는 그대로…유엔 안보리 ‘제재면제’ 부쩍 증가 -2차회담 전 분위기 조성 도움…“하노이서 포괄적 제재완화 논의 가능성”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의제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미국이 ‘북한 제재 목록’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의 ‘제재 면제’가 가능한 항목이다. 당장 풀기 어려운 미국의 독자제재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조치 가능한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부터 손 보겠다는 의지다. 최근들어 인도주의 단체 대상의 유엔 대북제재 면제 건수도 부쩍 늘었다.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에 앞선 사전준비 움직임을 본격화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대북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각) 유엔산하 식량구호기구 책임자인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났다. 미 국무부 내 북핵 협상 최일선 담당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 실무협상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직후였다. WFP 측은 비슬리 사무총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만나 대북지원 확대 등을 논의했는지에 대해 “가능한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슬리 사무총장은 1차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공식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해 5월 8일에도 북한을 공식 방문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북한과 식량안보 관련 협력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식량을 비롯한 북한 경제상황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점차 악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대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북한 경제성장률은 2016년 3.9%를 기록하는 등 2000년 이후 최고치를 찍은 적도 있다. 정상적 식생활을 하는 주민 비율도 86%(2015년 기준)에 달해 식량사정도 개선돼 왔다.
그러나 도널드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최대압박’ 수준의 독자 제재를 가동한 이래 상황은 나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지난 11일 ‘2019 북한의 인도주의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에서 “북한 총인구 43%인 1090만명이 만성적인 식량불안과 영양결핍을 겪고 있다”고 했다.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향후 2∼3년 간 필요한 물자를 비축해놨지만, 그 이후를 확신하기가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2차 북미회담에서 북한은 제재 풀기에 사활을 걸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이유다.
미국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비핵화 전에 제재 완화 없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 온 상황이다. 의회 승인도 필요해 독자 제재를 풀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미국이 최대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제재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유엔안보리 차원의 제재 면제 조치로 보인다. 특정 사안에 따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이다.
실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10월 유니세프의 대북지원 물품 반입을 허가한 후 지금까지 제재 면제 조치 10건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8건은 올해 단행됐다. 지난달 31일엔 3건이 한꺼번에 허가 판정을 받았다. 제재 면제에 걸리는 시간도 기존 2개월여에서 보름 정도로 크게 줄었다.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미 스탠퍼드 대 연설에서 빨라진 제재 면제 조치가 미국 정부 결정에 따른 것이란 점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제재 면제항목이 늘어나는 ‘분위기 조성’은 북한의 더 큰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미협상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14일 “2차 북미정상회담서는 유엔ㆍ미국 독자제재를 아우른 포괄적 제재완화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