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한반도 내 미군의 독자 군사옵션 카드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지난 23일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편대를 한국과 일본 공군의 참여없이 독자적으로 북한 동해 쪽 국제공역까지 전개시킨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반도 정세가 6ㆍ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란 평가가 나올 만큼 일촉즉발의 형국으로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운신의 폭은 넓지 않은 형편이다.
미국은 이날 한밤중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1B 랜서를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기지에서 출격한 미 공군 F15C 전투기 호위 아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북한 쪽 국제공역까지 북상시켰다. 원산 부근까지 비행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영해 밖이긴 하지만 북한이 이에 맞대응해 전투기를 출격시켰다면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북한의 옆구리까지 날려 보낸 것은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 등 추가 도발을 예고한 데 대한 강력한 경고로 풀이된다.
미국의 전략폭격기와 전투기가 NLL을 넘어 북한 동해 공해상까지 비행한 것이 공개된 것 자체가 6ㆍ25전쟁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 같은 무력시위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그간 B1B가 한반도에 전개될 때마다 함께 비행에 나섰던 우리 공군기는 이번에 출격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과 관련해선 한미 간 긴밀한 협의와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 미국의 일방적 사전통보 수준이었다는 관측도 제기되자 청와대는 25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B-1b 공해상 비행은 한미 간에 충분히 사전에 협의됐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작전이 수행됐다”며 “대통께도 뉴욕 계실 때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실시간 다 보고된 사항”이라며 한미공조 균열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 문재인 대통령이 휴일이었던 이날 NSC 전체회의를 소집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구체적인 핵ㆍ미사일 도발이 없는데도 전체회의와 상임위를 막론하고 NSC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북한과 함께 미국의 무력시위와 말폭탄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고조되는데 따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미 사전조율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번에 B1B 랜서를 북한 쪽 깊숙이 들여보낸 것은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며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공언한 것과도 결이 다르다.
우리 정부가 을지프리덤가디언(UFG)으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남북 간 과도한 긴장고조를 막기 위해 미 전략폭격기의 비무장지대(DMZ) 인근 접근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던 것과도 배치된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하겠지만, 북한의 핵ㆍ미사일이 괌 등 자신의 영토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자위권 차원에서 한국의 동의가 없더라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등 군사옵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언급한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을 두고 한국의 피해, 그리고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동해 공해상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평양 상공을 가로질러 서해 공해상에 떨어뜨리는 방안 등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독자 군사옵션이 시나리오 차원에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