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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소녀상과 외교는 다르다
설득과 논의없이 진행된 합의는 1년 만에 무효화될 처지에 놓였다. 굴욕적이고 일방적인 위안부 합의에 분노한 시민단체는 일본영사관과 지근거리에 소녀상을 설치했다. 그만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크다.

하지만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의 신규설치는 다른 문제다. 국제법의 대원칙 중에 하나는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일위안부 합의문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ㆍ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건은 이에 어긋나기에 국제적으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주요국가에서 지지를 받는 이유를 따져보려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살펴봐야 한다. 전후 체제에서 교전국에 전쟁행위에 대한 사과를 한 국가는 없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이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사죄하고 배상한 건 전쟁과 무관한 범죄에 따른 것이었다.

1963년 이뤄진 ‘프랑스 독일의 우호와 협력 조약’도 사죄가 아닌 ‘화해’에 관한 것이었다. 때문에 외교계에서 이 조약은 ‘전쟁범죄’ 거부와 인정 사이에서 절묘하게 합의점을 찾은, 프랑스와 독일을 화해시킨 조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적극 지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그 내각이 “일본은 위안부 합의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 철저한 사과와 보상을 받으려면 제국주의 국가의 폐단과 전후체제의 모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93년 고노담화를 통해 위안부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배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경제적ㆍ외교적 입지가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분리해생각할 문제다.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과 ‘냉혹한 국제정치 속에서 사과를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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