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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통(外統)수]한 듯 안 한 듯 ‘모호한 외교부’, 변명하자면…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했어 안 했어?”, “네 아니오로 답해!” 익숙한 대사입니다. 영화 속 형사가 범인을 취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대사이죠. 범인은 요리조리 말을 늘어놓으며 심문을 피해가려 합니다. 그럼 다시 형사는 책상을 힘껏 내리치며 외칩니다. “그래서, 했어 안 했어!”

외교부가 범인은 아니지만, 최근 처한 상황은 저 범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두고 말입니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는지 안 되는지, AIIB에 가입을 하는지 안 하는지. 네든 아니오든 빨리 답을 요구하는데, 계속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답변만 늘어놓는 듯합니다. 답답하죠. 원성과 비난은 높아집니다. 

AIIB만 봐도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사실상 가입과 다름없는 발언이 터져 나오지만, 외교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란 답변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참 조심스럽습니다. 외교의 특성이 그러합니다. 할 말보다 못할 말이 더 많은 영역이기도 하죠. 하루빨리 명쾌한 답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때론 시기보다 내용이 중요할 때가 잦습니다. 특히 외교적 사안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모두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희생, 혹은 손해가 필요합니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금리 정책도 최저임금도 모두 그렇습니다. 우린 희생을 요구하는 근거로 ‘국익’을 말합니다. 누군가 희생을 해야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죠.

다시 외교로 돌아가겠습니다. 외교는 ‘국익’과 ‘국익’이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국익을 위해 누군가 희생할 수 있는 국내 이슈와 달리, 국제무대에선 희생하려는 나라가 없습니다. 희생을 요구할 명분도 마땅치 않습니다. 국익보다 더 큰 동기 부여란 인류애, 인권, 환경 등이 될 것인데, 기후변화협약, 인권운동, 질병 퇴치 등에도 각국의 경제적ㆍ정치적 국익이 고려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습니다. 국익을 계산할 때에도 단기적인 관점뿐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 오는 장기적 이해관계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유명한 격언 중에 ‘소시지와 외교는 만드는 과정을 알리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소시지는 잘 먹지 않는 부위인 내장이나 머리 부분 고기, 남은 고기찌꺼기 등을 처리하고자 태어난 음식입니다. 그러니 만드는 과정이 오죽했을까요? 결과물은 번듯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비밀스럽고, 은밀하고, 때론 더러운 일까지 감수해야죠. 외교도 그와 같다는 격언입니다.

AIIB는 참여를 결정하기까지 중국의 지분을 제한하는 일과, 이사진 구성에 있어서 한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조율이 필요합니다. 이런 협상이 없다면, 정작 AIIB에 가입하더라도 중국의 들러리에 그칠 위험이 큽니다. 중국의 입맛에, 중국의 국익에 맞게 AIIB가 운영되지 않도록 치밀한 견제도 필수입니다.

중국과 화폐전쟁을 펼치고 있는, 혹은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외교가에선 이런 입장을 고려할 때 가입을 하더라도 ‘최대한 늦게’ 가입하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이란 말도 나옵니다. 최대한 마감일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낸다면 그나마 미국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가입한다, 안 한다는 단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진 수많은 변수와 결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루빨리 결과를 내준다면 좋겠지만, 모호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 또 그런 과정이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필요하다면 소시지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일단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요. 사드도 AIIB도 당장 결론을 내리길 채근하는 대신 시간이 필요하다면 잠시 냉정하게 기다려볼 필요도 있습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기다림이라면 말이죠.

물론 꼭 명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만약 줄을 서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베어먹은 소시지가 맛없다면, 고객의 더 거센 항의를 각오해야겠지요.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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