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원전 해외 수출 시장에서 일본의 ‘싹쓸이’ 행보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라늄 재처리 등 원자력 관련 독자기술을 앞세운 일본이 ‘엔저’를 등에 엎고 원전 해외시장 개척에 깃발을 꽂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 발이 묶여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을 고스란히 일본에 내주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내년 1월 인도와 원자력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그동안 중단됐던 인도와의 협정 체결에 합의할 경우 일본의 원전 수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도의 원전건설규모는 100조원에 달한다.이를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달 말 일본을 방문하는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원자력협정 체결교섭 재개에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앞서 지난달 말 터키의 원전 4기 건설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최근 원전시장에서 단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행보는 재정확대와 함께 고부가가치 산업인 원전 수출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아베 내각의 목표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도는 급팽창하고 있는 해외 원전시장 가운데서도 노다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인도와 원전 협정까지 체결할 경우 해외 원전 시장은 사실상 일본의 싹쓸이가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서 제한을 받고 있어 원전 수출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악의 경우이긴 하지만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차질을 빚는다면 추가 원전 수출은 물론 이미 수주한 UAE원전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와관련 재처리 등 원자력 관련 독자 기술확보와 함께 정부 차원의 해외시장 개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일순 서울대 교수는 “한미 원자력협정과 원전 수출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일본과 달리 재처리나 농축에서 제한을 받는 바람에 관련 기술 후속 지원이나 공급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대통령이 주재하는 원자력산업안정성회의 등 국내 원전 안정과 해외시장 개발을 함께 논의하는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가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외교적, 정책적 지원을 통해 민간기업들의 창의성과 도전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경쟁국인 일본이 엔저에 힘입어 원전 해외시장에서 발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원자력 수출은행 설립을 통한 금융지원, 다른 국가와의 국제협력, 소형모듈원전(SMR) 등 수출품목 다변화 등의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