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제1위원장이 ‘딜레마(dilemma)’에 빠졌다. ‘정전협정 백지화’에 이어 ‘남북 불가침 합의 파기’까지 선언하며 연일 전쟁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이같은 악다구니를 부리면 부릴수록 정권유지를 위한 체제 안정과 식량, 석유 확보란 전략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장이란 ‘은장도’를 들고 있으면, 체제보장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작 혈맹이라 믿었던 중국과, 오랜 우방이었던 러시아마저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제안에 손을 들어주면서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됐다.
특히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국내 내부불안이 커지면 ‘정치력’이 부족한 김정은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커졌다. 집권초 당(黨) 중심의 통치를 표방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군(軍)과 강경파에 기대는 모습에서는 김정은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은의 불안감은 최근 그의 행보에도 드러난다. 지난 7일에는 연평도 인근 군부대를 방문해 “멸적의 불줄기를 날릴수 있게 경상적인 전투동원준비를 더욱 빈틈없이 갖추라”, “적들이 우리의 영토에 단 한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다시는 움쩍하지 못하게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라”고 말했다고 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또 “단 한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진다면 지체없이 섬멸적인 반타격을 가함으로써 조국통일대전의 첫 포성, 신호탄을 쏘아올리라”고도 했다고 한다. 군심(軍心)을 다잡으면서 내부통제의고삐를 죄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김정은에게 선택의 여지는 이제 별로 남아있지 않다. 식량ㆍ에너지 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차피 내부적 도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국지도발 해봐야 그나마 자제하고 있는 국제적인 무력제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전쟁을 선택하면 체제 자체가 끝장이다. 전시가 되면 김정은은 사실상 정권과 같은 실질적인 군 통제권을 군부 실세들에게 내어줘야 한다. 게다가 ‘무력’은 그나마 북한을 지지하고 있는 중국 조차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역린(逆鱗)’이다.
유일한 방법은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그 간의 강경일변도 행보를 생각할 때 ‘꼬리를 내렸다’는 내부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등 따시고 배불러’지면 그만큼 내부불안과 불만도 쉽게 무마될 수 있다. 핵을 포기하고 대화도 하겠다는데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겠다고 나설 나라는 없다. 진정 ‘김정은 체제’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식량과 땔깜’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