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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 김일성·김정일 유령이 떠돈다
불안한 김정은, 3대 세습체제 굳히기에 할아버지·아버지 후광 최대한 활용…장거리 미사일 발사·3차 핵실험 등 ‘유훈통치’로 철저한 이미지 연출
당·정·군 모든 권력 장악했지만…아직 내적 카리스마·권위는 확보 못해

연설 스타일·외모는 할아버지 판박이…통치방식은 아버지 따라하기
체제안정·권력공백 최소화 노려…김일성·김정일 유훈·향수에 의존


‘유령이 북한을 배회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유령이.’

1848년 발표된 ‘공산당 선언’의 그 유명한 첫 구절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를 조금 변용한 이 문장만큼 북한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도 없다. 근대 이후 초유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3대세습을 완성한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임박했다고 예측되는 3차 핵실험도 ‘유훈통치’의 일환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으로=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장거리 로켓 발사, 대규모 군 열병식 등 떠들썩한 정치ㆍ군사 이벤트를 통해 ‘대관식’을 마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통치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다만 껍데기는 김일성, 알맹이는 김정일을 베낀 모양새다.

김정은의 유훈통치 활용은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대규모 군 열병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정은은 열병식에서 김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낮은 톤의 차분한 목소리로 20여분간 연설을 이어갔다. 항일빨치산 부대 군복 차림의 열병종대나 기마부대, 흰색 망토 차림의 기수가 등장한 장면도 김일성 시대를 연상케 했다. 김정일 때와는 달리 주석단의 고위 장성들도 흰색의 예복 차림이었다. 김일성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직후 평양에서 열린 ‘전승열병식’ 때 흰색 원수복을 입고 역시 흰색 군복 차림의 장성들을 대동한 채 등장한 바 있다. 김정은은 2년 전 후계자로 등장했을 때부터 검은색 인민복을 비롯해 걸음걸이와 머리스타일까지 의식적으로 김일성을 따라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반면 연설 내용에 있어서는 김정일의 이념과 방식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나는 성스러운 선군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동지들과 생사운명을 함께하는 전우가 될 것”이라면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과 혁명 앞에 지닌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김정일의 유훈인 선군정치를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왜 유훈통치인가?=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에 기대고 있는 것은 외적으로는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군 최고사령관에 오르면서 당ㆍ정ㆍ군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지만 내적으로는 아직까지 충분한 카리스마와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던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권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도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역시 절대권력자였던 김일성이 사망한 94년 7월 이후 3년상을 치르는 동안 유훈통치를 펼친 바 있다.

김정은은 특히 김정일보다 김일성을 닮은 외모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과 달리 현지지도를 나가 여성들과 팔짱까지 끼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려 하는 것은 김일성이 주민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려던 모습과 판박이다.

김정은은 향후에도 상당 기간 자신만의 독창적인 통치 스타일을 드러내기보다는 김일성ㆍ김정일 유훈과 향수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이번 당 대표자회 등을 통해 김정은 시대 실세 중 실세로 부상한 최룡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 그리고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의 후견과 뒷받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유훈통치를 이어간다면 김정일의 대남 강경 노선이나 개혁ㆍ개방 없는 폐쇄적인 경제 노선도 유지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의 유훈은 어떤 내용?= 김정일 사망 이후 현재까지 북한은 김정일이 생전에 그려놓은 로드맵대로 흘러가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당 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등 정치일정은 물론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계획 역시 김정일의 유훈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경호실에 해당하는 북한 호위사령부 생명공학연구원 출신으로 탈북자인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최근 북한 최고위급 관리를 통해 입수한 김정일의 유훈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 소장이 공개한 김정일의 유훈이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사실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김정일의 유훈은 마치 왕건이 후손에게 남긴 ‘훈요 10조’를 연상시킬 만큼 세부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김정일은 유훈에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확충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김정일이 생전에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누차 소개했던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만약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을 지속적으로 관철해 나간다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이와 함께 유훈에서 김정은을 떠받칠 간부로 김경희와 장성택, 최룡해, 김경옥, 김정각, 리영호, 최영림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나름 애틋한 부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정일은 이 밖에 중국과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에 어려움을 강제해온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주의하라면서 중국에 이용당하는 것을 피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향후 대중 관계나 인사 과정에서 김정일의 이 같은 유훈을 얼마나 반영할지도 김정은 시대 북한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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