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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뷰] 끊임없이 되묻는 진정한 욕망의 의미…전윤정 ‘휘청거리는 오후’ 展

  • 기사입력 2019-11-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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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한원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1976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1977)으로 출간된 박완서 작가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는 중산층의 물질주의적 욕구와 허영심으로 인해 훼손되고 파괴되는 삶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인 가족 구성원의 윤리가 무너지고 소중한 인간적 가치가 모두 물질적인 것에 의해 내몰린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을 조소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재)한원미술관에서 11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전윤정 초대전 ‘휘청거리는 오후’는 박완서 작가의 해당 소설의 제목을 빌려왔다. 전시는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반항심과 억압된 자유를 ‘드로잉’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

전윤정 작가는 일상에서 낙서 같은 끄적거림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수집한다. 전시관 초입에 내건 작품들은 작가의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회 관계 속에 얽혀 있는 복잡한 심리, 미처 표현되지 못한 생각, 타인과의 오해 등의 감정은 이미지와 함께 깨알만한 텍스트가 들어간 드로잉으로 수집된다. 이 텍스트에서 작가의 당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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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한원미술관 제공


작가는 라인 테이프, 펜 등을 활용해 월 드로잉(Wall drawing)부터 작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선(線)이 중심이 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서 발현되는 불편한 감정들은 검정 라인 테이프를 부착하거나 펜으로 추상적인 형상을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불편한 드로잉’이라고 명명된다.

초입에 전시된 작품들이 확장되어 전시회장을 가득 채운데. 작품들은 모두 ‘검정색’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 흰 캔버스 위에 각기 다른 두께의 라인테이프가 불규칙하게 증식하면서 묘한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아포페니아’(Apophenia)(2019)시리즈가 인상적이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심리학 용어로써 무질서한 현상 속에서 어떤 의미나 규칙, 관련성을 찾아내서 믿는 인간의 집요한 욕망을 뜻한다. 작가는 라인 테이프와 펜으로 섬세한 선을 그려넣는다. 이 시리즈의 20여개의 작품은 한 쪽 벽면에 정갈하게 걸려 있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서 사람의 얼굴, 혹은 불안한 심리상태 등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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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한원미술관 제공


‘블랙 헤어 라푼젤’(Black Hair Rapunzel)(2019)은 제한된 공간을 넘어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는 작업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벽에 걸린 작품을 휴대전화, 태블릿PC 화면으로 들여다보면 프레임 속에 갇혀 있던 선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평면 작업에 증강현실(AR)기술을 적용한 관객 참여형 작품인데,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며 확장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전시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안한 감정들이 용솟음친다. 작가는 이 감정들을 절제된 선들로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끄집어내고, 진정한 욕망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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