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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커밸을 찾아서] ① 매너는 점원만? ‘매너소비자’가 뜬다
이젠 손님도 매너를 갖춰야하는 시대가 왔다.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의 갑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워커밸’을 도모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워커밸은 ‘worker and customer balance’의 약자로 직원과 손님 사이의 균형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제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워커밸’의 현주소와 방향을 알아봤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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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방송화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모 카페 계산대에는 “반말로 주문하면 반말로 주문 받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카페 주인은 “1년 전쯤 손님들의 막말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이 고충을 토로해 고안해 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가게만의 문제는 아니다.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의 갑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울산의 한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는 손님이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음식물을 집어던졌다. 해당 손님은 주문 과정에서 직원이 실수를 하자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상태에서 감정이 폭발해 벌인 일이라는 어이없는 진술까지 보탰다.

‘갑질’이 비단 지도층만의 행위가 아니란 걸 보여주는 사례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누구나 갑질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경각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 키워드로 꼽힌 ‘매너소비자’가 바로 이러한 현상의 증거다.

상처는 곪으면 언젠가 터진다. 그리고 대부분은 회복 과정을 거쳐 아문다. 사회적 문제도 이런 과정을 지닌다. 문제가 깊어지면 터지고, 해결 방안이 모색된다. ‘매너소비자’는 ‘갑질’ 문제에 대한 회복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과거 ‘손님은 왕이다’와 같은 멘트로 고객 유치에 나섰던 사장들도 이제 ‘내 직원은 내가 챙긴다’로 운영 방안을 바꾸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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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승민 씨 제공)



서울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오승민 씨(서울.32)는 계산대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남의 집 귀한 아들 딸들 건드리지 말고 불만 사항 있으면 언제든 전화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함께 넣은 게시물을 부착했다. 이 같은 게시물을 올리게 된 배경에 대해 오 씨는 “직원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손님들이 반말이나 욕설 등을 일삼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여직원한테 성희롱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여직원이 울면서 해당 사실이 이야기 하길래 이 같은 문구를 적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손님의 태도가 줄었다는 것이다. 오 씨는 “해당 문구를 달고 난 후 진상 부리는 손님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종종 전화 받는 일은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도 해당 게시물은 화제였다. 여론 대부분이 “사장님 멋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님이 아닌 근로자를 중시하는 업주에게 더 힘을 실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갑질 NO’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권리 찾자

나라에서도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제정돼 그해 10월 18일부터 시행됐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근로자가 고객의 괴롭힘으로 받는 신체적, 정신적 손해에 대해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주 내용으로 한다. 이에 따라 업주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근로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 시간의 연장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고객응대 근로자 등이 폭언 등을 원인으로 고소·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증거물, 증거서류 제출과 같은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법에 대한 인지가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법이 제정된 지 반년도 안 된 상황 탓도 있지만 정부의 홍보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10년 째 인천에서 택시를 운행 중인 김영섭(인천.71) 씨에게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아냐고 물었더니 “처음 듣는다”는 답했다. 카페에서 2년째 아르바이트를 중인 대학생 김정원(서울.23) 씨도 같은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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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자 제공)



■ ‘워커밸’ 갈 길 멀었다..악성 소비자 여전히 많아

지난달 3일 알바몬이 아르바이트생 952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중복응답) 이들 중 90.2%가 ‘아르바이트 중 소비자(고객)의 비매너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외에도 ‘반말하는 소비자’(51.1%), ‘깎아달라며 생떼를 쓰는 소비자’(27.5%), ‘돈이나 카드를 던지는 소비자’(26.9%) 등 ‘갑질’의 종류도 다양했다. ‘갑질’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이뤄지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택시운전사인 김영섭 씨는 꾸준한 손님들의 ‘갑질’로 감정이 상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아직도 손님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욕설이나 막말을 듣는다. 택시기사를 무시하는 이들이 아직까지 상당하다. 오히려 예전의 손님 태도가 더 나았다”고 토로했다.

‘매너소비자’가 자리 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기업 등에서도 이를 재고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은 모래알이 백사장을 이루듯 변화를 이루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점주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먼저다. 먹이사슬은 돌고 돈다. 택배기사를 종처럼 부려먹었다가 손님으로 가게에서 다시 마주해 된통 당했다는 식당주인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워커밸을 찾아서] ① 매너는 점원만? ‘매너소비자’가 뜬다
[워커밸을 찾아서] ② 고객과 점원, 뒤집어지는 갑과 을…‘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워커밸을 찾아서] ③ 따귀에 물세례까지, 드라마가 ‘갑질’을 다루는 법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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