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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계의 오늘] ① ‘K-공연’ 선도하는 대극장 뒤 멍들어가는 소극장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8132억 원으로 추정됐다. 전년(7480억 원) 대비 8.7%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전체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실제 소비자 규모가 확대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동일 기간 공연장과 공연단체 실적은 감소한 것이다. 특히 공연 횟수가 전년 대비 8.5%, 총 관객 수가 5.3%씩 각각 줄어들었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대기업 공연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픈런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실적은 감소한 셈이다. 여전히 ‘그들만의 장르’로 여겨지는 공연 무대 위 밝은 면과 어두운 그늘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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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억 제작비가 든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사진=EMK뮤지컬컴퍼니)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국내 공연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

우선 대형 공연기획사를 중심으로 ‘K-공연’이 경쟁력을 갖추는 모양새다. 일례로 지난 20일 CJ ENM이 “미국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및 공연장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의 정기 컨퍼런스에 정회원으로 공식 참석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 중 처음이다.

‘브로드웨이 리그’에서 정회원이 되려면 최근 3년 기준 상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2편 이상이거나, 제너럴 프로듀서(GP)급으로 참여 혹은 각 작품에 100만 달러 또는 제작비의 15% 이상을 투자한 리미티드 파트너(LP) 기업이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리그의 심사를 통해 정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CJ ENM은 전세계 라이선스 초연을 국내에서 개최한 ‘킹키부츠’에 이어 올해 6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물랑루즈’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덕분에 2018년 정회원 자격을 획득하게 됐다. 이 외에도 자체 제작 공연 ‘어거스트 러쉬’와 공동 프로듀싱으로 영국 웨스트엔드에 올릴 ‘백투더퓨처’ 등을 통해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CJ ENM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13일 국내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랭보’도 개막 43일 만에 중국 상하이 대극원 중국장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랭보’ 공동 제작사 라이브·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애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공동제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서, 2016년 작품 개발 단계부터 레플리카 라이선스 형태로 중국 공연을 기획했다.

국내 뮤지컬 제작의 명가로 꼽히는 EMK뮤지컬컴퍼니에서 175억 원을 들여 만든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는 오는 4월 일본 도쿄의 닛세이 극장에서 라이선스 버전으로 현지 관객들을 만난다. 이에 앞서 약 4달 간의 국내 공연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웃는 남자’다. 일찌감치 해외 수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국내에서도 최단 기간 누적관객 1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우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이 같은 작품들은 한국의 공연이 이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위치에 섰음을 증명한다. 오는 6월 개막 예정인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비롯해 EMK뮤지컬컴퍼니와 수차례 협업한 극작가 아이반 멘첼·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연출가 스티븐 레인 등 해외 제작진 역시 “한국의 배우와 관객, 스태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한 바다.

아울러 ‘K-공연’을 선도하는 대형 기획사들이 국내 공연 시장의 몸집을 불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2017년 국내 공연시설 및 단체의 운영 현황과 실적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공연시장(8132억 원)에서 민간기획사 매출액(3343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1.1%에 달했다. 앞서 2015년 30.3%, 2016년 33.3%를 각각 기록한 데 이어 해마다 상승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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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억 제작비가 든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사진=EMK뮤지컬컴퍼니)



■ 8000억대 수익 ‘K-공연’ 뒤 몸살 앓는 진짜 한국 공연계

문제는 국위선양의 영광이 대형 기획사에만 주어진다는 데 있다. 국내 여러 공연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 시각, 정작 한국 내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과 창작자 및 제작자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 집계 당시 국내 공연 매출액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 민간기획사는 전체 공연시설·단체 중 7.2%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나머지 92.8%의 공공·민간 공연단체는 공언 건수·횟수·총 관객 수에서 전년 대비 낮은 실적을 보였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대극장과 소극장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연 제작의 출발선상부터 다르다는 설명이다. 가장 큰 차이는 제작비에서 온다. 거액의 제작비를 들이는 대극장 작품은 인기 스타를 캐스팅하는 데도 수월하다. ‘웃는 남자’만 봐도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가수 겸 뮤지컬배우 박효신을 비롯해 인기 아이돌 엑소의 수호, 공연계 디바 정선아와 신영숙 등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들이 모였으니 회마다 90% 이상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한 것도 당연하다.

반면 소극장 공연은 스타 마케팅은커녕 출연자와 제작진에게 제때 임금을 지불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대극장 공연에 비해 객석을 채우기 힘들어서다. 이에 한 번 적자가 나면 또 다른 공연을 올려 그 수익으로 돌려 막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나마도 적자가 반복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2017년에는 공연 제작사 아시아브릿지컨텐츠를 이끌었던 고(故) 최진 대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부채만 90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 사고로 아시아브릿지컨텐츠가 제작해 무대에 올랐던 연극 ‘데스트랩’ 등이 공연을 중단하기도 했다.

소극장의 재정난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간 예술인 신문고에 접수된 불공정신고 656건 가운데 78.8%가 임금체불 사건이었다. 미지급 총액은 27억으로, 그 중 500만 원 미만의 금액이 73.2%를 차지했다. 적잖은 연극인이 500만 원도 받지 못한 채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관행적으로 무보수 노동을 요구하는 극단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도 공연 제작사의 임금 미지급을 폭로한 배우가 있었다. 지난해 공연된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의 앙상블로 참여한 신인 배우 A씨다. A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직접 제작사 사무실을 찾아가 이 건에 대해 문의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내보냈다. 여기에 제작사 관계자가 “아직 임금을 받지 못한 다른 배우도 기다리는 중”이라며 A씨를 회유하는 모습이 담겨 라이브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이처럼 소극장 임금 체불에 대한 고질적 병폐가 여전한 가운데, 마땅한 해결책 역시 제시되고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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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재정난으로 공연 중단된 연극 '데스트랩'(사진=아시아브릿지컨텐츠)



보수를 줄 돈도 없으니 공연장 관리 역시 제대로 될 리 없다. 지하실을 개조해 만들거나 좁은 실내에 좌석을 여유 공간 없이 붙여 놓은 소극장에서 관객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다. 일례로 지난해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뮤지컬 ‘천사에 관하여:타락천사편’의 공연 도중 관객이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주위 관객이 손을 들어 긴급상황을 알렸으나 정작 공연관계자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천사에 관하여:타락천사편’ 제작사 달컴퍼니는 “하우스팀이 무전으로 관객 퇴장 동선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이라 “초동 대처가 늦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더 큰 비난을 불렀다. 관객보다 늦은 관계자의 대처 속도는 물론, 응급상황에서 관객이 이동할 만한 동선이 여의치 않은 공연장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연극 ‘벙커 트릴로지’가 공연되는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도 좌석 사이가 좁기로 유명하다. 전쟁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극 특성 상 공연 중 소품이 객석을 향해 던져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에 ‘벙커 트릴로지’ 제작사는 애초에 폐소공포증 환자나 임산부 등 답답한 환경에서 장시간 공연 관람에 지장이 있는 관객의 출입을 삼가달라고 요청한 바다. 하지만 이러한 관객이 아니어도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동이 불편한 좌석 구조에 일부 관객이 불안감을 나타내는 이유다.

대학로 고질적인 병폐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6월25일부터 시행을 예고한 ‘공연법’ 개정안에는 공연장 안전점검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먼저 공연장 안전점검에 대한 내용은 기존에 ‘등록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한 경우’에만 무대시설에 대한 정기 안전검사를 받도록 했던 것을, ‘정기 안전검사를 받은 날부터 3년이 경과한 경우’, ‘자체 안전검사 결과 공연장운영자 또는 무대시설 안전진단 전문기관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받을 수 있도록 고쳤다.

또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련 업계에서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취지로 구축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연장 운영자, 공연기획·제작자, 입장권 판매자 등 공연 관계자는 공연정보를 누락·조작하지 않은 상태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전송해야 한다. 어길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게 됐다. 이와 관련해 일부 영세기업에서는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흥행을 이루기 어려운 소극장의 경우 수익 등이 전부 공개될 경우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공연법 시행령, 시행규칙 마련 등 개정 후속조치를 조속히 추진하고 시행에 맞춰 소규모 공연장 등의 전산예매시스템 구축?운영 지원 등 소규모 공연장 맞춤형 정책도 수립하겠다는 설명이다.


[공연계의 오늘] ① ‘K-공연’ 선도하는 대극장 뒤 멍들어가는 소극장
[공연계의 오늘] ② 문화비 소득공제의 구멍, ‘공연 대중화’ 기약없는 희망
[공연계의 오늘] ③ 뮤지컬 제작자 안영수 대표, 유튜브로 꿈꾸는 공연의 미래 (인터뷰)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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