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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 무는 분노사회] ①“홧김에 저질렀다”...‘욱’하는 대한민국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분노사회’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범죄는 점점 더 극악무도해지고 사람들은 사소한 이유에도 화를 낸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분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이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디어는 오히려 분노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분노 속에서, 또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분노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커지는 반면, ‘화’를 유발하는 상황들이 발생해 상충하는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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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씨(사진=연합뉴스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최근 일명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로 들끓었다. 피의자 김성수는 PC방 아르바이트생에게 자신의 자리를 치워달라며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상대방에게 잔인한 칼부림을 했다. 김성수와 고등학교 3학년 같은 시절이었다는 한 동창은 그가 평소 조용한 스타일이었지만 화가 나면 이성을 잃는 편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분노범죄’로 불린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4대 범죄 48만1478건 중 34%(16만2456건)가 우발적인 범행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일어난 범죄를 세분화 해도 914건의 살인·살인미수 사건 중 39.1%(357명)가 우발적으로 벌어졌다. 하루에 한 번 꼴로 분노 등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 발생하는 꼴이다.

이정도면 우리 주변에 늘 분노범죄가 도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확히는 ‘분노범죄의 가능성’을 떠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 벌어지는 상황들이 일상 속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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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NN 화면 캡처)



■ 남의 일 아닌 ‘분노범죄’, 일상에 도사린 ‘화’

일상 속 삐뚤어진 분노 표출의 대표적인 예는 ‘갑질’이다.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대개 본인의 스트레스와 화를 풀기 위해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를 공격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고, 또 언어 및 신체 폭력 등 위협을 가하며 군림하려는 방식이다.

최근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찾은 손님이 음식이 담긴 봉지를 아르바이트생 얼굴에 집어던진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음식 세트를 주문했는데 단품이 나와 순간 화가 났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감정이 폭발했다”고 진술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가 리포트를 집어 던지고 욕설을 하는 행위,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고함을 치며 싸움을 벌이는 행위, 온라인상에서 악플을 다는 행위까지 모두 사람들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 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분출하는 행동에 해당한다.

실제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2015년 4월 우리나라 성인 만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가 분노·우울·불안 등으로 불행하다고 답했다. 그중 42%는 스스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증상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11%는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됐다.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병원을 찾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5986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4934명) 이후 3년 사이 1052명(21.3%)이 증가한 수치다. 성별로는 남성이 82.5%(493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성 중에서는 20대 환자가 34.1%(1685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30대 21.9%(1084명), 10대 18.4%(908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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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제공)



■ 분노, 범죄로 직결되지 않아도 위험한 까닭

분노의 기저에는 대개 불안, 열등감, 피해의식, 우울증, 낮은 자존감 등이 깔려 있다. 개인의 성격과 가정환경, 사회생활 등 복합적인 배경으로 발생하는 요인들이다. 주로 경쟁으로부터의 좌절감, 피해의식 등부터 소통부족, 과잉보호, 상대적박탈감 등 외부 요인이 촉발한다.

다만 이렇듯 사회에 차곡차곡 쌓인 분노들이 범죄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4대 범죄 중 우발적 범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38%에서 2015년 35%, 2016년 33% 등으로 소폭 감소세를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노로 인한 범죄사건의 노출 정도와 강도에 따라 다른 일종의 ‘착시효과’가 발생해서다.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쉽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점, 온라인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점, 여기에 미디어의 파급력이 더해지는 점 등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더 많은 사건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게다가 범행 수법이 날로 잔혹해지고 엽기적으로 변하니, 같은 건수의 사건을 접하더라도 피부로 와 닿는 사건의 충격은 이전보다 훨씬 크다.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폭력성과 폭력범죄는 다르다. 점점 분노사회가 되어 간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범죄가 몇 배씩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범죄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모두를 분노케 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상황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노출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원장은 “이렇게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을 자주 접할수록 사람들의 분노도 점점 커진다. 사회의 분노가 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분노하는 심리 자체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꼬리 무는 분노사회] ①“홧김에 저질렀다”...‘욱’하는 대한민국
[꼬리 무는 분노사회] ②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굴레의 연속
[꼬리 무는 분노사회] ③ '백종원 폭발' 2700건…시청자 분노 악용하는 미디어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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