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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질 사회] ③ “당당히 맞서라”…사이다 캐릭터는 대리만족일 뿐?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갑질’이 국적기를 타고 세계로 날았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관련해 외신들이 이를 ‘갑질(Gapjil)’이란 단어 그대로 소개한 것. 1980년대 ‘재벌(Chaebol)’이란 말이 영어사전에 등재된 데 이어 ‘갑질’까지 오르게 생겼다. ‘갑질’은 권력의 상하관계로 발생하는 부당 행위를 일컫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팀이 공개한 ‘뉴스빅데이터로 보는 신조어’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5년간 보도된 ‘갑질’ 관련 기사는 2만5075건에 달하는데, 이때 갑질의 주체는 대기업과 재벌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반 직장은 물론, 가족과 친구 등 일상 관계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갑질’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한민국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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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갑질에 맞서는 손예진(사진=JTBC)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갑질’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중문화가 이를 그리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 대중문화 속 ‘갑질’의 변화

2015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극본 정성주)를 통해 상류층의 ‘갑질’을 꼬집었던 안판석 PD가 올해 연출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가 대표적인 예다.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이 직장 상사와 엄마에게 ‘갑질’ 당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 연하남과의 로맨스를 적절히 버무려 20·30대 여성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은 윤진아가 30대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갑질’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갑질’이 극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가 아니라 주제가 된 것이다.

실제 ‘갑질’ 사건을 그대로 TV에 옮긴 사례도 있다. SBS 주말드라마 ‘착한마녀전’(연출 오세강, 극본 윤영미)이다. 이 드라마는 1회에서 항공사 전무 오태리(윤세아)가 승무원의 머리에 라면을 붓는 장면을 내보냈다. 2014년 조현민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소품만 바꿔 패러디한 셈. 이에 앞서 지난해 방영된 JTBC ‘품위있는 그녀’(연출 김윤철, 극본 백미경)는 실제 대기업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상류사회 ‘갑질’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내며 인기를 끌었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우스운 상황으로 뒤집어 보여주며 오히려 시청자의 통쾌함을 배가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송곳’(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균 김수진, 2015), tvN ‘미생’(연출 김원석, 극본 정윤정, 2014) 등이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갑질’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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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땅콩 회항'을 패러디한 '착한마녀전'(사진=SBS 방송화면)


■ ‘사이다 캐릭터’ 드라마를 넘어 현실까지

드라마 속 ‘갑질’에 대처하는 캐릭터 변화도 눈에 띈다. ‘갑질’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것에 그쳤던 ‘캔디’들이 근래에는 ‘갑질’에 똑 부러지게 맞서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캐릭터로 성장하고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는 윤진아를 비롯해 금보라(주민경), 정영인(서정연) 등이 그 역할을 한다. 윤진아는 출장지에서 접대 회식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그딴 거 안 하려고요”라고 선을 긋는다. 금보라는 상사의 실수를 거침없이 지적하고, 상사의 화풀이가 염려된다는 동료에게 “그러기만 해 봐. 나도 가만있진 않을 테니까”라고 이를 악문다. 회식 자리에서 여자 직원에게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남자 상사들을 본 정영인은 막내 남자 사원을 불러 “고기 구워. 이런 상명하복을 말씀하시는 거죠?”라며 한 방을 선사했다.

tvN ‘라이브’(연출 김규태, 극본 노희경) 송혜리(이주영)도 상사 앞에서 기죽는 법이 없는 인물이다. 상사의 “계집애”라는 부름에는 “여성 비하 발언!”이라고 소리치고, 나이 많은 사수를 배정받자 지구대장을 찾아가 바꿔 달라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적극 어필한다.

‘역갑질’로 시청자들의 속을 뚫어준 캐릭터도 있다. 지난달 종영한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연출 이창민, 극본 김기호 송지은)의 민수아(이주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 한 손님이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고 반말로 욕하자, 일을 마친 뒤 손님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민수아는 “손님이 왕”이라고 외치며 당한 것 그대로 갚아주며 유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사이다 캐릭터’의 등장은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현실을 극복할 의지를 주기도 한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드라마의 유행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사회 부조리에 대해 거침없이 대항하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젊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캐릭터 역시 뚜렷한 개성과 진일보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드라마 속 ‘갑’을 대변하는 기성세대 시청자들은 현실적인 스토리를 통해 스스로 돌아보고, 젊은 층의 가치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갑질 사회①] “재벌가만이 아니다”… ‘갑질 바이러스’ 퍼진 한국
[갑질 사회②] “병이 병을 낳는다”…‘갑과 을’ 사이 더 악독해진 甲
[갑질 사회③] “당당히 맞서라”…사이다 캐릭터는 대리만족일 뿐?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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