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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코르셋] ③자기만족과 억압 사이, 그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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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 '문제는 마네킹이야' 퍼포먼스(사진=연합뉴스 제공)



동화 속 공주와 미녀를 떠올려보자. 풍성하고 결이 좋은 긴 머리,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가슴을 강조한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이 먼저 상상된다. 하지만 지난해 실사판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벨 역으로 출연한 엠마 왓슨은 디즈니 공주 코르셋을 거부했다. 진취적인 여성으로 나오는 벨에게 여성의 몸을 제한하는 코르셋은 어울리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엠마 왓슨뿐만 아니다. 여성운동이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여성을 억압했던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20대 여성 김나연 씨에겐 날이 더워지면 반드시 행하는 필수 과정이 있었다. 바로 제모다. 성인이 된 후부터 나연 씨는 레이저 시술에 왁싱, 면도기로 밀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겨드랑이 털을 제거해왔다. 하지만 앞으론 겨드랑이 털을 방치할 생각이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남성들에겐 아무렇지 않게 취급받는 털이 자신을 비롯한 여성에겐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제모에만 쓴 돈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털을 제거해야한다는 현실에 수긍할 수 없게 됐다. 요즘 꾸밈 노동이 얼마나 자신을 괴롭혀 왔는지 느끼고 있다.

#20대 학생 신영은 씨에게 화장은 취미 중 하나다. 10대 때부터 조금씩 해왔던 화장 기술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었고 화장품 수도 많아졌다. 화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을 보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최근 화장이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이 코르셋이라는 의견을 접하게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화장이 코르셋이라는 점은 인식하지만 자신에겐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코르셋을 벗지 않는 여성에게 ‘흉자’(남성주의적 사고방식에 동조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라고 하는 이들도 봤다. 영은 씨는 자신이 흉자인가 고민해봤다.

단순히 자기만족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외모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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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노조의 복장 시위 (사진=MBC 뉴스 캡처)


최근까지 샤넬 화장품 매장에선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라고 쓰여진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백화점 명품 화장품 매장에서 블랙의 깔끔한 유니폼을 차려입고 손님을 맞았던 직원들은 사복을 입었다. 샤넬 노동조합은 지난 3월25일을 시작으로 파업에 나섰고 지난 20일, 약 한달 간의 파업 행위를 마무리했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본급을 받고 있다고 밝힌 노조 측은 이와 함께 꾸밈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고강도 단정한 용모와 복장을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원들은 이른 출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한 의상에 민낯으로 나선 샤넬 직원의 복장 시위는 명품 브랜드이기에 강요받았던 코르셋이 더 크게 와 닿게 한다.

지난해 알바노조가 여성 알바노동자 49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일하면서 외모품평을 받은 직원은 98%를 차지했다. 용모 단정을 이유로 벌점이나 지적을 받은 경우도 60%나 됐다.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용모단정의 이유로 꾸밈 노동을 강요한 일은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7개의 여성단체들은 ‘문제는 마네킹이야’라는 타이틀로 여성의 몸 다양성과 외모억압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성의 평균 사이즈와 거리가 먼 마네킹 몸매를 강요하는 사회 시선을 지적하며 “이런 분위기가 일상과 노동환경에서의 몸매 압박, 외모 품평, 자기 몸에 대한 불만족과 혐오를 만든다”며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외모차별이 합리화되고 있다. 외모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말과 실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회 움직임 속에서 탈코르셋이 주는 의미에 대해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황소현 활동가는 “탈코르셋이라고 규정을 내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나 여성들이 외모중심사회에서 올바른 여성상으로 강요 받아왔던 것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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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왓슨 페미니즘 논란(사진=베니티페어 SNS)


■ 자기만족과 탈코르셋 사이


페미니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탈코르셋 운동이 빈번해지면서 일어나는 딜레마도 있다. 화장, 렌즈, 긴 머리 등 코르셋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선택하는 이와 탈코르셋에 동참한 이들의 갈등이다. 온라인 상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번지면서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등장하고 있다. 모든 여성이 코르셋을 벗어야 하나에 대한 의문도 든다.

페미니스트 선언해 주목을 받았던 연습생 한서희의 SNS에 최근 논쟁이 발생했다. 한서희가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페미니즘 상품에 긴 머리 여성이 등장했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끼리 긴 머리는 코르셋의 일종이라며 엇갈린 의견을 주고받았다.

과거 엠마 왓슨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평소 페미니스트 행보를 보여줬던 엠마 왓슨은 패션매거진 ‘베니티페어’에서 볼레로만 입은 채 가슴 노출을 한 사진을 찍은 적 있다. 이를 두고 영국 라디오 진행자 줄리아 하틀리 브루어는 “여성이 성적으로 비친다는 점을 불평해놓고서 자신을 스스로 성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엠마 왓슨은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여성을 때리는 스틱이 아니다”고 대응했다.

이에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황소현 활동가는 “자신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걸 추구하는 것, 각자 방식이 다른 것은 존중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이제까지 강요받아왔던 여성상에 속박을 느끼게 되면서 문제제기는 되어야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특정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 자체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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