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소확행]① 2030세대, 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을까
이미지중앙

소확행 열풍 리틀포레스트(사진=영화사 수박)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 만 깨끗한 속옷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이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바로 소확행(小確行)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랑겔한스섬의 오후’ 등 자신의 수필집에서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약 20여년이 지난 2018년 대한민국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왜 2030 밀레니엄 세대가 소확행을 찾아 헤매는지, 그 열풍의 이유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28살 직장인 이영은(가명) 씨는 종종 금요일에 월차를 내고 일본 후쿠오카로 떠난다. 월차를 쓰지 못할 땐 금요일 밤에 떠나는 밤도깨비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후쿠오카에서 특별한 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료칸에서 온천을 하고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잔을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비행기편도 많고 약 한 시간 남짓 이동하면 해외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한번 여행을 갈 때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갈 뿐이지만 후쿠오카병은 한동안 치료되긴 어려울 것 같다.

#35세 직장인 박시연(가명) 씨는 종종 호캉스를 즐긴다.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라는 뜻으로 직장 퇴근 후 호텔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영화를 보고 룸서비스로 끼니를 해결한다. 원룸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욕조에 입욕제를 담구고 피로를 풀기도 한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선 호텔 조식으로 배를 채우고 간만에 수영도 즐겼다. 휴가를 맘껏 쓰기도 눈치가 보일 때 호캉스만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다.

이미지중앙

후쿠오카병을 언급한 강유미(사진=김생민의 영수증 캡처)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찾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알았을까. 자신이 먼저 사용한 단어가 20여년이 지나 구경을 넘어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야말로 소확행 열풍이다. 인스타그램 태그에 #소확행을 검색해보면 게시글만 약 3만 6000개가 나온다. 기업들도 직원들에게 소확행, 워라밸을 권장한다고 홍보한다.

중년층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소확행은 매년 트렌드를 분석하는 김난도 교수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쓴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책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올해의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50명을 대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복 키워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는 소확행(51.8%)이 꼽혔다. 응답자의 70% 이상은 소확행에 공감을 표했고 ‘가끔 오는 큰 행복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의 만족감이 크다’(58.9%)를 가장 많은 이유로 꼽았다.

단어의 뜻만으로 보면 소확행은 지난해 키워드였던 ‘욜로’(YOLO)와 가성비를 떠오르게 한다.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한번 뿐인 인생, 현재의 행복을 즐기자는 뜻인 욜로는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 ‘시발비용’(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게 된 비용)라는 용어들로도 연결됐다. 그만큼 욜로와 소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미지중앙

소확행을 다룬 영화 소공녀



소확행은 단어의 의미만 생각하면 욜로와 같은 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상품, 소비를 넘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을 중시한다. 소확행과 함께 떠오르는 용어인 ‘워라밸’(일과 삶이 균형),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만 보더라도 소확행은 소비만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렇듯 젊은층이 소확행에 공감하는 이유로는 불확실한 미래를 들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내 집을 마련하며 산다? 현실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2017년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부채 규모는 평균 2385만원으로 빚을 보유한 비율은 48.1%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부채를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불확실한 현실이다.

지난해 ‘트렌드 코리아 2018’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김난도 교수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전제가 무너진 점이 매우 컸다. 이런 변화가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현실에서 즉각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소비로 관심을 유도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트렌드 열풍의 배경을 밝혔다.

정신과 전문의인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젊은 층이 소확행에 빠지게 되는 것에 대해 “과거 경제 성장률이 높았을 땐 본인이 노력하고 운이 좋으면 성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성장률은 정체가 되면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반면 과거엔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책임져주는 부분이 없었다면 지금은 사회 안전막이 조금은 올라가 있기 때문에 아주 크게 성공하는 것 어렵지만 조금은 살만한 수준이 됐다. 과거에도 자기 나름대로의 작은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사회의 주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사회가 분화돼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최명기 소장는 이런 소확행, 가심비 행위가 젊은 층의 정신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느 정도 정부의 노후 사회 정책만 강화가 된다면 소확행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죽어라 일해서 돈을 벌어놓지 않으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면 소확행을 못한다. 그러면 더 높이 올라가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만큼 정신건강에 좋은 것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culture@heraldcorp.com

[소확행]② 영화부터 공연까지…대중문화에 침투한 소확행
[소확행]③ ‘탕진잼’의 유혹, 소확행 체험기
[소확행]④ 결국은 소비?…소확행 향한 오해와 방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