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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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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이버킷리스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과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알베르 카뮈는 이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삶이 덧없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삶은 상대적이다. 만일 누군가가 깊은 절망에 빠져도 자살을 택하지 않고 바퀴벌레처럼 질기디 질긴 생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전적으로 자신이 하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는 카뮈의 철학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유도한다. 작품에는 살고 싶어 하는 시한부 해기와 죽고 싶어 하는 양아치 로커 강구가 등장한다. 성품조차 상극인 둘은 우연히 친구가 되고 어정쩡한 관계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만남을 지속한다. 양 극단을 달리는 둘의 관계는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다. 그러나 냉정과 열정을 오갈뿐 무대 위의 둘은 예상외로 찰떡궁합이다. 날 것 그대로인 서사 속 둘의 우정이 싱그럽게 피어나는 지점에서 따뜻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시한부 해기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에 ‘플라시보 효과’를 외치며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한다.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통해 병의 증세를 호전시키려는 것이다. 여기에 라이브밴드를 통해 터져 나오는 알록달록하고 젊은 기운이 병세가 금방이라도 나을 듯 긍정적인 기대감을 북돋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해기의 행위는 역설을 안고 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건 곧 도래할 죽음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병마에 저항하고자 플라시보 효과를 외치며 몸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품는 한편 죽음에 대비해 버킷리스트를 실행해나간다는 건 모순에 가깝다. 어쩌면 해기 스스로도 병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알고 버킷리스트를 통해 미리 떠날 채비를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기는 결국 죽음에 지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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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글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해기는 플라시보 효과와 버킷리스트라는 모순된 행위를 통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인간실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이다. 오늘 하루를 오감을 통해 느끼고 자각한다. 병마에 저항도 해보고 바라는 일을 성취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행위함으로써 살아있는 순간을 마주하고 현재를 만끽한다. 해기가 택한 실존이다.

결국 헤밍웨이의 말처럼 인간은 파멸될 순 있어도 결코 패배하진 않는다. 어차피 육신에 대해 패배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은 시한부든 아니든 전부 흙으로 돌아간다. 단지 해기의 생의 촛불이 남들보다 조금 빨리 타들어갈 뿐이지, 살아있는 순간 그는 무엇에도 패배한 이력이 없다.

아직 경이롭긴 이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죽음을 바라는 자의 촛대도 더욱 단단하게 굳어간다. 해기가 바라는 삶의 의지가 강구에게로 전이돼 새로운 형태의 ‘플라시보’를 만들어낸다. 기적이다. 죽기만을 바라던 강구는 어느덧 삶을 열망한다. 이렇게 강구의 삶은 해기의 또 다른 생이 된다.

강구가 자살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자살은 문제의 근본적이거나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는 카뮈의 질문에도 답하는 길이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두 친구의 우정은 숭고함을 넘어 생을 나누는 차원으로 환원된다. 이에 해기는 한사코 죽고 싶어 하던 강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산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야.”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는 오는 3월 18일까지 서울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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