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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의 시대]③ '표현의 자유' 누린 창작자들, 혐오 표현에 어떤 입장?
‘싫어하고 미워함’ 혐오의 국어사전 속 풀이다. 해석만 살펴봐도 섬뜩한 이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었다. 예부터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그만큼 예의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기사 속 댓글만 살펴봐도 우리의 혐오 감정이 얼마나 극한으로 치닫는지 실감할 수 있다. 누구나 사용하기에 무심코 뱉은 혐오 표현들, 우리는 좀 더 예민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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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지난해 수많은 래퍼들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혐오성 가사 때문이었다. 한 웹툰 작가도 혐오성 짙은 작품색으로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혐오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작품 속 혐오표현을 간과하지 않는다. 지난해 논란이 된 래퍼들의 가사도 훨씬 이전에 발표된 곡들이 대다수였다. 과거 힙합음악에서 빈번히 사용되던 ‘마더XX’ 등도 이젠 논란이 될 만큼 혐오표현에 민감해졌다.

그럼에도 창작자에겐 든든한 방패막이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다. 그들의 모든 창작물은 개인의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탄생한다. 우리가 봐왔던 수많은 대작들도 자유로운 표현과 발상아래 탄생됐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중심부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의 귀와 눈은 예민해졌고, 온라인 등 미디어의 확대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높아졌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이러한 논란과 변화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혐오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창작자들의 입장을 직접 들어봤다.

이슬아 작가 “최소한 피해야 하는 이야기란 뭔지 고민하며 창작해”

“글과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조심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내가 쓰고 그린 것들 중 경솔한 부분이 있는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폭력적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퇴고하곤 하죠. 하지만 공부도 지혜도 모자라서 내 실수들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럼 나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해온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죠. 이를테면 홍성수 교수님의 '말이 칼이 될 때' 같은 책이요. 혐오표현이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친절하고 명료하게 쓰여 있고, 나라별 혐오 표현 규제 방식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한국 사회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해요. 위와 같은 혐오표현에 관한 연구들을 읽으며 창작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하는 태도를 다시 학습하곤 하죠. 좋은 창작을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해요. 평생 노력해도 모자를 거라고 생각하죠. 어떤 이야기를 해야 재미있을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지, 최소한 피해야 하는 이야기란 뭔지 고민하며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만화뿐 아니라 글까지 쓰는 멀티 창작자다. 레진코믹스, 케이코믹스에서 웹툰을 그렸고, 여러 신문사와 플랫폼에 자신의 글과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 래퍼 서출구 “혐오표현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책임은 아티스트 몫”

“가사를 쓸 때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해야겠지만 성숙한 문화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과 혐오를 비교했을 때 둘의 차이가 크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둘 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죠. 그런 감정들을 다루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는 게 예술이에요. 그런데 그 자유를 억압하는 건 성숙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의 표현이나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들이 무분별한 혐오성 표현을 쓰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대중들이 멀어져 가는 게 흐름이죠. 분명 수입이든 여러 가지 타격을 입을 거예요. 누군가에겐 비뚤어진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반인에겐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해소할 수 없는 감정이나 갈증이나 분노가 있는 사람에게 그게 카타르시스가 되고 해소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죠. 행복과 긍정을 외친다고 사회가 나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옛날부터 모든 거의 문학 작품에 비뚤어진 모습과 혐오가 담겨있어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만 해도 그때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담아냈죠. 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 감정에 동요하진 않아요. 그러나 혐오표현에 대한 책임은 창작자가 져야 해요. 창작자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것도 대중이에요”

*서출구는 엠넷 ‘쇼미더머니’, ‘고등래퍼’에 출연하며 많은 인기를 모은 래퍼다. 최근 첫 미니앨범 ‘COSTUMES’ 발매한 후 힙합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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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 김보통 만화가 “혐오표현은 사용하되 정당성은 부여하지 않는다”

“‘DP’라는 만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군 내부 폭력에 대해 낱낱이 보여준 작품이었죠. 그러다 보니 혐오표현이 많이 나왔어요. 그때 표현을 너무 세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죠. 하지만 혐오성 발언을 하는 인물을 악인으로 그렸어요. 나쁜 인물에 대한 본보기로 그린 거죠. 대신 그 인물을 통해 혐오표현을 희화화 한다거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혐오표현은 그 인물의 됨됨이가 안 좋다는 장치로 쓴 거죠. 나 역시 혐오표현으로 인해서 이룰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어요. 그저 작품에서 사용하는 이유는 인물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개인적으론 혐오표현을 당연히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김보통 만화가는 지난 2013년 올레 웹툰 ‘아만자’로 데뷔했다. ‘아만자’는 책으로도 묶여 총 5시즌이 출간됐다. 이 외에도 ‘DP 1’ ‘DP 2’ 등의 웹툰집을 출간했고, 최근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등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래퍼 애쉬비 “음악 자체가 자유로운 것..분명 조심은 해야”

“사실 힙합이란 것 자체가 이슈가 되는 문화잖아요. 그래서 대중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비하할 목적이나 욕을 하고 싶어서 힙합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답답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 거거든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음악 자체가 표현의 자유에요. 어떤 말이 논란이 됐든 스스로가 감수해내는 게 음악가인 것 같아요. 내 경우도 앨범에도 욕이 있어요. 누군가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힙합이라는 문화 자체가 그래요. 분명 조심은 해야 하죠. 나쁜 영향을 받는다면 경각심을 갖되 혐오표현 사용에 따르는 책임은 분명 본인이 감수해야 해요”

*애쉬비는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 두 시즌 출연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래퍼다. 지난 2014년 싱글 앨범 ‘Who Here’ 데뷔한 후 현재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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