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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레이더] ‘관조적인’ 밴드 파라솔, 있는 그대로 들려줄 뿐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막상 다가서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가수였는데 그들에게 다가설수록 오히려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B레이더]는 놓치기 아까운 이들과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갑니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금주의 가수는 밴드 파라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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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m 앞, 아무렇지 않게 ‘권태’를 노래하는 밴드
파라솔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지윤해(보컬, 베이스), 트램폴린과 줄리아하트의 김나은(기타, 코러스), 얄개들과 푸르내로 활동했던 정원진(드럼) 세 사람이 모여 결성한 밴드다. 2014년 7월 팀과 동명의 미니앨범 ‘파라솔’로 데뷔했다. 이후 2015년 정규 1집 앨범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을 발매하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리카겔과 콜라보레이션곡 ‘스페이스 엔젤(Space Angel)’을 내기도 했다. 올 여름에는 정규 2집 앨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발매했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팀들의 멤버가 모이니 또 다른 음악이 펼쳐진다. 간결하면서도 명랑한 사운드의 결은 유지하지만 시선은 달라졌다. 파라솔이 주로 들려주는 음악은 ‘권태롭다’ ‘무관심하다’ 등의 감상평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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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m 앞, 대표곡 ‘베개와 천장’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한 뒤 약 10개월 만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이다. ‘베개와 천장’은 멤버 지윤해의 경험을 담은 곡이다. 제목 그대로 건강상의 이유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나날을 담았다.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나, 눈앞에 보이는 천장. 베개와 천장 사이에는 여러 가지 생각과 불안, 무력감 등이 떠돈다. 어지러운 패턴이 정갈하게 담겨있는 앨범 커버가 이를 잘 드러낸다.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왔지만 결국 주변을 둘러보면 나 혼자다. 상황이 잘못된 것인가, 내가 잘못된 것인가. 분명한 것은 결국 “나는 어느 곳도 갈 수 없는 저 작은 방의 화분”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 앨범 소개에서는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듣기를” 추천한다. 겉으로 떠돌던 가사와 멜로디가 우리의 빈틈 사이로 스며 “참기 힘든 생각들”로 둘러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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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m 앞, 그 어떠한 표현도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
간혹 음악을 두고 ‘솔직한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작위적일 때가 있다. ‘솔직함’이라는 특성과 무언가를 규정을 짓는 행위가 충돌해서일까. 파라솔의 음악이 그렇다. 있는 그대로를 노래할 뿐이기에 ‘솔직하다’는 말을 사용했을 때 미묘하게 뒤틀린다. ‘그냥’ ‘그저’ 묵묵히 자신들의 시선을 표현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꾸밈과 수식어는 불필요한 짐이다.

노래 주제도 다양하다. 사랑과 청춘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마피아 게임부터 이혼, 장기밀매, 부동산 과열 등 파라솔의 세상에는 다양한 일상이 존재한다. 힘이 쭉 빠진 듯한 나태한 연주와 보컬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데 결코 건성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치열하게 음악 하는 파라솔이다. 음 하나하나 정성껏 연주하고 노래한다. 파라솔 노래는 대부분 후반부에 가사 없이 연주만 흘러나오는데 연주로 상황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밴드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멜로디와 가사의 괴리에서 묻어나오는 특유의 명랑함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파라솔만의 개성이다. 멜로디는 아름답고 예쁜데 가사는 숨긴 것 없는 민낯이다. 그래서 파라솔의 노래를 들을 때는 ‘이 하나하나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을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파라솔은 인디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명확한 콘셉트가 없기 때문에 바뀔 것도 없다”고 말했다. 파라솔은 있는 그대로를 노래하는 팀이다. 다만 그 하나하나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고찰과 시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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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m 앞, 웃프고 섬뜩한 가사...결국에는 우리 이야기
파라솔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우선 웃기다. 4차원 세계의 엉뚱함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쁘게 포장해 숨기려고 한 속내를 투명하게 내보이면서 나오는 웃음이다. 예를 들어 심심한 참에 걸려온 친구 전화에 ‘네가 졸라대던 드라이브를 지금 당장 하자고 할 줄이야. 난 귀찮다고 에둘러 말했는데 오라네? 그런데 뭐야, 차가 꽉 막히잖아’라는 심경을 담은 ‘드라이브’가 그렇다. 파라솔은 “창문에 비친 네 얼굴이 묘하게 짜증나네”라는 말로 분노(?)를 드러낸다. 압권은 이 노래를 한 마디로 정리하는 마지막 가사 “나는 너를 지금이라도 차 밖으로 던지고 싶어”다.

유머는 파라솔의 자조적인 성격과 만나 ‘웃픈’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혼을 다룬 ‘법원에서’에서는 “너는 별말 없이 머리맡에 봉투를/하나 얹어 놨더라/법원에서/우리 만나게 되겠구나”라고, 별로 한 일 없이 정신승리하는 ‘뭐 좀 한 것처럼’에서는 “낮에 힘든 일을 한 사람처럼/인상을 쓰며/살짝 몸을 반대로 뉘었네” 등으로 표현한 식이다. 특히 ‘뭐 좀 한 것처럼’에서는 가사와 달리 필요 이상으로 해맑고 거창한 연주가 만들어내는 괴리는 감탄하게 만든다.

날 것을 표현하는 파라솔이다보니 섬뜩하다는 인상도 있다. “예전에 우리가 침대를 살 때/나는 침대가 꽤 높아 보였는데/결국 떨어졌네/나는 그런 너를 보며/조금 행복하네”(너의 자세), “우리는 얼굴이 없지/우리는 머리도 없지/우리는 마음도 없지”(부러진 의자에 앉아서) “저랑 결혼해주세요/사이좋게 살다 먼저 죽어줘요/내 이름을 제일 먼저 적어줘요”(언젠가 그 날이 오면) 등이 그렇다.

우물을 독점해버린 남자를 혼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사람들이 오히려 매를 맞고 있거나(우물가의 남자), “밤새 '선량한 시민이 죽었습니다'라며 서로 의심하지만 애초에 범인이 있지 않은 상황(마피아)을 다루는 등 사회적으로 애매모함을 다루기도 한다. 초면인 사람이 영혼 없이 건넨 말에 “이럴 거면 서로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은가”라면서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관계(초면)나 불행하단 생각이 들 때 기도를 하란다. 그래놓고 “사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네가 바라는 그 어떤 것도/조금이나 나아진다면/전부 꿈이니 곧 깰 거야”(설교) 등 희망과 교훈의 강박을 벗어 던지고 내리꽂는 일침이 강렬하다.

■ 드디어 파라솔, 추천곡 ‘마피아’
‘마피아’: 우선 마피아 게임으로 노래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제약 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파라솔의 관점은 물론, 고요하게 느릿느릿 흘러가는 분위기는 노래의 의도를 잘 표현한다. ‘씁쓸하다’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이런 음악이 아닐까 싶다. 한 편의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뒷맛이 남는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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