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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레이더] 잔나비, 촌스럽고 익살스러운 유랑단의 멋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막상 다가서니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가수였는데 그들에게 다가설수록 오히려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B레이더]는 놓치기 아까운 이들과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갑니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금주의 가수는 밴드 잔나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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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 100m 앞, 92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들

잔나비는 멤버 최정훈, 김도형, 유영현, 윤결, 장경준 5명으로 구성된 밴드다. 여기서 잔나비는 ‘원숭이’라는 의미다. 멤버들은 모두 1992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다.

잔나비는 2013년 Mnet ‘슈퍼스타K 시즌5’에서 먼저 얼굴을 비췄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OST였다. ‘알록달록’(구여친클럽), ‘파라다이스’(식샤를 합시다2), ‘웃어도 될까요’(혼술남녀), ‘얼마나 좋아’ ‘뷰티풀(Beautiful)’(디어 마이 프렌즈) 등 모두 잔나비의 작품이다.

이후 잔나비는 영역을 넓혔다. 지금까지 약 30 차례가 넘는 페스티벌과 콘서트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 1월 네이버 히든트랙 넘버V에서 윤종신과 함께한 ‘잠금해제 라이브’는 인기의 기폭제가 됐다. 이제 잔나비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밴드다. 지난해 단독 콘서트 장소였던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이 올해는 이화여대 삼성홀로 확장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 70m 앞, 대표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노래의 주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제목이다. 말 그대로 여름밤 마냥 뜨겁게 사랑하고 뒤돌아섰더니 남은 것은 까맣게 타버린 재뿐이다. 주제는 여느 곡과 다를 바 없는 이별이지만 잔나비는 이별노래의 고전적인 작법을 탈피했다.

이 노래에서는 애절하고 눈물겨운 멜로디와 가사대신, 웅장한 멜로디와 쓸쓸한 최정훈의 가성이 만난다. 그 괴리에 서린 허무함과 외로움은 오히려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덕분에 노래는 이별의 상투적인 단면을 벗어나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은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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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m 앞, 몽환적이고 익살스러운 유랑단

최근 단독 콘서트에서 선보인 ‘폐오폐라’ 무대 위 유랑단 콘셉트는 잔나비를 잘 설명한다. 이들의 특성을 읊자면 몽환적이고 익살스럽다는 말이 꼭 맞다. 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들을 나타내기에 잔나비는 독보적이다. 그래서 이들의 진가는 공연에서 폭발한다.

잔나비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든 말든 자신의 흥대로 몸을 움직인다. 멜로디와 가사 역시 이를 따라 서커스를 펼친다. 창피한 구석 없이 당당하게 내놓는 과감한 표현. 그 안에 녹아있는 위트와 짓궂은 뉘앙스는 잔나비만의 것이다. ‘복고’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툭 튀어나와 촌스럽고 우스운 것도 잔나비의 멋이다.

덕분에 잔나비는 트렌드에서 한 발짝 멀어졌고 정체성은 확실해졌다. 이들이 OST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엔 팀에 대한 관심으로 몰고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잔나비의 OST는 드라마의 특성을 담아내면서도 잔나비스러운 곡을 선보인다.

▲ 10m 앞, 진지한 고찰 속 고전미+위트

잔나비는 상황을 통해 감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감정을 통해 상황을 담아낸다. 현재 상태의 밑바닥까지 살피고 이를 다른 표현법으로 이야기한다. 슬픔, 기쁨, 분노 등과 같은 단어에 갇혀 있지 않고 제3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달빛의 동정 섞인 환한 빛이 싫어지지만 취한 발걸음은 조급해진 마음을 따가지 못한다든가(‘달’), 눈이 되지 못한 채 비가 내린다든가(‘노벰버 레인’), 말로 하긴 낯 뜨겁고 여전히 이른 듯한 춤사위(‘로켓트’)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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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잔나비는 여기에 고전미와 위트를 섞어 환기를 시킨다. 이들의 가사에는 보통 가요에서 볼 수 없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시뻘건 춤사위’ ‘풍악’ ‘에헤라디야’ 등 전통적인 느낌이 그렇다. ‘봉춤’ ‘로켓트’ ‘자가발전기’ 등 표현도 흔치 않다.

잔나비는 자신들이 원숭이가 된 시점을 보여주는 재미도 발휘한다. ‘몽키호텔’에서 잔나비는 빈손대신 바나나를 들고 오라고 한다. ‘정글’에서는 정글이 내 고향이란다. ‘악어 떼가 나온다/뱀이 나타났다’(‘정글’) ‘꿈나라는 별보다 따뜻하대/별나라는 다음번에 가도록해’(‘꿈나라 별나라’) 등 표현은 동화적이면서도 재치 넘친다.

▲ 드디어 잔나비, 추천곡 ‘달’ ‘몽키호텔’

‘달’ -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울음 섞인 고독을 응축해낸 잔나비의 능력이 대단하다. 이와 비슷한 발라드에 밴드의 맛을 더한 곡을 원한다면 잔나비의 또 다른 대표곡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나를 가둬두네’도 추천한다.

‘몽키호텔’ - 정규 1집 앨범의 마지막 트랙. 모두에게 인사를 고하는, 2분짜리 짧은 트랙이지만 잔나비의 색깔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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