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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플랫폼의 역습] ①봉준호와 지드래곤의 도전, 혁명인가 권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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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봉준호 감독, '권지용' 지드래곤


동네마다 하나씩 자리하고 있던 비디오 대여점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더 이상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워크맨과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며 음악을 듣던 세대도 이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다. 방송, 영화, 음악은 플랫폼이 변화하면서 이젠 스마트폰 하나면 해결이 된다. 빠르고 편리하게 플랫폼이 변화했지만 이젠 밥그릇 경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변모하는 플랫폼의 흐름과 그 후폭풍을 되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최근 문화계에 새 바람이 일었다. 각 분야 톱이자 선봉자로 꼽히는 봉준호 감독과 지드래곤의 선택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를 넷플릭스 개봉을 결정했다. 지드래곤은 음원, 독점 이미지, 독점 영상 감상이 가능한 시리얼 넘버와 링크가 담긴 USB를 새 앨범으로 내놨다.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결정임에 분명하지만 문화산업계에서는 아직 난색을 표한다. 당장 ‘옥자’와 지드래곤 신보는 제대로 된 성적표를 받아볼 수도 없다. 영화 ‘옥자’에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국내 극장 개봉 시스템에 반하는 행위라며 개봉을 거부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옥자’ 상영을 거부했기 때문에 독립·예술·개인영화관 관객만 수치로 나타난다. 이를 놓고 흥행이다, 아니다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옥자'의 배급 대행을 맡은 NEW 측은 “우리는 거대 규모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넷플릭스와 함께 협업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플랫폼 변화라는 문제를 논의의 시작점에 NEW가 있었던 것이 금전적인 흥행을 떠나 좋은 경험”이라 밝혔다.

지드래곤 솔로앨범 ‘권지용’도 마찬가지다.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인 한터차트는 ‘권지용’을 음원이 아닌 음반으로 인정했다. 국가 공인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가온차트의 ‘앨범’은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으로만 한정한다”며 ‘권지용’을 음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원 판매량은 몰라도 음반 판매량은 제대로 된 집계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USB 음반,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상영하는 영화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USB 형태의 음반은 가수 김장훈, 그룹 갓세븐 등도 발매한 바 있고,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소규모 영화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IPTV에서 동시에 개봉해왔다. 그러나 업계를 주도하는 인물들의 행보에 따라 앞으로 시장의 질서가 바뀔 수 있기에 더욱 민감한 반응들이 나왔다. 마치 소리바다, 벅스의 등장 때 음악인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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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USB 앨범 '권지용'



■ CD→음원 '제작사가 정하던 음반 도매가는 1곡당 4.2원으로' 슬프기만 했나?

스트리밍은 국내 팬들에겐 익숙한 음악 듣기 방식이지만 아델 등 세계적 팝스타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부해왔다. 그 이유는 아티스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비틀스 멤버였던 링고 스타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서 내 음악이 1700만번 스트리밍됐다면서 12달러를 준다.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국내의 반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음원사이트의 ‘월정액 상품’에 음원 생산자들은 기함했다. 음원 생산자의 몫이 고작 몇 원 정도였기 때문. 이에 대해 당시 김건모, 채연 소속사인 미디어라인 김창환 대표는 “CD가 팔리던 시절에는 음반제작사가 음반의 도매가를 정했지만 지금은 서비스 사업자들이 디지털 음원 가격을 책정한다. 제작비 100원을 들인 음원을 이들이 10원에 판매하는 셈이다. 우린 판로가 없는데다 몇 푼 안되는 수익도 못 건지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니 부당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아이튠즈처럼 70%까지 수익을 돌려주진 않더라도 곡당 최하가격이 대략 1000원인 전세계 표준에 음원가격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에 대한 멜론의 입장은 불법 음원 유저들을 유료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하기에 유료 구매율을 떨어뜨리는 곡당 1000원 가격은 악순환만 부른다는 것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음원 전송사용료 개선안’(2016년 2월부터 적용)을 보면, 디지털 음원 한 곡을 700원을 지불하고 다운로드할 경우 저작권자는 70%인 490원을 가져간다. 월정액제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가 한 곡을 스트리밍했을 때는 곡당 4.2원이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꼴이다.

현재 문체부가 정한 스트리밍 상품의 수익분배 비율은 국제 계약 관행인 6:4(저작권:플랫폼)다. 음악계는 여전히 ‘음악 1곡이 이쑤시개 값보다 싸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이들과 “한달 음악 저작권료로 독일 세단 신형차를 살 수 있다” “한곡 저작권료만 4년간 46억원” 등 저작권료 대박 사례로 나뉜다. 결국 대중은 편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누리길 바라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 생존하는 것은 ‘콘텐츠’의 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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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스틸컷



■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선택이 가져올 영향

봉준호 감독의 ‘옥자’ 논란 역시 멀티플렉스와 영화계 수익구조를 뒤흔들 수 있다는 불안에서 출발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5년 한국영화 수익성 분석’에 따르면 총 제작비 10억원 이상 규모이거나 전국 최대 100개 이상 상영관에서 개봉한 70편의 극장 매출의 전체 매출 중 비중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70%대로 떨어졌다. 이 요인에 대해 영진위는 “IPTV와 온라인 VOD 매출 집계액이 크게 늘어난 것”을 꼽았다. 영진위에 따르면 한국 영화산업의 극장 매출 의존도는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높은 상황이지만 멀티플렉스 체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역이 좁혀지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 영진위에 따르면 IPTV와 온라인 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4000억원을 넘어섰다.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모바일로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는 대중의 선호도도 더해졌다. ‘옥자’가 개봉하면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겠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같은 트렌드를 반증한다.

TV에서도 IPTV가 대두 될 때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기준대로라면 방송은 전파를 통해 안테나로 수신하는 것이지만 IPTV는 전파가 아닌 인터넷망으로 방송을 수신하기에 방식의 차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특히 케이블TV 업계는 ‘방송’이라는 이유로 편성·지역채널·출자제한에 있어서 각종 규제를 받아왔다면서 IPTV가 통신으로 규정될 경우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인터넷사업자들이 규제도 받지 않고 시장에 진입해 케이블TV 업계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케이블TV협회는 서비스가 좋을지는 몰라도 비싼 가격으로 결국 국민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부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라는 전제 아래 방송법과 IPTV법을 합친 통합방송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고 현재 대부분 가구가 IPTV를 사용 중이다. 케이블TV 업계는 통합과 소멸을 반복하는 사이에서 디지털화를 꾀하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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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스틸컷



■ 바뀌는 시장, 공멸이 아닌 공생?

USB 음반인 ‘권지용’은 ‘음반의 정의’가 아닌 ‘음반의 미래’를 말하는 듯 보인다. 봉준호 감독 역시 ‘옥자’ 개봉 방식을 통해 앞으로의 ‘영화의 미래’를 눈여겨 본 듯하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학자가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바라트 아난드(Bharat Anand) 는 ‘콘텐트 함정’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콘텐트라는 '덫'에 빠져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랫폼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자 제품, 기업조직의 ‘연결’을 내세웠다. 그가 제품 혹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건 다름아닌 음악산업. MP3가 등장한 초기에 음악산업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CD를 사지 않고 공짜 MP3만 들을 것이라는 우려는 음반회사들의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MP3 등장 이후 예상외의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공연티켓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아난드 교수에 따르면 1981년 미국에서 유명 아티스트의 콘서트 가격은 평균 13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71달러로 5배 이상 올랐다.

아난드 교수는 바로 이를 제품 연결의 대표적인 사례로 봤다. 아티스트와 음악 종사자들이 음원과 공연을 하나의 제품으로 묶으면서 급락한 음악 가격의 손실을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는 방법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콘텐츠인 '음원'에만 집착했다면 음악산업은 진작에 망했을 것이라면서 디지털화로 콘텐츠 가격이 사실상 무료가 된 기업이라면 이 제품과 연결된 다른 제품에서 수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의 진화는 기존 산업 질서를 재편한다. 지드래곤의 ‘권지용’은 오직 지드래곤 USB만을 통해 음악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CD를 대체할 새롭고 효율적인 매체가 될 가능성을 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16 음악산업 백서’에 따르면 한국인 약 10명 중 7명은 CD나 DVD 같은 물리적 형태의 디스크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 사양길에 들어선 CD의 대체품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넷플릭스 개봉은 영화팬들을 월 9,500원~14,500원의 가입비만 내면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세계로 이끌었다. ‘옥자’같은 경우가 많아질수록 관객이 극장을 찾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고 개봉 기간이 끝난 후 IPTV 등에서 유료 VOD로 4,000~6000원에 파는 것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또 개봉일인 29일,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지 않아 불만과 관람의 어려움을 토로한 관객이 많았지만 그 덕에 전국의 독립 영화관들은 쾌재를 부르는 효과가 일어나기도 했다.

과거 변화의 시점마다 다양한 콘텐츠의 탄생을 막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음악계와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들의 시도 역시 힘있는 콘텐츠 덕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결국 답은 하나다. 시장은 철저히 이용자의 편의에 따라 움직이고 꾸려진다는 것이다. 만약 USB 음반이나 넷플릭스가 이용자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면 애초 논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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