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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 스물 하나, 여진구의 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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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고등학생, 대학생 나이의 스타들은 저마다의 고충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중 공통적인 것이라면 단연 다시 겪지 못할 학창시절에 대한 아쉬움이다. 바쁜 연예계 활동 탓에 수업을 빼먹기 일쑤고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거나 여가를 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배우 여진구는 2005년, 그러니까 8세에 데뷔했다. 어린나이부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덕에 영화나 드라마의 아역 주인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그런 그에게 “일상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제가 욕심이 좀 큰 것 같아요. 지금은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보시기에 색다르고 파격적이라고 생각하실 정도의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나중에 더 다양한 색깔을 녹여낼 수 있으려면 지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작품을 선택할 때 의도치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가 보여드리지 못했던 모습이나 평소 제 모습과 다른 모습에 많이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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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대립군’, 여진구의 터닝포인트가 되다

영화 ‘대립군’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영화는 한 나라의 세자이자 냉혈한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의 광해(여진구), 파천한 선조를 대신해 의병을 모으는 광해 일행의 여정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기존에 영화에서 비춰진 광해라는 인물과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여진구도 이 부분에 끌렸다.

“처음엔 광해라는 인물이 굉장히 불쌍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게 예쁨을 받으려고 하는데 버림받았다는 걸 알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상황이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시나리오를 읽으면 읽을수록 광해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주변인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느낌이랄까요? 좀 질투가 났어요.(웃음) 사실 저는 타고나진 못했어요. 하하. 아무래도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있으니까 노력을 좀 기울이는 편인 것 같아요.”

익히 알고 있던 영화 속 왕세자와는 전혀 다른 광해를 연기하면서 오는 고충도 있었다.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던 그는 감독과 선배 배우들의 도움에 기대기도 하고 실존 인물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립군’은 이전 작품들보다도 훨씬 선배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어요. 선배들이 감정을 주시면 저도 표현을 해드려야 하는데 마냥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기까지 하더라고요. 항상 아낌없이 애정, 감정을 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들 덕분에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워낙 후배사랑이 강하신 선배들을 만난 것 같아요. 제가 또 후배 맛(?)이 없기도 하고요. 하하.”

여진구는 또 ‘대립군’을 자신의 대표작 3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러면서 “홍보 때문은 아니에요”라고 멋쩍게 말하는 모습이 딱 그 나이 때 수줍은 소년의 모습이다. 그 이유를 묻자 이내 수줍은 미소는 사라지고 배우 여진구의 진중함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표작 3개를 꼽으라면 먼저 ‘자이언트’에요. 저에게 중요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은 ‘화이’, 그 다음은 ‘대립군’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대립군’이 저에게는 큰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인 것 같아요. ‘자이언트’는 처음으로 감독님에게 ‘네가 맡은 역할은 어떤 사람인 것 같니’라는 질문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제가 앞으로 연기자로 계속 해야겠구나 생각이 든 작품이에요. ‘화이’는 뭐랄까. 현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몰입했던 작품이에요.”

슬럼프 한 번 없이 연기했을 것 같았던 여진구였다. 마냥 어린 배우라는 생각에서 온 편견이다. 비록 어린 나이에 시작했지만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그 역시도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수많은 고민과 힘든 시기를 거쳐 지금의 여진구가 됐을 터였다.

“예전엔 제 연기 모니터링을 거의 안 했어요. 오글거리잖아요.(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돌아보게 됐는데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저와는 다른 것 같은...되게 신기하더라고요. 한 때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았어요.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게 됐어요. 선배들이 ‘너 지금처럼 연기할거지’라고 많이 물어보셨는데 그 ‘지금’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광해’ 연기하면서 좀 컸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고마운 게 배우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지만 여진구로서도 많은 성장을 하게 해준 영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광해 캐릭터에 애착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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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 배우 여진구의 이중생활?

팬들이 여진구를 부르는 별칭 중엔 ‘어빠’(어린 오빠)가 대표적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저음의 목소리, 깊이 있는 연기, 진중한 성격 때문에 생긴 별칭이다. 작품 이야기를 할 때면 여지없이 그 ‘오빠미(美)’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캠퍼스 라이프 등 연기 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도 다를 바 없는 20대 학생이다.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는 전혀 이런 이미지가 아니에요. 친해지고 나서 많은 분들이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얘기하시고 ‘차라리 전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하하.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는데 연기나 작품 이야기할 때는 진지하게 되더라고요. 잘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친구들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대학교 동기들한테 많이 혼나요. 생각보다 연기를 너무 못한대요. 하하.”

바른생활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그의 대학생활에도 일탈이 있을까. 캠퍼스라이프를 묻자 그는 “너무 재밌다”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선생님들(배우)과 술 마시는 거랑은 많이 달라요. 너무 재미있어요. 또래들끼리 있으니까 즐겁고 분위기도 장난스럽고요. 다들 제가 쉴 때 책만 보고 있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실 저 책 잘 안 읽어요.(웃음) 영화 많이 보고, 친구들이랑 장보고, 집에서 요리도 해먹고요.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좋아해서 웬만한 건 다 따라하는 것 같아요. 악기, 여행, 요리 등 다 좋아해요.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죠”

여진구는 30세가 되기 전에 꼭 도보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여진구다. 하지만 ‘일’이 아닌 여행으로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스무 살이 되면서 일상적인 부분이 달라진 건 거의 없어요. 달라진 건 연기에 대한 생각인 것 같아요. 2년 전까지만 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변화를 인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결국은 또 연기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만큼 연기는 그의 일상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번 작품하면서 광해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연기를 했어요. 이유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촬영하는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체가 그랬고요. 우리 영화가 개봉을 하면 위로와 함께 희망찬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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