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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뷰;포인트] 불꽃같은 연기 인생 살다간 배우 김영애,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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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 (사진=스타빌리지 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장영준 기자] 배우 김영애가 지난 9일 오전 10시 58분에 별세했다. 향년 66세. 사인은 췌장암으로, 지난해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70년 데뷔 후 50여년간 드라마 105편, 영화 65편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그야말로 불꽃같은 연기 인생을 살다 갔다. 이제는 유작이 된 KBS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도 마지막까지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 2012년 췌장암 판정…치료 받으며 연기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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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 (사진=SBS '좋은아침' 화면 캡처)


김영애는 2012년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는 '해를 품은 달'이 뜨거운 인기를 끌었던 때. 김영애는 과거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당시 췌장암을 앓고 있었는데 제작진에게 폐를 기치지 않으려 암투병 사실을 숨겼다"며 "9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죽다 살아났다. 몸아 아파 악쓰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리에 끈을 조여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췌장암 발병 후 김영애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출연 중 재발했으며 병이 악화해 마지막회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당시 소속사는 "4회 연장에는 출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면서도 "병원에서 안정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체력도 많이 좋아지신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드라마 종영 후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팬들은 물론, 선후배 동료 연기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영애의 사망 소식과 함께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연기 투혼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후배들에게는 두고두고 회자될 귀감이 되고 있다.

◆ 끊이지 않는 ★들의 조문·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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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영애를 애도하는 SNS 글들. (사진=박은혜 이태임 문재인 SNS 갈무리)


김영애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스타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에는 선후배 동료들의 조문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에 가지 못한 스타들은 SNS를 통해 애도의 글을 남기며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 9일 박은혜는 "김영애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여자 연기자 선생님들이 훌륭한 연기를 하시면서 없는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식도 잘 키우신 것 같은데.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나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하루. 김영애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진태현 역시 "MBC 공채 대선배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훌륭하게 걸어가신 선생님들이 한 분씩 떠나실 때 존경과 감사를 느낀다. 좋은 곳에서 아픔 없이 푹 쉬세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이태임은 "진정한 국민배우 故 김영애 선생님께서 타계하셨습니다. 새까만 후배로서 선생님의 연기를 보며 자랐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그 열정을 본받아 저 역시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 선생님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각가 애도를 표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 배우의 죽음이 가까운 벗의 죽음처럼 느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날이 떠올라서 그런 모양이다. 우리 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의 열정을 불태웠던 고인이기에 황망히 떠나보내야만 하는 슬픔이 더욱 크다"는 글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 사업 실패, 두 번의 이혼…굴곡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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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스틸. (사진=위더스필름)


한 평생 연기자로 살았지만 김영애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9년 28살의 나이에 결혼했던 김영애는 2000년 21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2003년 재혼했지만 다시 5년만인 2008년 파경을 맞았다. 무엇보다 두 번째 이혼은 김영애의 황토사업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지목된다.

김영애는 2002년 한 황토팩 회사의 부회장으로 역임하며 17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사업가로서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7년 시사 고발프로그램인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에서 김영애 회사의 황토팩에 중금속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업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이영애의 황토팩 사업은 막을 내려야 했고 김영애 본인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심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영애는 이영돈 PD와 벌인 분쟁 끝에 제품에 문제가 없고 검출된 중금속 역시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미 사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이후 김영애는 췌장암 투병과 함께 연기에 몰두하며 다시 연기자로서의 삶에 헌신했다.

◆ 화려했던 연기자로서의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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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닥터스' 스틸. (사진=SBS)


김영애는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선발돼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 김영애는 김자옥 한혜숙과 함께 1970년대 안방극장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면서도 매 작품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한 김영애는 후배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으로 언급되곤 했다.

오랜 연기 경력만큼이나 김영애의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시작으로, KBS에서만 무려 3번의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변호인'으로 2014년 제23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 제51회 대종상 여우조연상,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저력을 과시했다.

유작이 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김영애는 깐깐하지만 온정을 지닌 어머니로서의 면모를 드러내 시청자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전망이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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