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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비게이션] ‘고산자, 대동여지도’ 집념이 만들어 낸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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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회팀=김재범 기자]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배운 ‘대동여지도’를 본 기억이 난다. 분명 그때 그랬다. 대체 저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과연 어떤 기술로 어떻게 저런 결과물이 나왔을까. 현대의 과학자들도 혀를 내두른다는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미스터리할 정도의 정교한 측량을 통해 만들어진 과학적 산물이었다. 이 같은 결과물은 열정과 혼신이 더해진 노력의 산물이다. 물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집념이 따라야 한다. 1000리길을 단 두 다리만으로 걸어서 다녔던 그 시절 이 같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선 죽음의 문턱을 제집 드나들 듯 했어야 함이 옳다. 무엇보다도 그 죽음과 맞닿은 시간의 연속을 견디어가면서 이 같은 지도를 만들어 낸 이유가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부귀영화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을 위해서 김정호는 계급 사회의 규율 속에서 한 낯 지도 하나에 자신의 온 세월을 오롯이 받쳐왔을까.

강우석 감독 신작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대체 왜 김정호는 이 지도를 만들려고 했을까. 그것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왜 김정호에 대한 자료는 아무것도 후대에 전해져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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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김정호가 양반이 아니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양반이 아니었기에 그의 생에 대한 서술이 부족했고 남길 이유가 없었다는 추측이다. 그럼 그는 왜 양반이 아니었으면서도 계습 사회의 조선에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생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을까. 집념에 가까운 미친 지도꾼 김정호는 그렇게 강우석 감독의 손을 통해 차승원의 몸을 통해 단 한 번도 그려지지 않았던 삶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실존 인물이지만 삶에 대한 남은 사료가 거의 없는 김정호에 대한 얘기는 소설가 박범신의 ‘고산자’를 토대로 한다. 그 속에서 그려진 김정호는 미친 인간이다. 지도 하나에 미쳐있었다. 미친 이유는 바로 길에 대한 야속함 때문이었다. 사람이 만든 것이 길이 아닌 길이 있기에 사람이 가야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사람을 위해서 지도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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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잘못된 지도 하나로 김정호는 아비를 잃는다. 잘못된 길을 가리킨 지도 한 장이 사람을 죽였다. 아비를 빼앗아 갔다. 길을 가르쳐 주는 지도가 길을 빼앗은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조선 팔도를 두 발로 걸어 다녔다. 당시 군사적 목적으로 관아에만 배포된 지도가 실제와 달라도 너무 다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김정호는 백성들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하게 편한 지도를 만들기를 원했다. 자신에게서 아비를 빼앗아간 지도를 위해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의 삶을 받치고 있었다.

그 삶 속에서 김정호는 정작 ‘진짜’를 놓치고 있었다. 3년 만에 집에 온 김정호는 자신의 딸 순실(남지현)을 알아보지 못한다. 지도에게 빼앗긴 시간 동안 딸 순실은 홀로 성장해 어느덧 처녀가 다 됐다. 지도에 미친 김정호를 타박하는 여주댁(신동미)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김정호 하나만을 바라보며 그의 딸 순실을 보살핀다. 두 사람 모두 김정호가 미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김정호를 미워할 수만도 없다. 그가 왜 지도에 미쳐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순실은 아비 김정호가 팔도를 떠돌면서도 집으로 돌아올 때 꼭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달라며 부탁을 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디에서도 아비의 숨결을 느끼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한 외롭지도 않다. 아비와 함께 지도를 만드는 조각장이 바우(김인권)와 사랑을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상이 김정호에겐 행복이다. 그리고 김정호는 다시 지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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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길에 대한 의미와 그 길속에서 찾아야 하는 그 시절 민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 속에서 영화가 찾는 의미는 분명 큰 파열음을 낸다. 권력층의 부패와 힘에 대한 욕심은 결국 백성에 대한 피해로 돌아간다. 그것을 김정호는 지도 속에서 찾고 그 의미로 덮기 위해 홀로 노력한다.

단지 사는 것을 위해 지도에 생을 집중한 김정호의 선택은 흥선대원군(유준상)과 안동 김씨 일파의 권력 투쟁 소용돌이에 뜻하지 않게 휘말린다. 지도를 통해 권력욕에 대한 돌파구를 찾으려는 두 집단의 싸움은 현 시대의 그것과 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김정호는 시대를 뛰어넘은 듯 날이 서 있지만 뼈가 단단해 박힌 대사를 이들에게 던진다. “제 나라 백성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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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소용돌이를 뚫고 김정호는 결국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래서 완성하지 못한 대동여지도를 위해 멀고 먼 뱃길에 올라탄다. 바로 우산도(독도)를 그려 넣기 위해서다. 지도를 위해 살아온 김정호의 발길은 분명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길이 김정호가 바란 사람을 위해 가야 할 길일까.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걸어가는 길 하나에 집중한다. 그가 왜 그 길을 걸어가는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그것을 깨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김정호의 집념과 마주한 듯 관객들도 이끌고 힘겹게 걸어간다. 그 발길이 무겁고 힘겹다. 두 발로 조선 팔도를 거닐며 만들어 낸 결과물이니 가벼울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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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기에 전체의 맥을 느낄 기운이 부족하다. 김정호에 대한 사료는 실제로도 남아 있는게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한다. 대부분이 일제의 식민사관이란 주장으로 현재까지 전해져 온다. 그래서 영화에선 김정호의 대척점에서 선 흥선대원군을 결국은 김정호의 속내를 이해하는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감정의 흔들림을 느낄 틈을 빼앗은 느낌이다.

결국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지만 흔들어 놓는 지점 고비의 고갯마루에서 발길을 멈추게 된다. 김정호의 삶이 담고 있는 먹먹함의 이유가 밝혀졌지만 그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공유해야 할 이유인 고난의 상황을 가로 막아 버렸다. 천주교 박해와 안동 김씨 일파의 방해 공작 등이 기본 전제로 등장하지만 곁가지의 느낌으로만 남는다. 김정호와 흥선대원군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담은 정치적 상황이 더욱 크게 보이는 이유는 영화 전체에 강하게 깔린 ‘민본’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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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강렬한 신념이 ‘미치광이’로 표현될 만큼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올곧다. 그러나 그 지점이 모든 것을 담아낸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단선적이다. 길은 가기도 하지만 오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봉은 오는 7일.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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