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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밀정’ 송강호, 언제나 옳은 연기神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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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송강호는 언제나 착한 편에 서야 옳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런다. 그는 주인공을 도맡아 해온 특급 흥행 배우 아닌가. 요즘 따라 악역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지만 송강호는 그러면 안 될 듯 한 느낌이다. 아니 바람이다. 그는 선함을 대변하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넘버3’의 말더듬이 조폭 ‘조필’이 악당일지라도 송강호의 연기 필터를 거치면서 친근함을 안게 됐다. 그 이전 ‘초록물고기’ 판수는 어땠나. 역시 송강호란 촘촘한 거름종이를 통해 걸러진 엑기스는 지울 수 없는 잔상을 남겼다. 송강호는 그런 배우이고 또 그런 연기 필터를 장착한 고성능 정수기와 같다. 무엇이라도 그를 통과하면 선함의 빛을 내는 마법을 부렸다. 영화 ‘밀정’에서 그가 친일파 앞잡이로 나온다는 소문에 귀를 의심했다. 연출자가 김지운 감독이란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지만 말이다. ‘나쁜 놈’ 송강호. 사실 언뜻 상상은 안 된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붉게 상기된 얼굴과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밀정’ 언론시사회와 개봉을 앞두고 여러 홍보 스케줄 및 주변 지인들과 만나면서 쉴 틈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뤄지는 대중들과의 인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더욱이 언론시사회 이후 쏟아진 호평은 자신의 평생지기나 다름없는 김지운 감독 최재원 대표(밀정 제작자, ‘놈놈놈’ ‘변호인’ 제작자이며 송강호와 동창이다)가 곁에 있었기에 힘이 나는 듯 했다.

“뭐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김 감독께서 너무 영화를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죠. 좋은 평도 듣고 말입니다. 그렇죠? 최 대표(웃음) 하하하. 사실 배우들은 후반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잖아요. 영화는 편집을 거치면서 진짜가 되는데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정말 후반 작업에서 김 감독님이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더라구요. 저는 이번 결과물에 대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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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송강호는 ‘밀정’이 전형적이지 않은 지점에서 출발하기에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모던하고 또 클래식한 지점을 모두 갖춘 이미지와 이야기 속에서 그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꿈을 꿨던 것 같다. 물론 그 것을 연기하는 사람이 송강호 본인이라면 대한민국 누구라도 이견을 달수는 없을 것이다. 연기적인 면에서 그에게 지적을 할 사람은 사실 상상도 안 될 논란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너무 비행기를 태우시는 데 그러지는 마시고요(웃음). 스토리가 전형적이지 않은 지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제가 연기한 ‘이정출’의 성격이 마음에 와 닿았죠. 모호하면서도 회색빛에 가까운 인물. 하나로 설명이 안되는 그 느낌이 매력적이었죠. 보통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캐릭터는 강렬한 검정색이나 붉은 빛을 내기 마련이잖아요. ‘밀정’ 속 ‘이정출’은 정말 지금 생각해봐도 처음 보는 인물이었죠.”

사실 ‘밀정’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극찬 일색은 아니었다. 인물의 개연성과 서사의 느낌이 약간은 엇박자를 내는 틈새가 있단 지적이 있었다. 송강호도 그런 지점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이들을 만족하는 결과물을 낸다면 행복할 듯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충분히 이해하고 김 감독과 그런 지점도 논의를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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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 지적하는 부분을 저도 분명히 알고는 있죠.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밀정’은 이정출의 변신에 개연성을 주목하는 얘기는 아니란 결론을 얻었죠. 이정출이 일본 앞잡이였지만 이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장면은 영화 전반에 걸쳐 설명이 되죠. 그런 감정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밀정’의 톤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님이 ‘밀정’이라는 작품을 통해 작은 그림이 아닌 큰 그림을 담아냈다고 봐요. 만약 이정출 중심으로 얘기가 흘러갔다면 너무 작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그의 설명대로 이정출은 표면적으로는 악인이다. 그 시절을 살아온 인물들을 비교해 본다면 기본적으로 친일파란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에 접근한다면 묘한 혼돈이 자리한다. 송강호가 이해한 이정출은 인간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지점에 닿았던 것 같았다. 친일파이지만 살기 위해 ‘친일’을 선택했을 뿐인 인간이었던 점이다.

“이정출의 인간미? 그게 ‘밀정’의 본질이라고 전 생각해요. 이정출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일본 군인의 옷을 입고 있지만 독립군들을 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체포는 해야 하지만 목숨은 살리고 싶은. 일본인 상관에게 복종하지만 그것을 심적으로는 거부하고 싶은. 혼란스러운 정체성이지요. 그게 첫 장면에서부터 시작되기에 저 역시 궁금했고. 관객분들도 그 지점을 따라가면 흥미롭게 접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천하의 송강호도 헷갈리게 만드는 이정출이었다. 조선인이었고 일본 앞잡이 경찰이다. 더욱이 이 캐릭터는 실존 인물 ‘황옥’을 모델로 했다. 황옥은 지금도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다. 독립군이었는지 일본의 앞잡이였는지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판단이 유보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기에 배우 송강호도 혼란이 온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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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웃음). 사실 저도 헷갈렸으니까요. 하하하. 도대체 이 사람이 어느 편이냐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누군가가 촬영할 때 저한테 ‘이정출이 밀정이냐’고 물어봤는데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그게 정답이지 않나요(웃음). 글쎄요. 이정출? 친일파? 제 생각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 같아요. 그저 모든 상황에서 그는 ‘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되요. 지금도 그래요.”

‘이정출’이란 캐릭터 속에 빠져 자신을 괴롭힌 김지운 감독과 인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은 벌써 18년을 함께해 왔다. 작품도 이번이 4번째다. 거의 20년이라는 시간동안 호흡을 맞췄다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두 사람 사이를 잇고 있는 듯 했다. 세월이란 힘이 주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감독님이요? 하하하. 촬영 속도가 많이 빨라졌더라고요(웃음). 예전에 비해 분명히 제작비가 큰 작품이고 또 할리우드에도 다녀오셨고. 상업적인 측면에 대한 부분이 좀 더 열려지신 것 같아요. 그런 점은 굉장히 좋은 변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과거에 비해 영화적인 스케일이나 깊이도 놀랍도록 발전했다고 생각됩니다. 분명한 것은 엄청난 분임에는 틀림없죠.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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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최고 명장면에 대한 느낌도 전했다. 극중 김우진(공유) 하시모토(엄태구) 이정출이 한 앵글 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세 사람의 감정의 날이 이른바 칼춤을 추듯 번뜻이는 이 장면은 ‘밀정’ 속 최고의 백미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이 장면에서 공유와 엄태구가 천하의 송강호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인다. 이 같은 설명에 송강호는 특유의 아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날 잡아먹어야죠. 당연히 그래야지. 암요(웃음). 공유는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 스타잖아요. 특히 하시모토를 연기한 엄태구가 정말 잘 해줬어요.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잠재된 힘이 엄청나요. 기대되는 배우에요. 정말 어려운 캐릭터인데 엄태구가 정말 잘 해내줬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혹시 그거 아세요? 엄태구 이 친구가 술을 한 방울도 못 먹어요. 하하하. 생긴 건 말술인데 말이에요(웃음)”

송강호는 지금까지 자신이 출연한 영화는 한 번 이상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밀정’은 예외라고. 언론시사회날 본 뒤 그 다음 날 다시 생각이 났단다. 꼭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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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글쎄요. 그냥 매력이 있다고 할까(웃음). 이런 적이 처음인데. 내 영화라서 홍보성 멘트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꼭 한 번 더 볼 생각이에요. 하하하.”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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