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왕’은 말하기 어렵고 또 에둘러 말하고 그래서 눈치만 보면서 앞만 보며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한다. 힘들면 ‘힘들다’ 말하면 된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 조금만 쉬었다가 가도 그리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 번쯤 멈춰보라고. 그것이 마침표가 아니라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한 그 지점을 ‘걷기왕’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또 무겁지만 절대 짓눌리지 않는 심정으로 그려냈다.
강화도 섬마을에 살고 있는 이만복(심은경)은 선천성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빠름에 억행을 강요당하는 삶의 속도가 그에겐 자유로움이고 편안함이다. 빨리 가기 위해 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만복은 그럴 수 없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만복은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며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그런 만복이 경쟁을 선택했다. 학교 육상부 경보 선수가 됐다. 두 발을 동시에 떨어트릴 수 없는 ‘경보’의 규칙은 어쩌면 만복의 삶을 옥죄고 있는 삶의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만복은 자신이 어떤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지 아직 깨닫기 전이다.
그런 만복을 깨우치는 인물이 바로 수지(박주희)다. 그는 경쟁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죽기 살기로 달렸다. 그래야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고로 달림의 포기를 강요받게 된다. 결국 수지가 선택한 방법이 경보였다.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는 경보는 어쩌면 수지의 삶을 유지시키는 그의 존재를 증명케 하는 규칙과도 같다.
‘걷기왕’은 느리게 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빠르게 경쟁하는 사회의 시스템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느리게도 혹은 빠르게도 못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환하게 웃는 만복의 모습에 수지도 웃는다. 그리고 ‘걷기왕’을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다가올 것이다. ‘걷기왕’ 너무도 반갑고 즐거운 웃음이다. 개봉은 오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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