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승희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고, 각인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라는 배요섭 연출가의 말처럼, 연극 ‘휴먼푸가’에는 소설을 연극으로 올리면서 오랜 고민을 거친 흔적이 역력했다.
5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휴먼푸가’의 전막시연이 있었다. 작품은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가 원작이며, 국내 무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산예술센터 공동제작 공모를 통해 선정된 ‘휴먼 푸가’는 연극과 문학의 만남이다. 원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그린다. 하나의 사건이 낳은 고통이 여러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고 있는 소설의 구조는, 독립된 멜로디들이 반복되고 교차되고 증폭되는 푸가(fuga)의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배 연출은 “푸가라는 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올랐던 중요한 단어였다. ‘어디로 간다’ ‘달린다’는 뜻이다. 여러 개의 주제가 시간차를 두고 반복되면서 달리는 구조”라며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과정이 푸가처럼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푸가라는 게 자연스럽게 생각났고, 이 구조를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언어를 무대로 옮기지만, 국가가 휘두른 폭력으로 인해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단순 재현하지는 않는다. 배 연출은 “여러 방법으로 길을 찾았는데, ‘배우들은 연기하지 않고’ ‘춤추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연극이 가진 서사의 맥락은 끊어지고, 관객들은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단편적으로 따라간다. 슬픔, 분노, 연민의 감정을 말로 뱉지 않고, 고통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의 참혹함에서 존엄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시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 위의 배우다. 배우는 신체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변주하고 교차하고 증폭시켜 감각의 확장을 꾀한다. 배우 공병준, 김도완, 김재훈, 박선희, 배소현, 양종욱, 최수진, 황혜란과 제작진은 지난 1월 한강 작가와의 만남 이후,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몇 차례 광주를 방문해 자료를 조사를 했다.
배 연출은 “다 알고 있는 광주 이야기지만, 정작 이야기를 해보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몸의 감각이 중요해서 실제 광주를 방문했다. 도청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지하실의 기운을 몸으로 느끼고, 광주 통합병원에 실려갔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몸으로 가져오게 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체험이 없으면 몸에서 발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광주를 찾은 이유를 밝혔다.
남산예술센터는 내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양국에서 제작한 공연의 교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연은 11월 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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