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군 마산면 오이농장을 운영하는 임병준씨가 수해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대성 기자. |
지난 16일 침수된 오이농장. |
16일 침수된 오이 시설하우스. |
[헤럴드경제(구례)=박대성 기자] 2020년 8월 8일. 쉴새 없이 퍼붓는 폭우는 섬진강을 집어삼키 듯 포효하더니 섬진강 둑마저 무너뜨리고 구례읍내로 스며들어 도심을 온통 흙밭으로 만들어버렸다.
8일은 하필이면 오일장인 구례장날.
당시 지리산권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구례장날을 맞아 300여 곳이 넘는 점포와 노점상들이 장사에 여념 없었지만, 완력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강물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유례없는 수해 피해를 입은 구례지역 피해 상황 점검차 찾은 구례군 마산면 광평뜰. 이 곳에서 30여년간 오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임병준(59)씨는 당시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임씨는 "순천주암댐과 섬진강댐 방류량이 많아지면 섬진강 수위가 일정 수준만 올라가도 이곳 광평뜰은 역류가 돼 물이 차버린다"며 이틀 전 침수된 오이농장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지금 짓고 있는 배수펌프장이 그나마 침수를 막을 방비책인데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이라며 "배수펌프장과 유수지(인공저수지)를 같이 조성하는데, 시공사와 감리단이 농민들 의견은 하나도 구하지 않고 지형 높낮이도 계산하지 않고 배수펌프장 공사를 하고 있다"고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3년 전 섬진강 수해로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액은 피해(신청)액의 48% 밖에 인정을 못 받아 억울한 심정을 뒤로 하고 비닐하우스 재건에 나서야했다는 임씨는 국가의 하천관리 잘못으로 엉뚱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터무니없는 배상액을 지급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수해피해를 계기로 풍수해보험에 가입했다는 임씨는 풍수해보험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풍수해보험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입은 그 장소에다 다시 하우스를 짓도록 돼 있는데 연작피해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데다 짓고 싶어도 현행 풍수해보험은 피해를 입은 그 장소에다만 짓도록 돼 있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며 이를 가리켜 '탁생행정'이라고 지칭했다.
구례읍 병방마을 주민이 스마트폰으로 섬진강댐 방류량을 체크하고 있다. |
구례읍을 지나는 섬진강 저지대 일대는 벌써부터 범람해 일부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
구례읍 원방리 섬진강변에 자리한 병방마을 주민 김형곤(61)씨는 18일 비가 오는 날씨에 스마트폰으로 영산강홍수통제소에서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방류량을 확인하며 3년 전 수해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지금 4일째 계속 1200톤(t)씩 내보내고 있는데 이 정도만 돼도 섬진강댐의 홍수조절 기능 때문에 절대로 수해가 나지 않으며, 3년 전에도 이렇게 꾸준히 미리 방류했다면 절대로 섬진강 범람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3년 전에는 저수율이 80%가 넘자 다급해진 나머지 초당 2800톤을 방류해버리는 바람에 둑이 터지고 구례가 온통 침수됐던거 아니냐"며 수자원공사의 홍수조절 기능에 의문을 표했다.
당시 살던 집이 물에 잠겼다는 김씨는 "수해보상금이 2400만원이 나왔는데 리모델링 공사비만 7000만원이 들었는데 간에 기별도 안간다"며 "댐이 생기기 전에는 큰 수해가 없었는데 댐이 생기고 나서는 집을 평지보다 높게 지었는데도 집에 물이 차는 것은 홍수조절 실패"라고 단언했다.
구례장에서 만난 이분금(87) 할머니는 "3년 전에 장에 내다 팔기 위해 감자대(고구마줄기)를 머리에 이고 좌판을 벌였는데 물이 차올라 팔지도 못하고 몸만 피했다"며 "요새 겁나게 비가 내리는거 보면 또 다시 홍수가 나지 않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고 말했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광주전남지역은 18일에도 정체전선 영향으로 굵은 장맛비가 내리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간당 4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퍼붓고 있어 강이나 하천 범람 등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장마철을 맞아 섬진강 둑 보강공사가 한창이다. |
3년 전 수해복구 제방 보강공사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 장마철 피해가 우려된다. |
섬진강 일대에 공사중인 배수펌프장과 유수지. |
이날 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누적 강수량은 광양 107.3mm, 구례 79.5mm, 순천 79.5mm, 여수 36.8mm, 목포 43mm, 광주 59.9mm, 보성군 114.1mm 등이다.
구례군에서는 2020년 8월 수해 이후 국가에서 지원하는 '지구단위 종합 복구사업'이 진행 중인데 둑을 튼튼히 쌓고 배수펌프장을 설치해 홍수에 대비하고 있지만 7개 펌프장이 여태 공사 중이다. 이마저도 장마철을 이유로 공사가 무기한 연기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구례군 관계자는 "당초에는 올해 6월말까지 끝낼 계획이었지만 토지보상이 늦어지면서 내년 6월로 1년 연장됐다"며 "국가와 지방하천 제방 정비사업은 대부분 완료돼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계속 비가 오고 있어 군청에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