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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9명 목숨 앗아간 학동붕괴사고 1년… ‘상처는 현재진행형’
학동4구역 재개발 1주기 추모식서 유가족 오열, 눈물
‘올스톱’ 무너진 콘크리트, 녹슨 철골 폐허로 변한 현장
광주시, 안전관리 강화 추진 ‘소잃고외양간 고치기’ 지적도
학동붕괴사고 유가족들이 추모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건물이 와르르 무너진 시간이다. 대형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물은 멈춰선 버스를 그대로 덮쳤고 승객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후진국형 참사 소식은 대한민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등진 고인 그리고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는 시간의 흐름만큼 깊어갔다.

2022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

일년 후 정확히 그 시간, 그 장소를 다시 찾았다.

삼성디지털프라자 학동점 옥상에서 바라본 철거현장은 그대로 멈춰있다. 콘크리트 더미와 붉게 산화된 철구조물 사이 무성하게 자란 잡초만이 주인행세를 했다.

미용실이 있던 붉은색 건물 바로옆이 철거 현장이다.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진 철거현장은 콘크리트 잔해와 붉게 산화된 철골, 자갈, 잡초만이 무성하다. 서인주 기자

깨지고 금이 간 ‘미스헤어’ 미용실 바로옆이 붕괴 건물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던 이곳은 전쟁처럼 폐허가 된지 오래다. 색이 바랜 경찰통제선이 당시의 처참함과 긴박함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삐용, 삐용, 삐용”

현장 주변에서는 경고음을 올리는 병원 구급차가 자주 등장해 당시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현장은 호남최대 규모인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이 5분 거리에 있는데다 남광주시장, 조선대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시민과 차량의 통행이 많은 곳에 안전수칙을 무시한 탐욕의 철거공사가 화를 부른 것이다.

시장을 보러간 어머니, 학교를 다녀온 고등학생 등 무고한 시민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학동 재개발 철거현장은 공사중지 명령으로 올스톱됐다.

사고가 난 버스 승강장은 현재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 철거됐기 때문이다. 대신 맞은편 기아자동차 전시장 앞에 자리한 버스 승강장이 마치 쌍둥이 형처럼 현장을 지키고 있다.

같은시간 광주시와 동구청이 1주기 추모 행사를 개최했다.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진의 유가족 대표를 비롯해 이용섭 광주시장, 임택 동구청장 등 검은옷을 차려입은 추모객들이 현장을 묵묵히 지켰다. 고인의 손자손녀들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현장을 찾았다. 부모품에 잠든 100일된 아이와 초등학생 유가족이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에 숙연함이 더해진다.

사고로 할머니를 잃은 손자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기도하고 있다./서인주 기자

추모식은 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한을 풀어주는 ‘위혼의 무대’,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 1분간 묵념, 천주교·기독교·불교 단체 대표의 기도 등이 이어졌다.

추모식 한구석에서는 안전 문화 시민공모전 수상 작품도 전시됐다.

‘철거건물 붕괴참사’로도 알려진 학동참사는 재개발사업이나 현대산업개발이 발주한 철거 공사와 관련 없는 시민이 희생된 사회적 참사였다.

검경 수사와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다단계 재하도급이 만연하고 해체계획서를 따르지 않은 불법 공사가 붕괴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됐다.

붕괴 직접 책임자로 지목된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하도급·재하도급 업체 관계자, 감리자 등 9명에 대한 형사재판은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이진의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에서 “1년 지난 지금도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인의 마음, 가족을 잃은 울분은 여전히 그대로다 ” 며 “진상규명 재판은 아직 1심 판결도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 대표는 “추모공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항에 봉착했다” 며 “삼풍백화점 자리에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될 것 같아 원통하다”고 토로했다.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광주공동체는 여전히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참사 책임자들의 사과와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참사의 핵심 원인 제공자인 현대산업개발에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한편 광주시는 건축·해체 공사장 안전 점검,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추진하고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지원 조례를 개정해 추모일 지정, 추모 공간 조성 등 추진 근거를 마련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추모식 보다 중요한 것은 추모식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추모식 한편에 안전을 주제로 한 그림작품전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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