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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으로 독도지킨 고 박관숙교수 학덕비 34년만에 제자리 찾아....제막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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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지켜온 고 박관숙 교수 학덕비 제막식이 지난 20일 울릉군 독도박물관 인근에서 열렸다.(울릉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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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대구경북=김성권 기자]고종이 1900년 칙령으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편입한 날을 기념하는독도의 날’(25)을 닷새 앞둔 지난 20, 경북 울릉도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울릉군은 이날 독도박물관 인근 마당에서 고 박관숙 교수의 학덕비 제막식을 갖고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독도 영유권을 공고히 다져온 박 교수의 높은 공적을 기렸다.

34년의 긴 세월동안 학덕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비석의 주인공과 비석이 제작된 내력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겐 가슴 아프도록 가련한 추모비가 제막돼 마침내 한을 풀게됐다.

제막식에는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과 안병윤 경북도 기획조정실장 이 참석했다.

또 박 교수의 자녀와 며느리 손녀등 유가족5명과 특히 학덕비 제작을 주도했던 당시 20대 청춘의 대학생들이 예순을 바라보는 지긋한 나이에 참석해 학덕비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방치돼 왔음을 증명했다.

고 박관숙(1921~1978) 교수는 평안북도 위원에 태어나 1939년 신의주동공립 중학교, 1942년 일본 마쓰에 고등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 도쿄국제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25세된 194512월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법대) 조교수와 이화여대 법정대학 부교수를 거쳐 연세대 정법대학 법학과 교수로 오래 제직했다. 1969년 연세대에서 `독도의 법적지위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 8·15 해방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국제법학 개척에 공을 세웠다.

생전에 저서, 논문, 기고문만 100여 편에 이른 박 교수의 독도 사랑은 남달랐다. 대한국제법학회(1953년 설립) 학회지인 국제법학회논총’ 1956년 창간호에 게재한 논문 제목 또한 독도의 법적 지위였다. ‘카이로회담’,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령(SCAPIN) 677조항 등을 근거로 그는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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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관숙 교수의 학덕비가 제작 34년만에 지난 20일 제막됐다. 죄측상단 모서리 일부가 훼손될만큼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울릉군 제공)


이 때문에 지난 1984년 당시 독도를 사랑하는 학우들의 모임인 성균관대 가정관리학과 성인숙,최은영,하은미 등 학생들이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영유권 주장을 통렬히 반박했던 고 박 교수의 추모비를 독도에 세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추모비를 만들었다.

이들은 19837월 독도를 답사하면서 독도 벼랑 곳곳에 고위 공무원들의 `순시패가 동판으로 화려하게 제작돼 세워져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박 교수의 추모목비는 페인트마저 벗겨진 채 너무 초라하게 서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이를 본 대학생들이 뜻을 모아 박교수의 비석을 만들게 됐다는 것,

하지만 이들이 애써 만든 학덕비는 관계기관의 불허로 독도에 들어가지 못해 독도설치가 불발됐고 당시 울릉도 저동항 어선 출항 신고소 창고에 입고되는 신세로 전략된후 2010년 창고 철거로 잠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모서리 일부마저 훼손된 체 27년째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풀섶에 나뒹굴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던 중 20118월 본지기자가 이를 발견, 단독 보도한 독도수호 박관숙 교수천덕꾸러기 신세라는 제하의 기사로 학덕 비를 제작한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울릉군은 이 비를 독도박물관 수장고에 이관 보관해왔다.

기사내용을 접한 유가족과 학덕비 건립자들은 학덕비 재설치 청원을, 한국제법학회에서는 울릉군을 상대로 학덕비 재설치를 협조 요청했고 이에 군은 초기 독도 연구자의 노력을 후대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고 판단해 도동약수지구 정비사업과 연계해 마침내 34년만에 학덕비를 제막하게 됐다.

이날 제막식에서 김병수 울릉군수는 고 박관숙 교수에게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법조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법학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다하며 생전 독도수호에 공이 컸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박교수의 차녀 박순혜 씨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아버님의 학덕비 제막을 위해 힘써 오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아버님의 생전 독도수호 정신이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잘 전 달돼 일본의 터무니없는 독도 침탈 야욕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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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가 2011년 당시 단독보도시 학덕비가 천덕꾸러기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사진=김성권 기자)


ksg@heraldcorp.com

(본 기사는 헤럴드경제로부터 제공받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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